대학가에 학술강연을 다니는 중에 약간의 곡절을 거쳐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연속강연을 하게 되었다. 매년 수십 회에 걸쳐 이런저런 주제와 형태의 학술모임을 겪게 되므로 별스런 감상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간 유독 여대에서의 강연을 애써 피해왔고, 웬일인지 내게 ‘여대’는 여전히 긴장된 울림을 가진 관념의 콤플렉스로 남아 있었다.
여성과의 ‘속 깊은 대화’의 가능성
나를 포함해서 한국 남성의 심리기저에 깔린 여성관은 대단히 상식적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 상식은 상식(常識)이 아니라 상식(傷識)이며, 이 상식의 굴레를 돌리는 동력은 당연히 남성기득권 사회의 구조와 관성적 행태 일 것이다. 상식을 인식이나 계몽 차원에서 운용되는 순진한 생각의 덩어리라고 보는 믿음은 물론 이미 낡은 것이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그리고 앎과 삶 사이의 역동적인 교섭을 밝혀주는 이론 틀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상식이 비상식적인 현실과 교접, 절충 타협하며 심지어 이에 의해서 조작된다는 것은 쉽게 미루어 알 수 있다. 따라서 상식이 순전히 자생적으로 자기발전을 거듭한다고 믿을 수는 없지만, 사회를 운용하는 나름의 이치와 원리가 정착된 사회라면 상식은 결코 만만치 않은 탄성과 자생력을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리 사회에서의 상식이란 뿌리 없는 부초 같은 꼴이어서 물갈이가 있거나 바람만 좀 세게 불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비록 상식은 사회운용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지만, 출발점의 터가 없이는 지향성의 깃대가 생길 수 없다.
상식은 지식생산지인 학교 안팎의 담을 허물고 두 세계를 소통시키는 가장 기초적인 앎의 행태다. 그것은 전통의 토대 위에 현재를 수렴해서 신진대사의 과정을 거치며 장래를 대면해 가는 자기보존기제의 기본이다.
우리가 탄식하는 상식의 부재, 특히 여성관을 둘러싼 상식(傷識)은 세계 최고의 학력집단인 한국의 남성 개개인에게 돌려질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결코 학식이 현실 속의 상식과 아무런 실천적 관련을 얻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이어질지도 모른다. 지식인 사회에서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교양과 학식의 거품현상, 혹은 자기소외 현상이 우리처럼 격심한 곳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급속한 농축근대화의 부작용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지만 상식, 특히 여성에 대한 이해가 사회변동의 속도 앞에 속수무책으로 낡은 냄새만 풍기고 있는 곳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아닐까.
종종 나는 마흔을 넘기도록 여성과 ‘속깊은 화해’에 실패했다는 자책에 휩싸이곤 한다. 그리고 이 실패는 나 역시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소문과 상식, 그리고 피상적 경험에 편승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자에 이뤄진 몇몇 여성 지식인들과의 사귐을 통해서 나는 ‘속깊은 화해’의 가능성을 좀더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되었음을 다행하게 생각해 왔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상식(傷識)이 깨어지고 새로운 상식을 구성하는 경험이었으며, 행태와 제도의 틀에 의해서 조장된 성차(性差)의 벽을 허물고 더 큰 자아를 함께 구성해 내려는 노력이었다.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
이화여대에서의 연속강연 모임은 내게 이러한 배경을 풍성하게 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이를테면 남자가 없는 세계에서 이뤄진 그 작은 모임들은 그러나 아무런 부재감(不在感)이 없이 나름의 성취를 향해 조금씩 견실하게 나아갔다. 참석한 학생들은 섬세하고 떳떳해 보였으며, 남자들과의 인위적인 조율과 절충, 그리고 역학에 의해서 가공된 제스처와는 다른 여성성의 한 단면을 조용히, 그리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남성중심주의의 폐해에 대한 비판과 기롱조차도 차분했고 결코 위협적이지 않았다. 특히 뒤풀이에서 오가는 그들의 활달하고 재치 있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이미 그들은 여성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살며시 뛰어넘어, 숨겨진 그들의 자아를 발랄하게 드러내며 나름의 세계를 꾸며가고 있는 듯했다.
자본주의적 근대란 남성중심의 세계가 전면에, 그것도 가장 체계적으로 노출된 모습에 다름 아니다. 또한 그것은 무엇보다도 소란한 세계이며, 실존적 심층의 소욕에 닿지 못하는 숱한 피로감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근대를 자성하는 중에 여성성의 깊이와 침묵을 새삼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남성 중심의 근대화에 우리 남성들의 근육과 뼈대가 물러지고 다시 추스려 생길 ‘정신’조차 없어진 듯한 공허한 순간에, 우리 여성들은 숨어서, 차분하게 낮은 소리로 다음 세대를 살아갈 좀더 큰 자아의 탄생에 골몰하고 있었던 것일까? 정녕 여성은 근대화를 넘어 도래할 세상에서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김영민/ 한일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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