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바깥 문명들에서 그러듯, 우리도 수를 헤아릴 때 십진법을 사용한다. 십진법이 가장 보편적인 기수법이 된 것은 말할 나위 없이 사람의 손가락이 열 개이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어에서 고유어로 헤아릴 수 있는 가장 큰 수는 아흔아홉이다. 곧, 두 자리 수까지만 고유어로 헤아릴 수 있다. 중세 한국어에서는 백(百)을 뜻하는 ‘온’과 천(千)을 뜻하는 ‘즈믄’이 쓰였지만, 이제 그 말들은 사라져버렸다. 외솔 최현배에 따르면 이밖에도 만(萬)을 뜻하는 ‘골’, 억(億)을 뜻하는 ‘잘’, 조(兆)를 뜻하는 ‘올’ 따위의 고유어 수사가 있었다고 하지만, 불확실하다. 고유어의 한 자리 수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이고, 두 자리의 기본 수는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이다.

평범한 사람의 언어적 직관으로 보아도,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이라는 말들의 뒷부분이 기원적으로는 동일한 형태소였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또 셋과 서른, 여섯과 예순, 일곱과 일흔, 여덟과 여든, 아홉과 아흔이 의미적으로만이 아니라 형태적으로도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는 게 한눈에 보인다. 우리말에서 특이한 것은 둘과 스물, 넷과 마흔, 다섯과 쉰 사이에 있을 법한 형태적 관련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유어 수사들은 또 여러 변이형태들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이 말들이 관형사로 쓰일 때, ‘하나’는 ‘한’이 되고, ‘둘’은 ‘두’가 되고, ‘셋’은 ‘세’가 되고, ‘넷’은 ‘네’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짐승이나 물고기를 셀 때 “하나 마리, 둘 마리, 셋 마리, 넷 마리”라고 말하지 않고,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관형사들 가운데 ‘세’와 ‘네’는 단위를 나타내는 일부 불완전 명사 앞에서는 ‘서’와 ‘너’ 또는 ‘석’과 ‘넉’으로 다시 바뀌기도 한다. 서 돈, 서 말, 서 푼, 서 홉, 석 달, 석 자, 석 장, 석 줄, 너 근, 너 되, 너 말, 너 푼, 너 홉, 넉 달, 넉 섬, 넉 자 같은 말에 이 ‘서’ ‘석’ ‘너’ ‘넉’이 보인다. ‘스물’도 관형사로 쓰이면 “스무 집” “스무 개”에서처럼 ‘스무’로 변한다.

‘다섯’과 ‘여섯’은 형태를 그대로 지닌 채 “다섯 마리, 여섯 마리”에서처럼 관형사로도 사용되지만, 단위를 나타내는 일부 불완전 명사 앞에서는 역시 ‘닷’과 ‘엿’으로 변하기도 한다. 닷 냥, 닷 말, 닷 돈, 엿 냥, 엿 말, 엿 돈 따위의 표현에서 그 ‘닷’과 ‘엿’이 보인다. ‘다섯’은 또 수사로 쓰이든 관형사로 쓰이든 불명료함을 드러낼 때는 ‘댓’으로 변한다. “군인 댓을 데리고 오다”나 “잉어 댓 마리”라고 말할 때, ‘댓’은 ‘다섯 가량’의 뜻이다.

‘두엇’이나 ‘너덧’도 ‘둘 가량’ ‘넷 가량’의 뜻이지만, “둘보다는 좀 많은” “넷보다는 좀 많은”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두엇’의 ‘엇’이나 ‘너덧’의 ‘덧’이 ‘셋’ ‘다섯’과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너덧’은 “그 남자 애인이 너덧은 될걸”이나 “강아지 너덧 마리”에서처럼 수사로도 관형사로도 쓰이지만, ‘두엇’은 “친구를 두엇만 불러라”에서처럼 수사로만 쓰일 뿐 관형사가 되면 ‘두어’로 바뀐다. 예컨대 우리는 “쌀 두엇 가마”라고 말하지 않고 “쌀 두어 가마”라고 말한다. “쌀 두어 가마”는 “쌀 두 가마쯤”이라는 뜻이지만, 두 가마에서 좀 넘친다는 뉘앙스가 있어서, 두 가마에서 모자랄 때는 사용되지 않는 듯하다.

이 숫자들은 또 앞이나 뒤의 숫자와 결합하면서 흔히 조금씩 형태를 바꾼다. 한둘, 두셋, 서넛, 두서넛, 네다섯, 네댓, 대여섯, 예닐곱, 일고여덟, 일여덟, 열아홉 따위의 말들에서 보듯, 이 숫자들이 혼자 쓰일 때와는 달리 조금씩 그 형태가 일그러져 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댓, 두엇, 너덧과 함께 이런 수사들을 불확정수라고 한다. 한둘, 두셋, 서넛, 두서넛은 관형사가 되면 한두, 두세, 서너, 두서너로 바뀐다. 물고기의 수효가 딱 넷일 때는 “네 마리”이지만, 셋인지 넷인지 확실치 않을 때는 “세네 마리”가 아니라 “서너 마리”다.

서수사(사물의 차례나 등급을 나타내는 수사)는 양수사(기본 수사) 뒤에 접미사 ‘째’를 붙여서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따위로 만들지만, ‘하나’에 대응하는 서수사는 예외적으로 ‘첫째’다. 그러나 두 자리수 이상이 되면 다시 ‘하나’로 돌아와, ‘열첫째’ ‘스물첫째’가 아니라 ‘열하나째(열한째)’ ‘스물하나째(스물한째)’가 된다. 이밖에도 접미사 ‘째’가 덧붙을 때 양수사의 형태가 살짝 변하는 예가 더 있다. 열두째, 스무째, 스물두째 따위의 말들이 그렇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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