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한.미 반도체 분쟁에 대한 세계무역기구 (WTO) 의 결정을 놓고 제각기 ‘우리가 이겼다’ 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은 “WTO 제소의 핵심사안인 미 상무부의 반덤핑 규정에 대해 WTO가 한국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국에 시정을 권고했다” 며 우리측의 승리가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측은 “미국의 반덤핑법을 약화시키려던 한국의 주장은 WTO에서 기각됐으며 WTO 결정 이후에도 미국의 제도가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고 주장하고 있다.
◇ 한국측 주장 = 한국은 WTO제소를 통해 ▶장래의 덤핑가능성을 문제삼는 미국의 반덤핑 제도 ▶장래의 덤핑가능성을 근거로 한국업체에 내린 반덤핑 판정 ▶이에 따른 반덤핑관세의 철회 등 세가지를 요구했다.
이중 미국의 반덤핑 제도 전반을 광범위하게 따진 첫번째 사안은 한국측의 입장이 기각됐지만 한국산 반도체에 적용했던 반덤핑 판정은 한국측의 손을 들어줬다.
반덤핑 관세의 철회여부에 대해서는 “미국이 WTO와 합치하지 않는 사안을 여러가지 방안으로 이행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제안하지 않는다” 는 표현으로 사실상 ‘무판정’ 을 내렸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
외교통상부는 이에 대해 “쟁점의 핵심인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반덤핑조치의 근거가 되는 미국의 규정이 문제가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며 “나머지는 부수적으로 미국의 반덤핑 제도 전반에 걸쳐 제기했던 문제들” 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미국은 우리측의 핵심 제소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없이 자국내의 여론을 의식해 미국 반덤핑법의 주요 내용이 현행대로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 설명했다.
미국은 지난 4월 일본과의 코닥 – 후지필름간 분쟁건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패소했음에도 사실상 미국측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는 아전인수식의 해석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 외교부의 설명이다.
외교부는 “다만 반덤핑관세의 철회가 당장 이뤄지지 않아 당장 이득은 없지만 미국이 자의적으로 휘둘러온 반덤핑 규정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이는 개별 나라의 관세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을 회피해온 WTO의 관행에 따른 것” 이라며 “앞으로 WTO의 권고에 따라 미 상무부 규정이 개정되면 재심절차를 통해 반덤핑관세철회를 추진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업계 등에서는 “이번 판정은 보기에 따라 양국이 각기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며 “이번 WTO 패널 결정자체에 대한 해석논란보다 앞으로 이행과정에서 사태를 주도하기 위한 양국간 신경전의 성격이 짙다” 고 분석하고 있다.
◇ 미국측 주장 = 이번 WTO 판정은 미국에 유리하며 따라서 만족스럽다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 ▶오직 한가지 (미국의 ‘덤핑 재발 조항’ 이 WTO 협약과 어긋나므로 고쳐야 한다고 권고한 것) 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분야에서 WTO가 미국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 이번 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덤핑 관세 철회를 WTO가 미국에 권고해야 한다” 는 한국의 요구를 WTO가 ‘거부’ 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덤핑 재발 조항을 고치라’ 는 WTO의 권고에 대해서는 “이는 기술적인 문제로 한국산 D램에 대한 반덤핑 조치나 다른 반덤핑 조치들을 건드리지 않고도 손쉽게 다뤄질 수 있는 것” 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아 이번 판정은 미국의 반덤핑 제도가 국제 교역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기준을 갖추고 있다는 것” 이며 나아가 “미국은 앞으로도 한국산 D램 덤핑에 대해 WTO의 결정에 합치되게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것” 이라고 윌리엄 데일리 장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미국은 또 ‘덤핑 재발 조항’ 을 제외한 나머지 5개 분야에선 모두 WTO가 미측 입장을 지지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 관계자들은 한국측의 WTO 판정 해석에 자못 놀라움을 표시하며 “한국이 무엇을 근거로 승소를 주장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고까지 말하고 있다고 이들과 접촉한 우리측 관계자는 전했다.
◇ 한.미 반도체 분쟁이란 = 91년 미국의 마이크론사가 현대반도체.LG반도체의 D램 반도체가 미국으로 덤핑 수출되고 있다며 미 상무부에 조사를 요청하면서 시작된 문제로 미 상무부는 93년 이에 대해 반덤핑 최종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은 이후 3년 연속 실시된 재심에서 덤핑혐의가 없거나 덤핑마진이 무시될 정도라는 ‘미소마진판정’ 을 받았지만 미국은 이들 업체가 ‘장래에 덤핑할 가능성이 있다’ (덤핑재발조항) 는 이유로 반덤핑관세를 철회하지 않았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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