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나네아 광산노동자, 해고에 맞서 파업투쟁
메히꼬 노동뉴스, 12/2
메히꼬광산·금속노조(STMMRM) 65지부는 11월 19일, 소노라주에 있는 메히꼬광산회사 소유의 까나네아 구리 광산에서 파업을 벌였다. 회사가 노동자 135명의 해고를 발표하자 노조는 광산 작업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대응했다. 파업은 회사의 구리 생산량을 매주 약 2백만톤씩 감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몇몇 부산물의 생산량도 떨어뜨렸다. 소노라는 올해 초, 메히꼬의 주요 철로중 하나를 봉쇄시킨 철도 노동자들의 살쾡이 파업이 벌어졌던 바로 같은 주이다.
회사는 구리 가격의 하락으로 애초 135명의 노동자들을 해고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업이 시작되자 일주일 후, 회사는 2,100명의 또 다른 노동자를 영구히 해고시킬 것이라는 발표로 보복했다. 까나네아시 35,000여 거주민의 생계는 전적으로 광산회사에 달려있으며 인접 지역에도 할만한 다른 일자리는 거의 없다.
메히꼬 정부는 회사 기계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까나네아 시장은 파업이 끝날 때까지 모든 술집과 주류 가계를 휴업시키면서 “금주령”을 선포했다.
지금까지 어떤 폭력 사태도 보고된 바 없다.
주의회 및 대중조직들, 광산 노동자 지지
제도혁명당(PRI), 전국행동당(PAN), 민주혁명당(PRD)로 나뉘어진 소노라 주의회는 65지부와 광산 노동자들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소노라 까나네아에 있는 65지부 노조의 광산 노동자들에게 완전한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바이다”라고 성명서는 쓰고 있다. 의회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가능한 한 해고가 없는 가운데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의회뿐만 아니라 노조, 공동체 조직, 그리고 학생들의 연합체인 법사회조직전선(FAOS) 또한 광산 노동자들을 지지했다. 소노라 대학의 일부 학생들은 버스를 세워 바리케이트로 삼아 소노라주의 수도인 에르모시요를 봉쇄하며 파업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광산 노동자들의 자녀들인 다른 학생들 또한 부모의 해고가 자신들의 교육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노동자들은 몇 차례의 시위와 대중 집회를 가지면서, 일자리가 위태롭게 된 원래의 135명과 이후 발표한 2,100명 모두를 재고용할 때까지 파업은 계속될 것이라는 자신들의 결의를 표명했다.
65지부는 상급 노조인 광산·금속노조(의장 : 나뽈레온 고메스 사다)로부터 거의 아무런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고메스 사다는 주와 고용주의 이해를 떠받치며 거드름만 피워댔다.
회사의 협박
회사는 까나네아에서 배포한 유인물에서 “법에 의해 규정된 개별 및 집단적 노동관계법과 단체협상의 종결 요구를 연방 화해 및 조정 위원회의 선결 과제로 두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또한 광산의 이용과 정당한 재산을 빼앗은 사람들에게 법적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정부에서 가장 교활한 인물 중 한 명인 노동부 차관, 모크떼수마 바라간이 이 분쟁의 중재를 시도했고 우리세스 마끼아 대주교도 중재를 제의해 왔다.
역사적인 광산과 노조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광산 중의 하나인 까나네아는 1906년, 이곳에서 있었던 유명한 파업으로 인해, 흔히 메히꼬 노동운동과 메히꼬 혁명(1910-1920)의 산실로 언급되곤 한다. 그당시 광산은 “까나네아 구리왕”, 윌리암 그린 대령이 소유했었다. 후에 메히꼬 정부가 이 광산을 국유화했으며 수십년 동안 국영 기업으로 운영되었고 1989년 까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 시절에 민영화되었다. 당시 광산은 파산이 선언되었고 군대에 의해 점유되다, 마침내 현재의 주인인 호르게 라레아와 그의 그룹에 매각되었다. 새로운 경영진은 단체협상을 고쳐 쓰고 65지부 노동자들에게 더 “유연한” 단체협상을 수용하도록 요구했다. 65지부 지도부와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자신들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회사는 더 낮은 생산 비용을 위해 파업을 이용하고 싼 값의 비축량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 이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 노조는 메히꼬 도처에서의 광범위한 지지를 필요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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