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차례의 공습으로 사담 후세인을 잡을 수 있을까. 미국과 영국의 공습이 시작된 뒤 후세인은 안전한 장소에서 행한 대국민연설 을 통해 교전 대신 장거리 미사일공격을 택한 미국과 영국은 `겁 쟁이’라고 비난하면서 위대한 이라크 국민과 용감한 이라크군에게 `알라신과 아랍민족, 인류의 적’들과의 결사항전을 촉구하고 “알라께서 이라크의 승리를 내려주실 것”이라고 미국을 비웃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공격개시를 밝힌 연설에서 직접목표로 거론 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궁극 목표는 분명히 후세인 제거다. 그러 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지난 91년 걸프전 당시엔 쿠웨이트의 주권회복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승리의 증거가 있었다. 이번 공격에선 후세인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한 미국이 군사적 차원을 넘어선 정치적 승리의 증거를 찾아내기가 만만치 않으리란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젠 후세인의 일시적 후퇴같은 상황은 더 이상 승리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유엔사찰단의 활동을 확실하게 보장하겠다는 표면적인 명분을 내세웠지만, 되려 7년을 끌어온 사찰단의 활동과 외교에 의한 사태 해결은 이번 공격으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공군력과 미사일만으로 유엔결의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8년 동안 이라크 사태가 보여준 교훈이다.
걸프전 당시 미국 등 연합군은 2차세계대전 마지막 6주동안 일본열도에 쏟아부었던 폭탄보다도 많은 8만8500톤을 43일간 쏟아부었지만, 지상군의 투입없이 `막무가내’인 후세인의 제거는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2700대의 항공기와 70여만명의 병력과 동맹국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비교할 때, 영국의 폭격기 몇대가 추가된 200여대의 항공기와 2만4천명의 병력 등 미국의 현재 걸프전력은 훨씬 뒤처진다. 그때보다 나은 상황이라면 △8년동안 수집된 정보력 △보다 정교해지고 위력이 더해진 폭탄과 △약화된 이라크의 전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후세인의 제거를 담보할 순 없다.
클린턴은 공격사실을 발표하면서 민간인 사상자 가능성을 간단히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이라크가 세계여론을 향해 노리고 있는 점이다. 공습 직후 <로이터통신> 등 세계언론은 부상당한 민간인 부상자의 사진을 내보냈다. 후세인의 정치적 역공은 서방언론들에 의해 시작된 셈이다.
게다가
의 군사문제 담당자인 윌리엄 아킨 같은 이들은 미국의 공습이 후세인의 권력을 오히려 강화해줄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존 도이치 전 중앙정보국장은 “군사적 공격이 수단이 아니라 정책적 목표가 된다면 그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류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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