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계속되는 경제제재 속에서도 “돈벌이가 괜찮다”고 말하는 유일한 바그다드 시민은 살람 아비드뿐이었다. 그는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다. 사담의 초상화 500여개

가 그의 손을 거쳐 공공장소에 걸렸을 정도로 잘 나가는 화가다. 그리고 현재 바그다드에서 예전과 같은 풍요로움은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뿐이다. 시내를 달리다 보면 괜찮은 길목마다

어김없이 사담의 초상화와 마주친다. 인자한 미소인가 하면 어느새 근엄한 표정이고, 분노한 혁명가인 듯싶으면 아버지와 같은 자상함이 겹쳐 지나간다.

조직적인 우상화냐 자발적인 찬양이냐

시민들은 사담을 “이라크의 지도자이자 미국에 대항하는 아랍의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 알좌라공원의 사담 동상을 찍던 일본 사진기자가 체포당한 사건은 별난 일이 아

니다. 이 성스러운 ‘쇳덩어리’를 찍기 위해 주변에 깔린 무장 경비병들과 군 정보요원을 거치며 승강이를 벌이는 허가절차를 건너 뛴 탓이다. 어쨌든 동상 찍었다고 잡아가는 나라

는 세상에서 이라크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바그다드에는 우상이 존재하고, 살아 있는 신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담은 “내 얼굴 그리라고 시킨 적 없다. 인민들이 즐겨 하는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하고 한 외국 언론인에게 말했다. 현재 바그다드의 이런 현상이 조직적인 우상화 사업이건 인민들의 자발적인 찬양이건, 어쨌든 19년의 집권기간을 전쟁으로 날을 밝힌 사담 후세인이 중동 현대사에서 가장 ‘내구성’이 강한 통치자임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1979년 집권한 사담은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과 오일달러의 막강한 위력을 업고 국제사회에 ‘전쟁’을 앞세우며 등장했다. 1980년부터 이란과의 8년 전쟁을 거쳐 1990년 쿠웨이트 침공 그리고 1991년의 걸프전, 이후 8년간 계속되는 경제제재 속에서도 사담은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왔다. 특히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상황과 무기사찰단의 악착같은 추적에도 사담은

걸프전 이후 거의 궤멸상태에 이르렀던 군을 현재 약 50% 정도 복구한 것으로 알려져 광적인 무력숭배자로 낙인찍힌 상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공적1호로 지목된 사담은 한때 미국

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1979년 호메이니에게 놀란 미국은 이란식 회교혁명의 전파를 막기 위한 방파제가 필요했고, 같은해 집권한 사담은 가장 적합한 인물로 선택됐다. 1980년부터 시작된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 기간중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이라크를 은밀하게 전폭 지원함으로써 ‘정치적 안정’과 동시에 전쟁물자 수출로 막대한 경제적 실리를 챙겼다. 미국식 경제구조, 이른바 ‘군산복합체’가 가장 유기적으로 빛을 발했던 시절이다. 이후 냉전의 끝물인 1990년대 들어 미국은 사회주의체제 이라크를 통해 다시 새로운‘가치’를 발견했다. 미국은 냉전의 향수를 국가주의적 이익으로 전환시키는 절묘한 지점을 확보한 셈이다.

이라크 사람들이 바보인가?

이것이 바로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이어 걸프전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즉각 사담은 국제사회에서 ‘독재자’ ‘침략자’로 규정당했고, ‘악마’가 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됐다. 바그다드의 외신기자 모하마드(가명)는 “사담은 미국이 만든 영웅이다. 이라크 사람들이 바보인가? 우리도 분별력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 교수 아옵은 “사담이 싫든

좋든 그의 축출은 미국의 이익일 뿐”이라고 현실론을 강조한다. 미국의 ‘올가미’에 갇힌 20세기 마지막 ‘독재자’ 사담 후세인. ‘민족주의자’‘아랍통일주의자’로 국제적인

‘부랑아’ ‘테러리스트’ ‘과대망상증환자’로 그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그의 초상화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분명한 현실은 바그다드의 초상화 아래 수많은 인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마지막 남은 선택은 인민들의 삶을 위해 초상화를 내릴 것인지, 아니면 더 많은 초상화를 명령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21세기 이라크의 현실은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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