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폭격의 책임자들은 미국 역사에 부끄러운 한 획을 긋고 있다. 수많은 이라크의 남성, 여성, 아이들이 미국의 폭탄과 크루즈 미사일로 인해, 이미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다.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펜타곤 조차도 중간 강도의 공격으로만 만명 이상이 사망할 것이라 예측한 바 있으니 12월 16일에 개시된 총공격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클린턴 행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반동적인 목표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미국과 이라크 간 엄청난 자원의 불균형은 펜타곤이 취한 행위에 악몽같고 범죄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전개되고 양상은 전쟁 보다는 국가를 제재하는 강제 집행에 가깝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은 들것에 꼼짝없이 묶여 있는 한 개인이 아니라 방어 능력이 없는 국가의 비무장 민간인들이다.
백악관, 펜타곤, 의회는 물론 언론들도 여기에 합세하여 “우리의 영웅적인 걸프만 병사들”을 칭송하는 찬양가를 부르고 있다. 사실 모든 미국인들은 이 “영웅들”이 미국의 이름으로 수행하도록 명령받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영웅들”은 기꺼히 죽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정의하자면 바그다드 민중들은 최점단 살인 기계라는 상대적 안전 장치를 가지고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존경과 찬양을 받아야 할 것이다.
걸프만에 해군함을 띄우거나 바그다드 천 마일 상공에 B-52 폭격기를 띄우면서, 크루즈 미사일 발사 단추에 손가락 하나 올려 놓는 것이 특별한 용기는 아니다. 1991년
걸프만에 파병되었던 미군 병사들의 전사율은 자국에 있던 병사들의 사망률 보다도 낮다. 이라크 무기 보다 교통사고로 더 많이 사망했다. 지난 7년간 미 군관계자들을 향한 위험은 훨씬 더 감소했다. 미국의 군비 개발은 향상되었지만 이라크의 방어 시설은 실질적으로 파괴되었다. 더욱이 미국 조종사들은 과거 8년간 계속해서 이라크 영토를 정찰한 유엔 무기 사찰단이나 첩보 위성이 제공한 정보를 통해 목표물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이 야비한 작전을 맡고 있는 지휘자들에게 역사는 1870년대와 1880년대 인도의 집단 학살을 지휘했던 악당들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심판을 내릴 것이다. 이것 만큼은 확실한데 지금부터 50년, 아무도 자신들의 공적에 관해 ‘대전차 군단’, ‘지상 최대의 작전’, 혹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아이젠하워, 브래들리, 패튼, 니미츠와 같은 2차 세계대전 시기 지휘자들의 전략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그들은 충분히 반격할 수 있는 적에 대항해 자신들의 군대를 이끌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의 군사령관들은 펜타곤 관료 조직에서 승진을 해나가다, 무력한 주민 살상의 명령을 내리는 최고의 자리에서 임기를 지내고, 은퇴를 한 뒤에는 좋은 보수를 받는 기업의 중역 자리에 앉거나 미국의 다음 전격전을 다루는 텔레비젼 방송의 ‘자문가’가 된다.
2차 세계대전의 공포는 강한 인상을 일으키며 몇 세대의정치적 양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죽음의 나찌 수용소의 공개로 생긴 그것들 다음으로 가장 잊을 수 없는 인상은 독일 공군이 무방비 상태의 주민들-바르샤바, 로테르담, 그리고 가장 심했던 바스크 지방 상공-에게 빗발치듯 폭격을 퍼부운 것이었다. 잔인한 파시즘에 대항하는 분노를 널리 알린 피카소의 그림들을 변형시킨 것은 최후의 잔악 행위였다.
비록 미국에는 2차 세계대전 현장의 공포가 대체로 많이 남아 있었지만 미국을 전쟁-진주만 폭격-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은 상당한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역사적 분석의 견지해서 루즈벨트 행정부가 일본 정부를 미국과의 전쟁 이외에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는 상황으로 교묘하게 몰아 넣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본이 교전-선전 포고도 없는 진주만 폭격-을 시작한 방식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로부터 수십년간 “기습 공격”이란 말은 배신의 가장 천한 형태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2차 세계대전 말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1962년 미사일 위기 동안 케네디가 쿠바 침공을 반대하며 제기했던 몇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공격이 미국의 역사적 신망을 잃게 할 “기습 공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1988년 -대중적 반대에 대한 어떠한 공포도 없이-미국 정부는 형식적인 전쟁 선포는 말할 것도 없고 사전 경고도 없이, 이라크 폭격 개시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아마도 어떠한 민주 국가에도 정치적 표현의 영역에는 제한이 없을 것이다 군사 공격을 승인하는 결의안은 단지 다섯 개의 반대표만 가지고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대중 언론-텔레비젼, 신문, 라디오-는 완전히 미 전쟁 기계로 통합되었다. 공습의 영향을 평가하거나 미국 국민들에게 현대전의 공포스런 현실을 전달하는 중요한 시도는 없었다. 언론은 수많은 폭탄과 미사일이 이라크를 공격하지만 단치 몇명의 사상자를 낼 뿐이라며 방부처리된 손해없는 전쟁이라는 전망을 제시하면서 펜타곤의 선전을 가공하지 않은채 그대로 떠들어대고 있다.
폭격당하고 궁핍한 국가에서 실제 사망자수는 케냐 주재 미 대사관에 겨냥되었던 폭발을 생각하면 더 잘 추정될 수 있다. 미 크루즈 미사일 단 하나 정도의 무게를 지닌 원시적 폭탄이 거의 300명을 죽일 수 있다면 시카고 크기의 대도시인 바그다드를 강타한 수많은 미사일의 효과는 무엇일까?
이라크에 대한 클린턴 행정부의 공격은 노동자 계급에 널리 퍼져있는 정치적 혼란을 이용하고 있는데, 순진한 애국심과 경제적 기회의 박탈로 인해 대규모로 군에 입대한 자식들에 대한 그들의 염려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과 펜타곤은 새로운 걸프만 전쟁에 대한 엄청난 잠재적 적대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현재의 공격을 위한 예행 연습이 있었던 2월에 이를 알았는데 그때 정부 대변인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열린 이라크 위기에 대한 대중 토론회를 비난했다. 사전 경고나 충분한 여론 형성 과정도 거치지 않은채, 공습에 착수하기 위한 그 다음의 과정은 이라크에 대한 전략적 기습을 설득하려 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들에게 그것을 기정 사실로 발표한 것이었다.
미국 언론이 너무 뻔뻔스럽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며 어리석다는 것 또한 설명이 필요없다. 공식 기사에서의 모순들은 날이면 날마다 쌓여간다. 클린터은 공격을 발표하면서 그들의 목표가 이라크의 가공할 “대량 파괴적인 -핵, 생화학-무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대변인들은 지금 그런 공장 중 단 하나도 미국의 군용기와 크루즈 미사일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펜타곤-뻔뻔스런 거짓말쟁이-이 내세운 이유는 이라크 시민들이 생화학 물질의 방출로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이유는 무기 생산 공장이나 저장고가 없다는 것이고 미군은 존재하지 않는 공장에 폭탄이나 미사일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폭격의 실제 목표는 이라크의 재래식 군 자산-군대, 탱크, 방공용 무기-과 산업 기본 시설이었다. 펜타곤이 생화학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라 부른 것은 양조장, 낙농장, 살충제 공장 그리고 어떤 산업 사회에서도 흔히 있는 식품 가공과 화학 처리 공장들이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 전쟁의 진정한 본질이 드러나면 미국에는 격변의 물결이 감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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