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나라 학교에 집단따돌림을 당하는‘왕따’ 학생이 약 5천4백 명 정도나 있다고 한다. 전국 초·중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기명 조사로 밝힌 결과다. 교육부의 공식적인 조사 보고인데도 그 숫자가 사실처럼 믿기지가 않는다.‘왕따’ 숫자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의외로 그 수가 적어서 믿기지가 않는다. 조금 더 심층적으로 조사해 내기만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교실에서 따돌림받는 학생수는 상당할 것이다.

우리의 학교 문화는 학생의 인권 보호에 관한 한 사각지대라 그렇다. 또한, 교실에서의 따돌림은 학생들간에 거래되는 은밀한 학생 문화였기에 그것이 제대로 포착될 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요즈음은 춥고 배고파서 무료급식을 받는 학생들마저도 ‘왕따’로 찍히고 있다. 큰일날일이다.

‘왕따’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왕따’는 사회 문제이기에, 학생들간의 문제로만 적당히 비켜나가게 할 수는 없을 듯 싶다. 사안이 그렇기는 해도 일단 학교 교육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볼 만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첫째로 학교는 집단따돌림을 없애기 위한 타문화 접촉 교육부터 철저하게 해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며, 더불어 성취하는 신뢰문화가 교육의 토대가 되도록 해야한다.

‘왕따’현상은 학생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병든 집단 문화의 한 단면이다. 사람간의 서로 다름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신뢰문화가 싹터야 한다. 유색 인종간의 차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 교육도 교실과 사회 현장에 타문화 신뢰 문화를 제도화한 뒤로 그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었다. 신뢰 문화를 교실 교육에 정착시키려면 집단따돌림에 대한 이해부터 달리해야 한다.

집단따돌림은 학생들의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단순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다른 아이를 부정하고 약자로 만들어 우월해지고 싶은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학교 교육에 대한 분노 때문에 생긴 결과가 ‘왕따’현상이다. 약자나 이단자에 대한 배려가 집단 압력을 이겨내지 못할 때‘왕따’ 현상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우리의 ‘왕따’는 일본의 ‘이지메(집단괴롭힘)’에 다름아니다. 일본이나 우리 사회같은 집단주의 문화, 대화와 토론 부재의 문화, 단일민족 사회의 교육 현장에서 자주 발견되는 집단 병리 현상이 바로‘왕따’다. 남의것은 나와 다르다는 생각을 참아내지 못하는 문화적 병리 증세가 바로 그것이다.

둘째로,‘왕따’ 문제를 포함한 학생 인권이 존중받는 학교 교육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두말할 것 없이 우리의 닫힌 교육부터 열어제쳐야 한다.

지금과 같이 학교 스스로 앞장서서 아이들을 시험으로 가두고, 성적으로 ‘왕따’하는 한 학교에서‘왕따’현상이 사라지기는 매우 어렵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학교가 학생에게 교육적으로 좋은 것만 가르쳐줄 수가 없다. 학교는 가정 환경의 문화가 엄청나게 서로 다른 아이들을 모아 공부하게 만든 곳이다. 이런 학교 문화가 조화롭게 되려면, 더불어 사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며,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법부터 먼저 익히게 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학교가 실제로 하는 일은 그렇지가 못하다. 학교처럼 나먼저 사는 법을 가르치는 곳도 드물고, 학교만큼 경쟁과 이기주의를 가르치는 곳도 드물다.

이것저것 말로는 다 열어놓고도 학교는 끝내 성적으로 학생들을 닫아 놓는다. 이것이 닫힌 교육이고 그것이 ‘왕따’의 시작이다. 이런 닫힌 교육에서 아이들은 폭력의 위력도 배우고, 따돌림의 정당성도 익히게 된다. 교사가 체벌을 가하면서 폭력의 부당성을 가르치면 그것이 제대로 배워질 리가 없다. 골찌에게 성적순으로 창피나 주면서 인권 존중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고 해서 그것을 곧이곧대로 익힐 그들도 아니다. 지금처럼, 학교가 1등과 꼴찌들을 생산해내며 그들에게 성적순으로 창피나 주는 한 아이들 마음 속에 생기는 학교에 대한 분노를 막을 길이 없다.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학급 파괴 현상이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분노 때문에 생기고 있다는 점을 우리 역시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학교가 자녀들이 편안하게 공부할 만한 그런 안심스런 곳이 되려면, 학생의 개인 권리에 대한 학교의 기존 관행부터 바꾸어야 한다.

교육청이 이런 ‘왕따’ 문제를 학교 문화 개혁 차원에서 바꾸어놓지 않으면, 그 어느 학부모처럼 교육 운동 단체가 법에 호소해서라도 바로잡을 수 밖에 없다.

<韓駿相·연세대 교수. 교육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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