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한파. 그 긴 터널 속 서민들 억장 무너지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총풍’·‘세풍’에 정치권은 진흙탕 싸움. 분노한 민심은 ‘뇌사국회’ 감시에 나섰고 ‘환란 주범’ 재벌들은 소액주주들의 ‘반란’에 직면. 그리운 금강산 물길도 터졌다.

숨가빴던 한해. 본지는 시민운동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시민단체 실무자 1백42명을 대상으로 ‘시민운동 1년 평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기간은 지난 15일부터 8일간. 전화와 팩스를 이용, 서울 포함 전국 3백여 단체를 대상으로 했지만 응답한 단체는 55개였다.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 시민운동가들은 올 한해 ‘주목할만한 시민운동가’로 그를 꼽았다. ‘올해의 시민단체’ 역시 ‘참여연대’.

이 단체가 벌였던 ‘소액주주 운동’은 시민운동 10대뉴스의 으뜸으로 떠올랐다. 참여연대는 지난 1년간 시민운동가들의 애정과 기대를 한몸에 받은 셈이다.

올 한해동안 가장 활발했던 시민운동 분야는 ‘환경’ ‘경제’ ‘인권’. 반면 ‘농업’ ‘여성’ ‘정치’ 분야는 가장 미진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또 시민운동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역시 재정란. 가뜩이나 회원 구조가 열악한 상황에서 환란 위기는 설상가상. 시민운동가들은 회비 감소가 두드러졌고, 시민들도 냉담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시민운동에 도움을 준 정치인·관료는 누굴까. 시민운동가들은 정치권에 몸담기 전 여성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이미경 의원(한나라당)을 ‘올해 시민운동 디딤돌 정치인’으로 선정했다. 그 뒤를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의원(국민회의)이 바짝 쫓았다. 반면 걸림돌 정치인·관료로는 김종필 총리, 박상천 법무부장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디딤돌 정치인으로 주목됐던 김대중 대통령이 그 뒤를 이어 시민단체들의 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새정부의 1년 개혁 성적은 ‘보통’에서 약간 밑도는 수준. 내년 시민운동이 주력할 개혁 목표는 ‘정치’ ‘재벌’ ‘언론’ 등의 순이었다.

△올해의 시민운동가·시민단체=참여연대를 이끌고 있는 박원순 사무처장. 그가 시민운동가들이 뽑은 ‘올해의 시민운동가’로 꼽혔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응답자의 34.4%가 그를 주목했다. 소액주주운동, 5대 재벌 형사 고발 등 권위주의 시대의 강자를 견제하고 작은 권리 찾기 등을 통해 약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했다는 것.

그간 대주주의 횡포에 벙어리 냉가슴이었던 소액주주들. 이들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개미군단’으로 부각시킨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장하성 위원장. 그 역시 같은 맥락으로 시민운동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뒤를 이은 게 환경련 최열 사무총장. IMF시대, 경제회생 논리에 밀린 환경 규제 축소 움직임에 반기를 들었던 점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시민운동가들이 꼽은 ‘올해의 시민운동가’로는 불심검문 문제를 부각하고 알맹이 없는 인권법 제정에 반대했던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 관변단체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의 개혁 수문장으로 주목되는 강문규 대표, ‘뇌사국회’ 회생을 위해 국회 감시에 들어간 정개련 의회발전시민봉사단 양세진 사무국장 등이다.

‘올해의 시민단체’로 역시 참여연대가 부상했다. ‘올해 주목할만한 활동을 벌인 단체’를 묻는 질문에 시민운동가 10명 중 6명 이상(63%)이 참여연대라고 응답했다. 환경련이 그 뒤를 이었고, 시민운동의 선두주자인 경실련이 꼽혔다.

△올해 10대뉴스=시민운동가들이 뽑은 올해 시민운동 10대 뉴스 1면 톱 기사는 ‘소액주주운동’이 장식했다. 응답자의 23.9%가 이를 꼽았다. 천혜 자연의 보고 강원도 동강 어라연 계곡에 울려퍼졌던 동강살리기 운동(7.14%)이 그 뒤를 이었고, 그린벨트 대폭 완화 등 환경규제완화에 맞섰던 투쟁(6.83%)과 경실련이 주도한 국회의원 손배소송 승소(6.52%)가 주요 뉴스로 떠올랐다. 이밖에 최근 시민단체의 ‘관변화’란 지적을 받고 있는 제2건국위 논란(4.66%), 의회발전시민봉사단의 ‘국회 감시’활동(4.66%), 실업자 운동 본격화(3.36%), 부패방지법 제정운동(3.11%), 조선일보 공동대책위 활동(2.17%), 예산감시운동(1.86%), 새만금 백지화 운동(1.86%) 등이 올해 시민운동 주요 뉴스로 꼽혔다.

△시민운동 활발·미진했던 분야=시민운동가들은 올 한해동안 가장 활발했던 시민운동 분야로 ‘환경’을 꼽았다. 최근 불거져나왔던 그린벨트 정책 대폭 후퇴와 환경 호르몬 문제가 대두됐고, 대전지역 방사능 오염 문제도 제기됐었다. 이에 대항한 환경운동이 치열히 전개된 것. 또 IMF상황에서 쓰레기 재활용 운동도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됐다.

환란 주범으로 꼽힌 재벌 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등 경제 개혁 운동이 환경에 이어 가장 활발했던 분야로 평가됐고(21%), 인권(13.9%), 정치(11.36%), 노동(9%), 사회복지(7%) 등의 순이었다.

△내년 시민운동 개혁과제=‘뇌사국회’ ‘식물국회’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구조조정의 무풍지대로 남아있는 정치권. 시민운동가들은 내년의 가장 큰 개혁 과제로 ‘정치개혁’(22.74%)을 꼽았다. 구조조정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던 ‘재벌 개혁’(20.67%)도 시급한 과제.

다음으로 거대 권력 기관으로 군림하는 ‘언론 개혁’(19.12%)이었고, 경제논리에 밀리는 ‘환경보전정책’(10.85%)과 ‘사회복지’(8.35%), ‘행정개혁’(7.24%) 등의 순이었다.

△애로사항=올 한해 동안 시민운동가들이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뭘까. 역시 시민단체들의 경제난. 10명중 4명 가까운 활동가들이 ‘회비감소‘(37%)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의 냉담’(15.5%)도 시민운동가들의 고민거리. 선뜻 시민운동에 동참하려고 나서는 시민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언론 매체의 무관심’(13.79)도 이에 한 몫했고,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력감소로 ‘지나친 업무과중’(13.79%)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시민운동 디딤돌·걸림돌 정치인=이미경 의원(한나라당)이 ‘디딤돌 정치인’으로 선정됐다. 시민운동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했다는 평가다. ‘시민운동 발전에 도움을 준 정치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1.6%가 이 의원을 꼽았다. 다음은 김대중 대통령(10.96%). 정권교체 이후 “시민과 정부의 동반자 관계를 설정”했다는 등의 호평이 있었다. 국민회의 노무현 의원은 현대자동차 분규를 중재하고, 노사정위에서 노동계 참여를 보장하려고 노력한 인물로 응답자의 10.2%가 디딤돌 정치인으로 꼽았다. 다음으로는 해안 매립 정책을 폐지하는 등 친환경정 정책으로 눈길을 끌었던 김성훈 농림부장관(9.59%), 국민회의 김민석(7.53%), 이성재(7.53%) 의원, 이해찬 교육부장관(5.48%), 국민회의 김근태(4.79%), 추미애(3.42), 방용석(3.42%) 의원이 뒤를 이었다.

반면 시민운동 발전의 ‘걸림돌 정치인’으로는 “개혁 분위기에 딴죽을 건다”는 등의 이유로 김종필 총리(14.21%)가 제일 많이 꼽혔고, 박상천 법무부장관(13.66%)이 “인권법·부패방지법 등 각종 개혁 입법을 가로막는다”는 등의 이유로 그 뒤를 이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경우 “당리당략에 따른 당운영” 등으로 설문 응답자의 13.1%가 걸림돌 의원으로 지목했다. 특기할만한 것은 디딤돌 정치인으로 2위에 랭크된 김대중 대통령이 걸림돌 정치인 순위 4위를 차지한 점이다. 김 대통령에 대한 평가 기복이 큰 것이다.

△새정부 개혁 성과·실책=IMF체계 아래서의 1년. 새정부 개혁 성적은 몇점일까. 시민운동가들은 비교적 신통치않게 평가했다. ‘보통’이라는 응답자가 41.67%로 가장 많이 차지했고, ‘잘했다’는 응답(25%)보다 ‘못했다’는 응답(27.27%)이 조금 많았다.

그렇다면 가장 큰 성과로 꼽을만한 건 무엇일까. 시민운동가들은 새정부 성과를 묻는 질문에 7명 이상이 경제 분야를 꼽았다. ‘금융구조조정’이라는 응답이 33.72%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재벌개혁’(32.56%), ‘경기부양’(20.93%)이었다.

반대로 가장 큰 실책으로는 ‘정치개혁’(21.51%)이 미진한 것을 들었고, ‘실업대책’(17.2%)과 ‘제2건국위 결성’(17.2%), ‘재벌개혁’(15%), ‘언론개혁’(11.8%)의 순이었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에서 ‘시민운동을 활발하게 벌인 서울 외 지역 시민단체를 꼽으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률은 다소 부진해 정확한 통계를 내진 않았지만 그중 제일 많이 꼽힌건 전국적 운동으로 벌어졌던 ‘동강살리기 주민대책위’였고, 환경운동을 비롯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가 그 뒤를 이었다.

본 설문 응답자의 평균 연령은 32.8세로 젊은 시민운동가들이며, 성비는 남 61%, 여 39%이다. 이들의 평균 활동 연수는 3.8년. 설문지는 전국적으로 배포됐으나, 서울지역이 대부분을 차지했다(78.9%).

/ 김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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