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좌우의 양날개로 난다지만 전 지구적 금융자본은 신자유주의라는 오른쪽 날개로 세상을 뒤덮으려 한다. 반면 유럽과 한국은 양날개가 아닌「제3의 날개」로 비상하고 싶어한다.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영국 블레어 정부를 위시해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정권을 잡은 좌파연립정권의 정책기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정부도 「제3의 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개혁을 추진중이다.
이런 와중에 번역된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노르베르토 보비오(89)의 「제3의 길은 가능한가」(새물결출판사)는 「제3의 길은 대중을 현혹하는 사이비 샛길」일 뿐이라고 「딴죽」을 거는 문제작이다. 「제3의 길」을 양극단의 산술평균에 불과한 양비론적 중도론이라 내치면서 「죽은 개」취급을 받는 좌파·우파 2분법이야 말로 옳은 것은 옳다고 내세울 줄 아는 「중용」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공산주의를 좌파의 모든 것으로 보자면 좌파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이후 무덤 속에 있을 테지만 저자는 좌파를 「평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하면서 좌파의 부활을 강조한다. 보비오는 70년대에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닌 마르크스 자체의 오류와 결함을 지적해 유럽을 3년간 「보비오논쟁」에 휩싸이게 만든 장본인.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에서도 20명이 나머지 80명을 먹어 살려야 하는 불평등 사회의 도래가 점쳐지고 선진국과 제3세계의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마당에 좌파와 우파를 규정하지 않는 「제3의 길」은 현실을 호도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좌파·우파는 현실 사회주의 괴멸 이후의 현실을 더 선명히 설명해주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정치집단이 좌우로 나뉘어 경쟁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자유주의=우파」가 개인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한 역사를 비판하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현찰이 많은 사람은「이대로」를 외치는 가운데 무수한 실직자·홈리스가 양산되는 등 중산층이 엷어지며 경제적 양극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에서의 개혁·개방·구조조정·효율성·합리화 등 시대적 명제가 무수한 사람의 평등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전언으로 들린다.
물론 IMF체제 탈출에 민족적 사활을 걸고 있는 마당에 좌파·우파를 구분하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는 게 「한가한 소리」로 들림직하다. 게다가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에서 살아오면서 아직도 「좌파」라고 하면 마녀사냥하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므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보비오의 철학이 떨떠름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온전한 좌파를 경험하지도 못한 채 좌·우를 넘어선다는 한국의「제3의 길」이 부실공사의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이 책의 함의(含意)는 경청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원제는 「좌파냐 우파냐」. 지난 94년 출간돼 이탈리아에서 20여만부가 팔려 그해 최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세계 2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소장 사회학자 박순열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이밖에 보비오의 책은「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은 존재하는가」(의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문학과지성사) 등이 번역돼 나와 있다. 〈김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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