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창구에 예년보다 큰 혼란이 빚어졌다. 수능 성적의 변별력이 떨어진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수능 고득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대학의 얄팍한 전략이 혼란을 한층 부추기고 있다. 논술에 대한 수험생들의 부담감을 의식한 일부 대학은 지난 29일 뒤늦게 논술 비중을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원서 마감을 하루 앞두고 사실상 대학입시 요강을 바꾼 것이다.
논술 고사 비중 축소는 논술고사의 존재의미를 대학 스스로 부정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논술고사는 두가지의 교육적 목표를 겨냥하고 있다. 논술고사는 객관식 또는 단답식 문제뿐인 수능고사의 약점을 보완하는 한편,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촉진하리라는 기대를 안고 시작됐다. 맹목적인 주입식 교육은 한국 교육이 지닌 병폐를 상징하는 터이다. 창의적인 발상, 다양한 시각, 폭넓은 사고력을 키우는 데 논술고사는 안성맞춤의 도구였다. 사물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력을 가늠케 하는 논술 능력은 다양한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만 향상될 수 있다. 결국 논술의 비중을 낮춤으로써 중요한 교육목표를 대학이 포기한 꼴이 됐다.
`경기가 한창 진행중인데 갑자기 경기규칙을 바꾼 것’도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입시 요강은 대학과 수험생이 오래전에 맺은 약속이자,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게임규칙이다. 대학은 느닷없이 그 규칙을 바꾸면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그 피해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수험생들이다. 입시요강을 믿고 준비해 온 수험생들이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특히 논술고사의 의미를 존중해 착실하게 실력을 키워온 수험생들의 실망은 클 것이다.
수능의 변별력이 낮기 때문에 논술의 변별력을 인위적으로 낮출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이해하기 어렵다. 논술은 처음부터 변별 도구로 개발된 것이다. 교사도 학생도 그 뜻을 알고 대비해 왔다. 더구나 논술비중을 떨어뜨림으로써 변별력이 낮은 수능점수를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모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학이 확고한 논리도 교육철학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수능 고득점자를 유혹하는 대학의 전략은 장사꾼의 극성스런 호객행위를 보는 듯하다. 갑작스런 입시요강 변경에 수험생들은 누구나 농락당한 느낌에 사로잡힐 것이다. 불안에 시달리는 수험생들에게 또하나의 고통을 안겨준 꼴이다. 이는 대학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이어질 터이다. 믿음이 없는 곳에 교육이 있을 수 없다. 잦은 입시제도의 변경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원망의 소리도 못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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