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나라가 어떻게 된답니까?” 민주노총의 정치조직격인 국민승리21 산하 ‘전국실업자연대준비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실업자 김아무개(43)씨는 답답함을 쏟아냈다. 법무부가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인 실업자 노조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양대노총 모두 3월 안에 실업자 동맹 출범
법 개정과 관계없이 실업자 노조 결성은 하나의 추세가 됐다. 양대 노총 모두 3월 안에 실업자동맹을 만든다. 국민승리21은 서울·부천·울산 등에 결성된 17개 실업운동단체들을 묶어 2월중 전국실업자동맹을 결성하기로 했다. 여기에 참가하는 실업자들은 2천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노총 역시 더디기는 하지만 3월 중 전국실업자연맹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서울(500여명)과 울산 등 2곳에 실업자협의회를 설립했고, 앞으로 14개 지역별 협의회를 더 만든다.
실업운동단체에 소속된 실업자들은 대부분 노조 조합원이었다가 정리해고 등을 당한 노동자들이다. “회사에서 해고됐다고 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취업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특권이냐.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이 취업자를 위한 특권은 아니지 않느냐. 내가 잘못해서 해고된 것도 아니다. 정부가 자꾸 실업자를 이등시민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노총 서울실업자협의회 소속 정아무개(38)씨는 실업자 노조의 정당성을 조목조목 따진다. 하지만 이런 정씨도 이름을 밝히기는 꺼려한다. 실직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실업자를 공안사범 취급하는 정부의 태도가 두려워서라는 게 그가 밝히는 이유다. 그는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눈높이를 낮춰 3D 업종에 취업하라”는 발언이 “돌멩이만 던지지 않았을 뿐 사실상 실업자에 대한 테러에 해당한다”고 비난했다.
“나는 가장이다. 실직 뒤 기술을 배워 3D 업종으로 꼽히는 한 도금업체에 취업했다. 임금이 60만원이었다. 그래도 실직 전 월 130만원을 받던 것을 잊고 참아보자고 했지만 작업환경이 너무 안 좋았다. 한달 만에 그만뒀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그 기업 노동자들은 100만원을 받고 있었다. 임금 차별을 당한 것이다.” 이 일을 겪은 뒤 취업을 포기하고 공공근로사업에 참가하고 있다는 이아무개(40)씨의 하소연이다.
노동부 서울인력은행 황혜선(35) 상담원은 그동안 자신의 접했던 실업자들의 경험에 비춰 이렇게 설명한다. “구직자들이 눈높이를 낮춰 이전에 일하던 직종보다 힘든 일을 택하는 경우에도 구인업체 대부분이 기능·기술을 갖춘 2∼3년 경력자를 원했다. 구인업체가 약속했던 것보다 낮은 임금을 주는 사례도 자주 있었다. 3D 직종에 대한 취업 기피를 실업자가 눈높이를 낮추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작업환경 개선 등 정부도 적극 나서야
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 관계자의 얘기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다녔다는 이유로 중소기업의 같은 직종에 취업을 꺼려하는 실업자에 눈높이를 낮추라고 할 수는 있지만, 별다른 직업훈련도 없이 전혀 새로운 직종에 취직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구직자보다 구인자가 많다는 뜻에서 사용한 ‘틈새 직종’이라는 용어가 ‘3D 직종’과 같은 의미로 잘못 쓰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IMF사태 이전이나 지금이나 3D 업종의 작업환경이 그리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장기 저리로 작업환경개선 지원금을 융자하고 있으나, 실적은 여전히 미미하다. “염색·도금·피혁·주물·섬유·신발 등의 업종이 여전히 인력난을 겪고 있다면 정부가 나서서 작업환경 개선을 적극 유도하고 이런 업종의 기업체들과 직업훈련기관을 구체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실업자들의 눈높이만 탓하는 것은 사회적인 약자를 거듭 낙인찍는 행위이다.” 한국노총 노진귀 정책본부장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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