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1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업자운동 단체인 AC(실업에 대항해 함께 행동하자)는 슈퍼마켓을 점거하였다. “소외는 범죄행위이다. 부를 평등하게 분배하자.”, “물건을 싣고 나가게 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피켓을 든 실업자들은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도록 만든 것이 부도덕하지 배가 고파 가지는 것이 왜 부도덕한가! 그건 생존의 문제다.”라고 외쳤다.

“실업의 씨를 뿌리는 자! 분노를 거둘 것이다”는 구호를 내걸고 94년 ‘실업·불안정 고용·소외에 대항한 유럽행진’을 전개한 바 있는 이 단체는 실업대란을 ‘공포의 시대’로 규정, 실업자와 불안정 취업자의 사회적 권리 확보를 위해 건설된 자생적 조직이다.

오늘날 프랑스에는 1200만 명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극도의 빈곤상태에 있다. 그러나 실업수당은 94년 이후 인상되지 않았다. 또한 신규실업자는 늘어나는 반면 장기실업자는 취업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AC가 조직되고 활동을 강화, 확대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되었다.

AC의 첫 사업이자 실업자 운동의 분수령을 이룬 유럽행진의 강령은 ▲ 실업자와 임금 노동자를 한데 묶는 투쟁 ▲ 나이, 성별, 국적 또는 다른 차별이 없는 단일한 투쟁으로 모아진다. 이들은 또 “임금삭감 없는 주당 35시간 쟁취, 32시간 후 30시간 지향!”, “보건권, 주거권, 교통과 전기, 물, 가스의 무료 이용!”,”실업자 조직이나 실업자 연합 단체의 인정과 실업자 조합 결성, 단체 교섭, 공동 투쟁 쟁취!”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AC의 행동지침인 “생존권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로 집중된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실업자운동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업자들에게 교통수단을 무료로 개방하였으며, 죠스팽 총리는 오브리 법(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프랑스의 실업자 운동은 그래서 많은 영감과 교훈을 시사한다. 그것은 세 가지로 좁혀볼 수 있다.

▲ 실업자들의 운동에 적용된 기준은 점거된 건물의 수였다. 가령 97년 실업수당의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에 대해 정부가 기만적인 태도를 취하자 5일 만에 거된 건물의 수는 13개에서 40개로 늘어났다. 이것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뒷받침된 것을 의미한다.

▲ 실업자 운동은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많고 오랫동안 투쟁을 각오한 실업자들이 열성 활동가 집단과 결합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즉, 운동을 이끈 주체는 실업자 자신이었다.

▲ 실업자 운동의 가장 큰 한계는 임금노동자들의 공감대를 치열한 연대활동으로 전환하는 데서 닥치는 어려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AC는 각 노동조합, 민조직 등의 연합조직으로써 실업자 운동이란 함께 모여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실업자 운동은 “노동시간 단축이 일반화된 실업의 만병 통치약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핵심요소일 뿐이다.”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문제는 실업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되물어본다. 그들은 친철하게 ‘투쟁’이라고 정답을 귀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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