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현대중기산업 퇴출노동자 고 육경원 동지의 죽음을 생각하며

김 찬 수

지난해 6월 18일 퇴출대상 55개 기업에 포함되어 “부당한 퇴출결정 철회”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현대건설 사옥 앞, 원서공원, 조계사, 영등포산업선교회

등에서 해를 넘기며 205일째(1월 27일 현재) 농성투쟁을 벌여오고 있던 ‘이름없

는 영웅들’ (주간정세동향 10월 19일자 참조) 현대중기산업 노동조합의 조합원

육경원씨(52세)가 투쟁 중 위암이 재발하여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27

일 끝내 눈을 감고 말아 함께 투쟁해 오던 동지들과 가족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고 육경원 동지는 1979년 22살의 나이에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사우디아라비

아, 리비아, 이라크등 해외와 국내의 건설현장을 누비면서 ‘조국건설의 역군’으

로 20여 년간 청춘을 바쳐 일만 해 왔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회사와 나라를 위

해 몸과 마음을 바쳐 일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와 ‘퇴

출 노동자’라는 딱지였다. 육경원 동지는 십수년간 고락을 같이하며 노동하고

투쟁했던 동지들과 전국을 누비며 밤낮없이 일하느라 한 달에 단 몇일의 휴가밖

에 없어 ‘가족의 정’조차 제대로 느낄 겨를이 없었던 가족들을 남겨두고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고 육경원 동지는 97년 5월, 초기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 29일 만에 퇴원한

적이 있으며 그 해 10월, “현장에 복귀해서 일을 해도 좋다”는 의사 소견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근무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 98년 6월 18일 다니던 회사가 퇴

출되었고 이에 330여 조합원과 함께 투쟁해 왔다. 묵묵하고 성실한 동지는 평소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해서 회사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으며, 평조합원의 신분

이지만 총파업 투쟁 속에서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열심히 싸워 왔다.

처음 동지가 한뎃 잠을 자면서 텐트농성을 함께 하겠다고 했을 때 동료들은

이를 말리기도 했다. 겉으로는 건강한 모습이었지만 지난 97년 위암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동지들의 걱정어린 충고였다. 그러나 육동지는“동

료들과 고생을 같이 하겠다”며 농성장을 묵묵히 지키며 투철하게 실천해 온 분

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위암이 재발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스트

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완치됐던 위암이 재발해 손을 쓸 수 없게 됐다”고 였고

동료들과 가족들의 정성어린 병간호에도 불구하고 그는 1월 27일 밤 10시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인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내내 “너무 억울하고 분통

이 터져서 못 죽겠다. 동료들은 추운데서 고생하고 있는데, 나만 병원에 있을

수 없다. 동료들 곁으로 가고 싶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일하고 싶다”라

고 말하며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현대중기산업은 원래 현대건설의 중기사업소로 출발하였다가 89년 11월 1일

재벌의 무분별한 문어발 확장에 의해 현대중기산업으로 위장 분리된 사실상 현

대건설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주식의 98%가 현대건설 지분이고 나머지

는 정씨일가의 몫이라 한다. 현대건설에서 분리될 당시 1,100명의 노동자를 500

명으로 감축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복지삭감과 노동조건의 악화를 가

져온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 퇴출 기업으로 선정할 당시에도 정부기준인

부도사업장도 아니고 납입자본금 잠식 사업장도 아니며, 3년간 연속 적자기업에

해당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였는데 정부의 구색 갖추기

식 숫자 채우기의 무분별한 구조조정에 희생양이 된 것이다.

평균연령이 48세, 대부분이 4.50대의 가장으로 고등학생, 대학생의 자녀를 둔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길거리로 내몰린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겨 살길이 막막한 것 자체도 커다란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을

다바쳐 일했건만 단지 필요할 때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버려졌다는 배

신감과 박탈감이 너무도 컸다. 자랑스런 건설역군으로 한국인의 긍지로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였으며, 젊은시절 가정도 돌보지 않고 일만 했던 이

들에게 그런 긍지와 희망이 무너진 것이 너무나 한스럽고 원통한 것이다. 비록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하고 떳떳하게 살아 왔다고 자부하건만, 단지 현대재

벌의 좀 더 나은 이윤을 위해 ‘퇴출노동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최소한의 인간다

운 삶과 인간성마져 부정당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IMF식 구조조정에 의해 재벌기업과 금융.공공부문 할 것 없

이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들을 송두리째 뿌리뽑힌 채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줄을 있고 있다. 또한 이미 투

쟁마져도 힘겨워서 최소한의 인간다움마져 포기하고 자포자기한 노숙자들과 심

신이 무력화되어 삶의 희망조차 흐려져 가는 수 많은 실업자들의 문제는 이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들의 구체적 삶의 한 모습이다. IMF 경제신

탁통치 1년이 우리에게 가져단 준 고통은 실로 참담한 것이었다. 고 육경원 동

지와 현대중기산업의 노동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인간다운 삶을 되찾기 위해 부스러져 가는 육신마져 돌볼 겨를 없이 마지작 남

은 숭고한 생명마져 던지면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수많은 노동형제들에게서 우리

는 오늘의 아픔과 희망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시켜서 한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면서 99년 들어서

단 한번의 성실한 교섭조차도 거부하고 있는 현대재벌은 IMF 이후 계열사가 오

히려 13개나 늘어날 정도로 살을 찌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대건설측은 자신들

의 악랄한 이윤욕에 의해, 퇴출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고통과 시름으로 끝내

세상를 떠난 늙은 노동자 고 육경원 동지의 한스런 죽음 앞에 단 한 사람도 찾

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던 것이다. 1

월 29일 ‘건설노동자 장’으로 장례를 하던 날도 그 악랄한 현대재벌은 고인이

생전에 땀흘려 직접 짓기도 했던 현대건설 사옥에서 노제를 지내려고 하자 구사

대와 전투경찰을 동원해 다시한번 고인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250여 명의

조합원과 학생, 노동자들이 이를 뚫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1층 로비에서 노제를

지냈다.

고 육경원동지를 마지막 보내던 날 동료들은 “퇴출만 되지 않았어도 정상적으

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현대재벌과 정부가 그 친구를 죽였다”고 하면

서 분노의 치를 떨었다. 전남 화순 가족장지에 동지를 묻는 동안 주위는 조합원

들의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고 육경원 동지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살아 남

아 투쟁하는 동료들에게 고인이 못다 이룬 ‘고용승계 쟁취’ 를 꼭 이루고야 말

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게 하였다.

노동자의 생활, 건강, 미래 그리고 참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오로지 “현장으로 되돌

아 가고 싶다!”고 절규했던 고 육경원동지의 주검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차가운

농성장을 지키며 힘겹고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