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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쑤고 있는 ‘국민의 정부’의 ‘국민연금제’

박 영 아

김대중 정부는 올 4월부터 국민연금제를 20세 이상 성인에게는 모두 적용한다

고 발표했다. 국민연금 관리공단은 임의로 예상소득에 기준한 보험료까지 정해

각 가정으로 통신문을 발송했다. 그리고 보험료를 납부치 않을 경우에 압류를

통해 강제조치를 한다고 발표하였다. 한 푼의 소득도 없는 실직자에게 월 99만

원의 소득을 책정해 월 27,000원씩의 보험료를 납부하라고 하지를 않나, 군에

복무하고 있는 휴학생들에게도, 가정주부에게도, 심지어 60세가 넘는 노인에까

지 마구잡이로 통지서는 날아들었다. 안 그래도 사상 유례없는 고실업과 날로

치솟는 물가와 세금, 깎이는 소득에 살얼음 걷듯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며 사는

서민대중에게는 집안에 강도가 든 것 같은 분노를 느끼게 했다. 온 나라가 들끓

었다. 국민연금 관리공단 본사와 전국의 70개 지사에는 연일 항의성 문의전화가

빗발쳤고, 설날 친척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도 국민연금제 의무화에 대해 비판

의 목소리가 높았다. 국민여론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국민의 정부는

국민회의와의 당정협의를 거듭하며 현행 국민연금제의 개선 안을 마련해 4월부

터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당정협의에서 결정된 국민연금 실시 개선 안을 보면 저소득계층일 경우 본인

의 희망에 따라 연금가입 의무대상에서 제외하고, 국민연금 가입자가 연금보험

료를 체납할 경우에도 압류나 세무조사 등 강제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하였다.

또 연금보험료 책정을 위해 국민연금 관리공단이 책정한 소득추계나 과세표준

등에 대해 연금가입 대상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이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소득입

증 책임은 연금관리공단이 지기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개선 안으로 일

단 현재 들끓고 있는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그 위에 대졸실업자를 동원하

여 국민연금에 대한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면 연금가입률이 늘어날 것이라고 김

대중 정부는 희망 섞인 기대를 하고 있다.

21일 밤 국민과의 대화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연금제는 사회보장제도 중

에 중요한 부분으로 전 국민적으로 확대해야 하는데 행정일선에서 실무 기술적

으로 잘못하여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노후에 자식들에

게 얹혀 살며 비참한 생활을 하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으냐”는 얘기도 덧붙였다.

정말 국민들이 국민연금제가 얼마나 좋은지 잘 몰라서, 혹은 행정 일선의 잘못

때문에 국민연금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게 되었는가? 사태의 본질을 몰라

도 한참 모르는 얘기다.

국민연금제는 88년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였고 95년에

는 농어민들까지 확대실시되었다. 99년 4월부터는 800만 도시 자영업자와 상시

고용 5인 미만 사업장 230만 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간 국민들이 낸 연금보험료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투명하게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연.기금제도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날로 높아지고 있는

데, 이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과 그에 따른 대안도 세우지 않고 기존 연금제도를

확대 시행한다는 데 믿고 따를 국민이 어디에 있겠는가?

며칠 전 한 언론에서는 연.기금 공무원들이 주가조작에 연루되어 감사중이라

는 내용을 보도하였고 특히 호텔과 증권투자를 잘못하여 무려 1조 6천억 원(98

년 7월 말 현재)의 손해를 입었다고 바닥이 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것은 지난 시절 정경유착과 탁상행정에 의

한 기금의 부실운영, 부실투자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정권의 비자금으로 사용되

었을 의혹조차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해결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금을 의무화하고 강제 징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개인의 노후문제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거짓논리를 앞세워서, 돈을 낼 수

없는 저소득층은 비참한 노후밖에 없다고 위협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

의 정부의 노후보장 정책인 것이다. 이처럼 국민의 노후대책까지 개인이 책임져

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보장체제를 강요하는 국민의 정부 하에서 국민연금은

‘사회보장으로서의 국민연금’이 아니라 그야말로 개인의 의사와 능력에 관계없

이 강제로 징수하는 ‘국민세금’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것도 재벌이나 고위층에

직접세를 많이 부과하는 누진적 방식이 아닌 근로소득세를 꼬박꼬박 바치는 노

동자나 IMF 이후 생계조차 꾸리기 힘든 소위 도시 자영업자들에게까지 공평하게

소득이 있다는 가정 아래 추진되고 있다. 노후의 행복한 생활이라는 미끼로, 강

제 징수라는 위협으로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당장은 여론에 밀려 단계

적으로 시행한다지만, “국민의 삶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사회보장 개념으로 전

환할 것을 조금도 모색하지 않은 채 그들의 구상대로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또 국민연금을 국민혈세화하여 부실한 국가 재정을 메우는 데 유용한 가능성

도 우려되고 있다. 지금 국가재정이 어려워 IMF 이전에 정부 부채규모는 GDP 대

비 5%선이었으나 올 연말이면 대내외 부채가 총 200조원을 웃돌아 GDP 대비 45%

선을 육박할 것이 예상되며, 특히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 GDP 대비

60%선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되고 있다. 국민들의 혈세는 IMF식 구조조정과

외채를 갚는 데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다 빠져나가고 국가재정은 부실해져

국민들의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강제시행을 접하는 국민들의 분노는 IMF식 구조조정으로 불안한 현

재의 삶과 미래까지 개인이 다 책임져야 한다는 데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하겠

다. 개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 이후를 책임지기 위해 개

인이 고용보험을 넣고, 실업 이후의 불안한 생활에 대해 국가에서는 기껏 몇달

치의 실업급여와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3개월 짜리 공공근로만 보장하

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용보험이 아니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실업자들의 최

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국가에서 보장하는 실업보험을 시행해야 하듯이, 사회적

노동으로 이 사회에 기여한 공동체의 한 부분인 노인들의 노후생활을 국민의 세

금으로 보장하는 사회보장을 획득할 때만 올바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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