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 비탈밭 뽑히지 못한 배추가

겉껍질부터 허옇게 얼어가고 있다

내 꼬락서니를 보는 것 같아 민망스럽다

가을바람 야물어지고 계곡물 딴딴해질 때도

속도 채우지 못하고 퍼렇게 건들거리다가

뽑혀 가도 기름 값도 안 나오는 신세가 되었다

겉보기는 생김생김도 그 놈이 그 놈 같구만

농사꾼은 안다 그냥 척 보면 안다

어떤 놈이 여름을 제대로 난 놈인지

어떤 놈이 속이 제대로 찬 놈인지

슬쩍 만져만 보아도 안다

내가 얼굴에 분칠이나 하고

갖은 말솜씨로 그럴듯하게 얄랑거리며

카메라 앞에 기름 바른 대가리를 들이민다 한들

그걸 국민이 모르겠는가? 시민이 모르겠는가?

또 한 계절을 보내며 내가 할 일은

저녁안개 아침서릿발일망정 남은 햇살 아끼며

깨끗하고 하얀 속을 채우는 일

날로 먹어도 맛날 노란 고갱이를 만드는 일

*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원의 밤’, ‘출판 기념회’, ‘출마 선언’ 등이 이어지고 있다.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으면 좋겠다. 산길을 걸으며 겨울배추밭 가에서 몹시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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