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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기를 바라는 택시노동자들의 분신항거 행렬
국 철 희
지난 2월 15일 서울 경서운수의 김대곤 동지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
며 분신항거했다. 이는 택시노동현장에서 계속되고 있는 죽음의 행진중 하나다.
그 동안 택시노동자들은 암울한 택시의 현실을 주로 분신자결로 고발해 왔다.
84년 서울 민경교통에서 고 박종만 동지가 “노동조합 탄압말라!”며 분신 사망한
이후 20여 명에 달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해 89년까지 조흥택시의 고
이석규 동지, 인천 경기교통의 고 김장수 동지, 순천 현대교통의 고 장용훈 동
지, 마산 우성택시의 고 이대건 동지 등이 분신자결로 항거했고, 서울 남성흥진
의 고 최성조 동지는 구사대의 각목와 쇠파이프로 살해당했다. 이어 91년에는
공성교통의 고 석광수 동지, 서울 합동물산의 고 김귀철 동지가 쓰러져 갔으며
94년에는 서울 상호운수의 고 김성윤 동지, 서울 중일산업의 고 박승업 동지가
대통령 탄원서 등을 남기고 목매 자결했다.
그러다가 97년부터 지금까지 다시 일곱 명의 동지들이 분신했다. 다행스럽게
97년 10월과 98년 1월 분신한 광주 송광교통 위원장 최도근 동지와 경기 이천지
역 노조위원장 권오영 동지는 지금도 택시 완전월급제 쟁취투쟁에 앞장서고 있
다. 그러나 97년 서울 성원콜택시의 고 김흥정 동지, 부산 국민캡의 고 홍장길
동지, 98년 서울 경안택시 고 성구중 동지, 제주 국제택시 고 한광로 동지가 분
신항거로 운명했고, 급기야 고 김대곤 동지에 이른 것이다.
이번 고 김대곤 동지의 죽음은 앞으로도 택시노동현장에서 분신 등 죽음을 통
한 항거가 계속될 것임을 다시 동지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단적으로 말하면 택시노동자의 처지가 실업자와 다
름없기 때문이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지금의 경제상황에서도 택
시회사의 취업문은 열려있다. 그러나 취업하더라도 곧바로 회사를 그만둘 수밖
에 없다. 왜냐하면 밤낮 12시간씩 명절도 없이 계속되는 근무로 건강을 해치는
것을 감수할 수 있어도 수입이 너무나 형편없어 도대체 생존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1년 이상 근속자가 반밖에 되지 않으며 그
래서
이러한 현재 택시의 어려운 상황은 전적으로 택시 자본가와 역대정권의 탐욕
과 유착의 결과다. 정권은 택시의 수송율이 하락해도 증차를 통해 택시사업주를
살찌웠으며 그 결과 택시의 수입이 감소해도 택시사업주는 한술 더 떠 사납금을
올려 이윤을 유지하고 택시노동자에게는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특히 IMF
이후는 택시의 가동율이 더욱 높아졌고 사업주는 사납금을 대폭 올려 이중으로
이윤을 늘렸다.
따라서 택시노동자의 생존투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수입을 회사에 납
입하는 사납금과 연계시키는 전 근대적 도급식 임금제도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사납금을 못 올려주겠다는(택시노조가 동의를 해야만 사납금
을 올릴 수 있음) 택시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나아가 아예 사납금제
를 폐지하고 일정시간을 일하면 고정월급을 지급하라는 완전월급제 투쟁이 2∼3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택시사업주들은 흔히 택시노동자들을 개
별화시키고 통제하기 위하여 입바른 소리를 하는 노동자에게 노후차량을 배정하
는 통제수단을 쓰고 있다. 또 이를 위해 노무관리자를 어용노조위원장 출신이나
깡패들을 고용하기도 한다. 이번 경서운수의 노무부장은 택시회사의 어용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고 김대곤 동지는 평소에도 노후차량배정에 대하여 항의하면
서 회사의 통제에 맞서왔다. 특히 후배와 신참에게는 새 차량을 배정하고 고 김
대곤 동지에게는 계속 노후차량을 배정하였고 분신 당일에도 노후차량 배정에
격분하며 분신으로 항거한 것이다. 택시노동자의 목을 죄고 있는 사납금제가 철
폐되지 않는 한 고 김대곤 동지처럼 각종 비인간적인 통제와 멸시 속에 항거할
택시노동자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투쟁의 현실은 결코 간단치 않다. 정부는 월급제와 관련된 ‘운송수입
금 전액관리제’란 법시행도 기피하고 있으며 택시 사업주나 어용 노조위원장이
서로 유착되어 있다. 기나긴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가신 열사들의 죽음처
럼 또 많은 죽음의 항거를 겪어야 될 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15년전 고 박종만
동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 동료의 고통이 줄 수만 있다면”하는 바람과 정신이
있는 한, 사납금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인간다운 삶을 바라는 소망이 있는
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사납금을 폐지시켜 월급제를 쟁취하자는 투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고인
의 뜻을 받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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