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이념.정책 연구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에 관하여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1) 정치세력화란 무슨 뜻인가?
노동자.민중이 ‘정치세력화’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뒤집어 말하
면 지금은 노동자.민중이 ‘정치세력화’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즉 노
동자.민중은 지금 정치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고(들러리로 되고
있다!), 정치판에서 한몫을 할 유력한 정치세력이 되지조차 못하고 있음을 뜻한
다. 정치는 지금 지배세력이 배타적으로 차지하는 “그들만의 몫”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이 ‘정치세력화’ 한다는 것은 이런 상태를 깨부수고, 더 이상 정
치가 지배세력이 배타적으로 차지하는 “그들만의 몫”으로 되게끔 고스란히 갖다
바치지를 말고, 노동자.민중이 자기가 차지해야 할 응분의 몫을 되찾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이 정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힘을 결집하는 것이다. 이렇게 힘을
결집하여, 정치라는 고차적인 분야에서도, 주인이 되는 방향 하에서 큰 몫을 하
는 유력한 세력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금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선거
유세장에 동원되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투표장에 나가기도 하는 등 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있지 않느냐?” 라고. “노동자.민중도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은 아
니지 않으냐?” “얼마나 참여 기회가 많으냐?” 라고.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노동
자.민중은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죄다 들러리서기에 불과하다. 그러한 갖가지 참여에도 불
구하고 노동자.민중은 정치의 핵심적인 분야에서는, 알맹이에 있어서는 엄연히
배제되고 있다. 노동자.민중이나 그 대표자가 정치권력을 가지거나 행사하는 것
은 여러가지 법적.제도적 장치들로써 심하게 금지되고 있는 것이다.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노동자.민중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내놓고 주장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엮이기 십상이다. 또 선거는 국민의 손발에는 족쇄–요즈음 신
문에서 검찰.경찰이 사용하는 족쇄를 구경할 수 있다!–를 채워놓고(합법 정당
이 아닌 경우 선거 기간이 아니면, 또 선거 기간에도 입후보자이거나 그 입후보
자의 운동원이 아니고는 정치활동을 못하게 되어 있다!) 입에는 재갈을 물려놓
고서(자주적인 사회운동 단체들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하
지 못하게 되어 있다!) 면허증을 가진 정당들만이 돈을 물쓰듯 쓰고 마음껏 입
을 놀리게 해 놓고 있다. 또 그들만이 돈쓰고 입놀리는(이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하는데! 노동자.민중의 표현의 자유는 얼핏하면 ‘제3자개입 금지’나 ‘반국가단
체 찬양.고무’죄에 걸린다!) 정치행사를 마음껏 벌일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있
다. 한마디로 노동자.민중은 자유롭게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다.
이런 형편이니 노동자.민중이 정치권력을 만들어내거나(정권은 저들끼리만이
창출, 재창출한다!) 행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노동자.민중이
정치권력을 만들어 내고 행사하는 데 있어서는 그 방식부터가 지배세력들이 행
하는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노동자.민중이 만들어 내고 행사하는 정치권
력은 ‘지배권력’–폭력(이념적 폭력을 포함하여)에 의한 강제 위주의–이 아니
라 자주적.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자결권'(自決權)–토의에 의한 동의
위주의–이다. 노동자.민중의 권력은 말하자면 ‘민족 자결권’에 비유할 수 있는
‘노동자.민중 자결권’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정치는 지배세력의 전유물이다. 노동자.민
중에게는 정치적인 자결권이 없다. 우리 노동자.민중은 정치적인 자결권이 없음
은 물론이고 현존의 정치권력(지배세력의 방식으로 만들지고 행사되는 지배권
력)에 한몫 끼지도 못하고 있다. 노동자.민중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인정되지
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노동조합이나 농민.도시빈민의 대중단체(전국농민회총연맹이나
전국빈민총연합과 같은)들을 만들어서 유력한 사회세력이 되는 데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으나 대중정치조직을 만들어서 유럭한 정치세력이 되는 데까지
는 아직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진출하지 못하도록 내외의 지배
세력이 극력 억압해 왔고 지금도 억압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어 : ‘정치세력(화)’ ‘정치권력’ ‘지배권력’ ‘(정치적) 자결권’ ‘정치적 진
출’ ‘대중정치조직’
2) 정치세력화는 왜 지금 긴요한가?
정치세력화는 노동자.민중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과제이다. 왜 그런가?
세상사는 크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으뜸이 되는 것이 정치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들은 경제고 사회고 문화고 모
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 진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최종적으로
매듭지어 주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란 재산이나 학벌이나 출신지역이나 종교적
인 차이나 하는 것들을 총망라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그리고 그것을 통
해 일과 일 사이의 관계–를 최종적으로 결정지어 주는 행위이다.
예컨대 어느 나라에서 재부(財富)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우대받을
것인지 문화.예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우대받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정치
이다. 또 경제성장을 우선으로 할지 문화와 도덕의 향상을 우선으로 할지를 결
정하는 것도 정치이다.(전자를 경제주의라고 한다면 후자를 문화.도덕주의라 할
수 있다) 영호남 사이에 누구를 우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정치이다. 기독
교가 우대를 받고 불교가 차별을 받는 것을 결정하는 것도 정치이다. 또 경제를
자본가를 본위로 운영할 것인지 노동자.민중을 본위로 운영할 것인지를 결정하
는 것도 정치이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 상호간에–그리고 이를 통해서 세상의 일들 상호간에–우
선순위를 최종적으로 정하는 일이 정치이다. 그러므로 정치는 사회적 행위 가운
데 최고위의 행위이다. 그러길래 각계 지도자 가운데서도 정치지도자가 최고위
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중차대한 정치를 지배세력에게 내맡겨 놓고서 노동자.민중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겠는가? 노동자.민중이 세상의 주인이 되고 인간답게 살고자 한다면 반
드시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의 주인이 되고자 하면 뿔뿔이 흩
어져서는 아니되고 또 ‘조합주의’에 머물러서는 아니되고, 반드시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발돋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접어두더라도 노동자.민중이 정치의 주인이 되지 못하
고 ‘정치세력화’ 하지 못한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면 거꾸로 정치세력화의 긴요
함을 잘 알 수 있다. 우리 노동자.민중은 그동안 가열찬 투쟁을 통하여 유력한
사회세력으로 발돋움해 왔다. 최고위인 정치에 있어서는 이렇다할 역할을 행사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이하의 수준에서는 자본과 정권과 대결하면서 생존권을
사수하고 권익을 신장시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지배세력 측에게 내맡겨 놓다 보니 십년 노력이 도로아미타불
이 되는 사태가 지금 벌어지고 있다. IMF 신탁통치 이후 경제위기를 빌미로 하
여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민중의 권익을 후퇴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다.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악법들을 마구 만들어내고
있다. 정리해고법을 여야합의로 통과시킨 것이 무엇보다도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일본과의 매국적인 어업협정 같은 것도 마구 해치우고 있다. 또 법을 앞세워 파
업현장에 공권력을 마구 투입하고 있다. 노점상에 대한 강제철거나 도시빈민에
대한 살인철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거에도 이같은 탄압이 있기는 했지만 50년 만에 정권을 교체하여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는 지금에 이처럼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사태가 벌어
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사태가 이렇게 되고 있는 것은 여야를
망라한 지배세력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단지 정치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해서는 부족하다. 그들은 어차피 나라야 어떻게 되건 또 민중
이야 어떻게 되건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정치를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
런 자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으니 장치가 잘 될 턱이 있는가?) 노동자.민중이
정치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상태에서는 외세가 우리나라의 정치
를 좌우하게 되기 때문이다.(외세가 국내 지배셰력에게 이것저것 강요하고 있
다. 또 국내 지배세력은 외세에 굴종하는 사대주의 사상에 깊이 젖어 있다. 또
국내 지배세력은 노동자.민중을 착취.억압하는 데 있어서 외세와 그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이 나라의 정치에서 주인이 되지 않으면,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발돋움하지 않으면, 역사의 전진은 커녕 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후퇴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민중이 ‘정치세력화’ 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지배세력이 정치를 독점
하여 전횡하는 경우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를 예상해 보자.
노동법은 또다시 개악될 것이다. 노동시장을 더욱더 유연화하기 위해서 근로
자파견제 뿐만이 아니라 계약근로제도 법제화될 것이다. 또 임금은 계속 삭감될
것이고 근로조건은 계속 개악될 것이다. 미국에서 그 동안 그렇게 되어 왔던 것
처럼! 게다가 단체협악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다.
반면 법을 앞세운 공권력 투입이 더욱 노골화할 것이다.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요구하는 집회나 시위를 하면 “법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다. 한마디로
노동자.민중은 또다시 5-6공 시절과 같은 무권리 상태에 처하게 되고 무단적 탄
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난 십여년 동안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또 민주적
권리와 이익을 신장하기 위해서 피땀흘려 노력하고 투쟁해 온 성과들이 빠른 속
도로 사라져 갈 것이다.
이처럼 우리 노동자.민중에게는 지금 정치세력으로 힘차게 진출하여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는 쪽으로 전진하느냐 아니면 ‘정치세력화’ 하지 못한 나머지 5-6공
시절 같은 무권리 상태로 전락하느냐 하는 선택만이 주어져 있다. 말하자면 갈
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 노동자.민중은 지금 스스로 정치세력으로 도약하
지 않고서는 현재와 같은 수준의 ‘삶의 질’도 유지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 처
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최근에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외치고
있고 또 그것에 공감하고 있다.
용어 : ‘무권리 상태’ ‘무단적 탄압’ ‘싦의 질’ ‘생산성 향상’ ‘조합주의’
3) 정치세력화의 조건은 과연 갖추어져 있는가?
정치세력화는 중요한 과제이다. 정치세력화는 절실한 과제이다. 그러나 그것
을 이룰 주체적 조건은 과연 성숙되어 있는가? 시기상조는 아닌가?
아니다. 대중은 지금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대하여 그 필요
성을 널리 인정하고 있다. 지금 노동자.민중이 정치세력화 하기 위해서는 두 가
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자본가 계급 정당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것은 다시 말해서 노동자.민중이 정치적으로 독자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독자성을 가진 자신의 정치적 힘을 획기적으로 확대.강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유력한 세력이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첫 번째가 더 급선무이
다. 그런데 이 첫번째 문제에 대하여 주체적 조건이 성숙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군사독재 치하에 있었다. 김영삼 정권이 문민정부라고 했
지만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군사독재 정권의 연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했으므로 군사독재 정권을 민간정부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였다.
노동자.민중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노동자.민중이 독자적으로 정치세력
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군사독재에 일반대중 속에서는 대세를 처지해 왔다. (그 당시에 ‘독자적 정치세력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일반대중들이 독자의 정치
세력화를 지지할 만큼 정치적으로 충분히 성장해 있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기 상조론’이라는 논리가 성립할 여지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기 상
조론’은 실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기피하고 노동자.민중을 보수
정당의 지지부대로 묶어두는 것을 합리화하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이제 군사독재의 시대는 끝났다. 그 대신 자본에 의한, 자본의 독재의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일반대중들이 볼 때에도 지금은 자본–그 가운데서도 실
세인 독점자본–에 의한 독재를 막아주는 목소리와 힘이 절실하다. 그러면 독점
자본에 맞서 싸울 세력은 누구인가? 중산층인가? 중소자본 세력인가? 지식인 세
력인가? 일반대중의 눈에도 답은 뻔하다. 독점자본(재벌)과 중소자본 사이에는
이해관계의 대립이 없지 않으나 별로 날카롭지 않다. 그 대신 모든 자본가와 노
동자.민중 사이의 이해관계의 대립은 아주 날카롭다. 그러므로 중소자본은 지금
독점자본과 한편이지 노동자.민중과 한편이 아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그러했
는데 지금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면 지식인들은 어떤가? 그들은 대세에 따라가는 경향이 많다. 아직 노동
자.민중 세력이 대세가 아니므로 그들은 당분간 자본의 편이지 노동자.민중의
편이 아니다.
그러면 야당은 어떤가? 한나라당이 야당이라는데 일반대중이 가지고 있던 야
당 개념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군사독재 시절의 야당은 약간은 노동자.민중의
편이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그 당시 지배세력의 집권정당이었다. 그 정당이
지금 정권을 빼았겼다고 해서 약간이라도 노동자.민중의 편인가? 한나라당의 김
문수 의원은 “86년도 말에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더라면 97년의 환란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자들의 집결체가 이른바 야당이다.
그러면 집권여당(들)은? 겉으로는 노동자.민중의 편인 체하고 있지만 실상은
내외독점지본의 대변자이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의 대처 정권’이 되겠다고 공
언하고 있는 판이다!
이처럼 노동자.민중은 어디를 보나 정치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하는 길밖에 없다. 이것은 일반대중의 눈에도 불을 보듯
이 훤하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제는 시기상조론 같은 궤변은 발붙일 자리가
없다.
그러면 모든 조건이 준비되어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대중
은 지배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보수 정치세력에게 더 이상 크게 기대하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이 보수.수구 지배세력과 어떻게 다른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는지 명료하게 과학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
서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많이 휘둘리고 있다. 세계화가 숙명이라는 이
데올로기 공세라든지 시장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이데올로기 공세라든지 하는 것
들이 대표적이다.
또 조직적으로도 매우 부족하다.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이 종파주의와
개량주의로 인해 무력화된 이후 노동자.민중의 대중정치조직은 극히 왜소화되어
있다. 그 대신 민주노총이 성장했지만 그 상층부가 개랑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
인 세력들에게 장악되어 있어서 조직력이 계속 약화되고 있다. 이런 형편이므로
대중정치투쟁 역량은 80년대보다 오히려 약화되어 있다.
하지만 비관적이지는 않다. 그 동안 잘못된 운동 조류로 인해서 힘을 던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이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리하여 빠르게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진출은 매우 빠르게 그리고
매우 진취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출은 1999년에 눈에 띄게 진
척될 것이다.
요컨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주체적 조건의 준비는 매우 불충분
하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멈칫거리는 것은 대중의 꽁무니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용어 : ‘독점자본’ ‘종파주의’ ‘개량주의’ 관료주의’
4) 정치세력화의 올바른
<1> 선거 위주의 정치운동은 옳지 않다. 대중투쟁 위주의 정치운동이 되어야
한다
선거 위주의 정치운동은 노동자.민중을 정치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지부대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부르조아 정치는 이것으로 족하다. 그러
나 노동자.민중의 정치는 이것에 머물러서는 아니된다. 그렇게 되어서는 노동
자.민중은 비록 노동자.민중 후보에게 투표하더라도 정치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정치의 ‘고객’이 될 뿐이다. 부르조아 정치는 노동자.민중을 정치상품의 고객으
로 파악하고 있는데(그것이 이른바 ‘참여민주주의’이다!), 선거 위주의 정치운
동은 비록 노동자.민중이 수행할지라도 마찬가지의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노동자.민중이 단순한 지지부대를 넘어서 정치의 주인이 되려면 대중투쟁을
위주로 해야 한다. 몸을 던져 투쟁을 하고 있을 때 노동자.민중은 보다 적극적
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주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게 되기 때문이다. 대중이 힘
써 투쟁을 하였는데도 대표자가 대중의 요구와 반대되는 쪽으로 주장하거나 결
정할 수는 없다. 쫏겨나기 십상이다!
<2> 의회주의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위주로
우리 주변에서는 정치라고 하면 곧 의회정치와 대의정치를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의회정치나 대의정치란 무엇인가? 5천만 국민의 의사를 대통령 혼
자서 또는 고작 2-3백명의 국회의원들이 결정한다. 요즘은 그것도 숫자가 많아
서 줄여야 한다고 야단이다.
이처럼 의회정치나 대의정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빙자하여 대중을 정치의 주
인으로부터 배제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선거 때에는 온갖 좋은 공약을 해
놓고 막상 당선이 되고 나서는 ‘사정 변경’을 내세워 제멋대로 해 버린다. 대통
령 중심제든 의회중심의 내각제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모든 문제를 일일이 5천만 국민의 뜻을 물어서 실행할 수는 없다. 그러
나 크고 중요한 문제들은 대중의 뜻을 물어서 결정하고 집행해야 한다. 이것이
직접민주주의이다. 예컨대 OECD 가입이나 ‘IMF 협약’과 같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은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그것도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게 만들어
야 한다.(노동조합에서도 중요한 사안은 2/3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하게 되어 있
다!) 통일방안 같은 것도 그렇게 해야 한다. .
또 대통령이나 지자체 단체장 및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의원에 대한 소환이 쉽
게 이루어질 수 있게 만들어져야 한다.(노동조합에서는 임원 불신임제도가 있
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는 이처럼 부르조아 정치와는 다른 노동자적인(내
용에 있어서나 방식에 있어서나) 정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르조아의 대의정치와 선거 위주의 정치를 그대로 답습하는 ‘정치세력
화’는 노동자.민중이 정치의 주인이 되게 하는 데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자칫
하면 걸림돌만 될 뿐이다.
<3> 지역의 대중정치투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선거투쟁이 되어야 한다.
선거투쟁은 지지층의 확보와 더불어 대중조직(기본 대중조직이든 대중정치
조직이든)의 확대.강화에 복무해야 한다.
선거보다 대중정치투쟁을 위주로 해야 한다고 해서 선거를 경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에 있어서도 선거와 투표는 매우 중요하다. 노
동자.민중은 물리력으로 지배세력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선거와 투표에서
이기는 것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승리해야 한다.
대중정치투쟁과 선거투쟁을 긴밀하게 하나로 통일시키자면 지역이 기본단위로
자리매김되어야 은 서울 집중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는 그럴 수 없다!) 또 지역에서는
누가 대중투쟁에 성실히 복무하는 후보자인지를 잘 가려낼 수 있다. 이런 지역
기본단위가 무시되고 보수정당들처럼 중앙이 본위가 되면 대중투쟁에는 소흘하
고 줄대기에 능한 개인이나 정파들이 득세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현시
점에서는 정당투표제는 노동자.민중의 올바른 정치세력화에 이롭지 못하다.
선거투쟁은 위에서 말한 취지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지만 대중을 의식화.조직
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투적 대중정치투쟁으로 떨쳐나세게 하는 것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는 없다, 우리 노동자.민중 앞에 가로놓여 있는 역사적 과제는 민주변
혁이다. 선거투쟁은 이 역사적 과제에 복부하는 내용과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
다.
<4> 졸속한 합법정당 건설 추진은 옳지 않다. 반면에 소극적인 자세도 옳지
않다.
위에서 말한 대중투쟁 위주의, 직접 민주주의 위주의 정치활동을 기본 방향으
로 삼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그러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생각해야 한
다. 그 그릇은 전투적인 ‘대중정치조직’이다.
이 대중정치조직은 전선조직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정당의 형태를 취할 수
도 있다. 대중의 정서를 고려해 볼 때 대중투쟁을 위주로 하면서도 선거투쟁까
지 적극적으로 하려면 정당의 형태가 보다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의 형태
를 취한다고 해서 반드시 ‘합법’ 정당의 형태를 전제로 할 까닭은 없다. 합법성
은 쟁취해 나가는 것이지 그것을 전제로 하다 보면 부르조아 정치 즉 선거 위주
의 의회주의 정치로 빗나가기 십상이다. 지배세력은 그러한 부르조아적 형태와
부르조아적 내용(주의.주장)의 정치에 대해서만 합법성을 부여하고자 할 것이
다.
민주노총도 합법성 가지는 것(면허증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해서 활동하려고
달려가다 보니 개량화되고 관료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음을 뼈아픈 교훈으
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졸속한 합법정당 건설’의 반대편향은 정치세력화에 대한 소극적 자세이다.
그런 소극성은 또다른 시기상조론이다! 정치세력화는 현시기 중십적인 운동과제
이다. 정치세력화에 적극적으로 임하자! 그러나 대중을 정치의 주인으로 만든다
는 방향을 확고하게 견지하면서, 졸속하게 합법정당 건설을 추진하는 경향을 날
카롭게 경계하면서! 이를 위해 대중에 대한 정치 의식화.조직화 사업과 정치투
쟁 사업에 열렬히 떨쳐나서자!
<5> 정치세력화를 위한 실천적인 고리는 선진층의 사상.이념적 무장이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는 단지 쪽수 면에서 노동자가 많이 참여하는 것으
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노동자.민중이 많이 참여해도 그 지도사상 내지 이념이
노동자.민중의 것이 아닐 때 그것은 노동자.민중을 동원한 부르조아 정치운동이
다.
또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을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은 노동계급
의 사상이나 이념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라면 맞지만 임금노동자나 노동
운동 세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라면 아주 위험하다. 이럴 경우 그 운동
은 아주 편협해지고 나아가 패권주의에 빠질 위헙성이 다분하다.
그러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의지해야 할 사상과 이념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인간해방 사상이다. 그리고 ‘민족 자주적.사회 진보적 민주변혁’ 이념이
다. 전지구적으로 자본주의화됨에 따라서 탐욕이 활개를 치는 썩은 현실을 극복
하고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건설한다는, ‘인간해방’이라는
참다운 지향목표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또 과학적인 현실인식에 입각하여 민족
적 자주와 사회적 진보를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민주변혁 이념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노동해방은 “부르조아적인 탐욕추구의 자유를 (노동자.민중도) 평등하
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착취.억압.소외.’인간성의 파괴’가 횡행하는 세상을 혁
파..개조함으로써 “인간의 고귀한 참 본성을 해방하여 인간의 존엄성이 구현되
는 세상을 건설하는 것”을 근본방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다시 민족해방파
니 민중해방파니 하는 소부르조아의 낡은 사상.이념을 되풀이해서는 아니될 것
이다. 또 자생성에 머무르는 조합주의에 갇혀 있어서도 아니될 것이다.
선진층에서부터 이러한 참 사상.이념으로 자신을 무장해야만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노동자.민중운동을 흔들림없이 유지.강화해 나갈 수 있다. 또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일반대중들까지도 참 사상.이념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설득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반드시 앞서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앞
서가는 사람이 없으면 역사는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한다.
지금은 선진적인 활동가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정치세력화에 떨쳐나서야 할 때
이다. 그러자면 노동자.민중의 참 사상.이념으로 즉 인간해방 사상과 자주적.진
보적 민주변혁 이념으로 자신을 강고하게 무장시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빠진
정치세력화는 공염불이다.
용어 : ‘의회정치’ ‘대의정치’ ‘전선조직’ ‘민주변혁’ ‘민족자주’ ‘사회진보’
‘노동해방’ ‘인간해방’ ‘민족해방파’ ‘민중해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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