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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을 빼놓고 협동조합을 개혁한다?

박 영 아

지난 3월 8일 정부는 ’99년을 협동조합 개혁의 해’라며 농·축산·임업 협동

조합에 대한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 골자를 보면, 우선 일선 조합의 규모를 키

워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213개의 기존 단위 농협을 300여

개로 줄이고 축협도 100여 개로 줄이기로 했다. 나아가 농협중앙회와 인삼협동

조합중앙회를 연내에 통합하고 농·축협 중앙회는 2001년까지 통합하며, 임협중

앙회는 산림조합연합회로 개편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중앙회의 생산·구매·판

매·유통 등의 경제사업과 금융사업인 신용사업을 실질적으로 독립시켜 전문화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선 조합장의 경우에는 조합경영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책임을 묻는 제도나 전문경영인에 경영을 맡기고 대표권만 부

여받아 명예직이 되는 방안 중 택일하고, 중앙회장과 단위조합장 선출방식을 간

선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부의 협동조합 개혁안은 농·축협 비리 수사에 이어져 나온 것이

다. 검찰 수사 결과 IMF 신탁통치 이후에 농민들은 고금리의 부채에 짓눌려 죽

어나가는 데 농협은 대기업에 대한 부실 대출로 9,000여억 원을 떼였는가 하면,

이러한 부실대출 과정에서 중앙회장 등 임원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도 폭

로되었다.

이 같은 사건은 농업 관련 협동조합들이 농민들의 기초 경제사업단위이자 상

호부조조직이 아니라 신용사업 중심으로 돈 장사에나 열을 올리고, 농민의 조직

이 아니라 정권의 하부조직이자 농협 관료들의 조직으로 육성되면서 농민 통제

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하기에 협동조합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농민들의 절

실한 바램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부의 개혁안이 발표되자마자 거꾸로

농민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서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합의 농협 중앙회 점거 농

성투쟁은 성난 농민들의 분노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왜 그런가? 이번에

농림부에서 내놓은 소위 개혁안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기 때문이다. 개혁

을 한다면서, 개혁의 탈을 쓰고 도리어 개악을 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

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다는 정부 주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고 조합원이

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수렴과 결정과정은 거치지 않고 4대 중앙회 회장들을 모

아놓고 안을 만들라고 하다가 못 만드니 정부가 개혁안을 만든다는 것이다. 게

다가 협동조합에 대해 정부가 해산이나 합병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조합장 직선제를 군사독재 시절의 간선제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개혁과정과 개

혁 내용 모두에서 협동조합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깔아뭉개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가는 농어민의 자조(自助)조직을 육성하고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제 123조)마저 무시한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둘째, 협동조합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움으로써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도 협동

조합의 정신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협동조합의 정신

을 살려 농민들의 생산품목별 전문조합을 육성하고, 유통개혁을 통해 직거래,

소비자조합, 생활협동조합을 발전시켜야 한다. 안 그래도 초국적 금융자본과 초

국적 농산물 회사들의 국내농업 지배가 농업개방 이후 밀물처럼 밀려 오는데 이

것을 덩치 키우기로 대응한다는 경제논리는 수많은 협동조합 일선 기능직들을

정리해고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며 협동조합 상층의 관료화를 더욱 심화시키

는 것이다.

셋째,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의 독립사업체제로 강화한다는 것도 한 마디로 농

민들의 경제사업을 신용사업에 더욱 종속시키고 협동조합을 신용사업 위주의 돈

장사나 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협동조합은 농민들의 생산, 유통, 판매들

의 경제사업을 그 중심에 두고, 신용사업을 그러한 경제사업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자금 공급체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농업이 살고 농민이 사는 것이다.

그러면 협동조합은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가? 당사자인 농민들은 이렇게 말

하고 있다.

“…외세에 의해 강요된 ‘식민 협동조합!’ 군사독재정권이 길들여 놓은 ‘관제

협동조합!’ 이 자리에 모인 전국의 농민조합원 대표들은 오늘 이 시간부터 정치

권력과 행정당국의 반농민적이고 위헌적인 협동조합 간섭을 단호히 척결할 것이

며, 1999년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협동조합이 되는 원년임을 선포한다.

이 땅의 500만 농민이 바라는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잘

팔아 생산비를 건지고, 소비자들에게는 값싸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편리하게 공

급해 주는 협동조합이다. 또한 우리는 농사 짓는데 필요한 농자재를 값싸게 구

입하고 농사자금을 원활히 공급하는 협동조합, 서로 돕고 나누며 더불어 사는

농촌공동체를 지향하는 협동조합, 모든 국민들이 부모님 같고 추억이 어린 협동

조합을 갈망한다.………”

정부의 협동조합 개혁안에 반대하여 지난 3월 18일 협동조합의 진정한 개혁을

위한 전국농민조합원대회의 특별결의문의 일부이다. 오욕으로 점철된 협동조합

을 ‘민주적 협동조합, 자주적 협동조합’으로 세워 내고자 하는 농민들의 의지가

절절하게 표출되고 있지 않은가!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일제하의 왜곡된 농정이 청산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또한 계속되는 농산물 개방과 농업 포기 정책 속에서 식량자급률은 갈수록 낮아

지고 있다. 또한 농민들은 엄청난 빚더미와 상호연대 보증의 족쇄에 묵인 채 하

루하루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농정 왜곡, 농업 파괴, 농가

파탄의 핵심에는 농민들의 생산과 상호부조 조직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할 협동조

합이 정권과 상층 기득권 해 온 뼈아픈 과거가 있다. 이제 협동조합은 농민들의 민주적·자주적 조직으로

서 고통받는 농민들의 경제적 처지와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 제 역할을 하도

록 개혁되어야 한다.

정부는 농·축·임산협의 통합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칠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스스로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연합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협동조

합들은 농산물의 수급조절을 통해 농산물 가격을 보장하며, 수입개방 압력으로

부터 국내시장을 보장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또한

신용사업은 경제사업의 원활한 자금 공급체 역할을 충실히 하며, 정부의 농정

실패와 농협 부실로 누증된 농가부채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조합원의 의사와

무관하게 광역단위로 강제합병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정부는 올바른 협동조합 개혁을 요구하는 농민들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짓밟

고, 앞장섰던 농민들을 구속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농정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 농민이 없는 농정개혁, 협동조합 개혁은 앞서 현

정권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저지르는 실정에 또 하나를 덧붙이는 결과

를 가져올 것이며, 농민 뿐만 아니라 전 민중의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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