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공습 : 수사(修辭)의 이면
Z매거진(Z Magazine) 4월호, 노엄 촘스키
코소보와 관련된 나토(이는 일차적으로 미국을 의미한다)의 공습에 대해서는 많은 질문이 있어왔다. Z넷(Znet)의 논평들을 비롯하여 많은 글이 이 주제에 관해 쓰여졌다. 나는 진지하게 논쟁되지 않는 사실들에 유념하면서 약간의 일반적 발언을 하고자한다.
두가지 근본적인 쟁점이 존재한다. 1.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적절한 ‘세계질서의 규칙’은 무엇인가? 2. 이들 규칙이나 다른 고려사항이 코소보의 경우에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1.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적절한 ‘세계질서의 규칙’은 무엇인가?
현재 세계에는 국제법과 국제질서의 제도가 존재하며 이는 유엔헌장과 이에 결부된 결의안 및 세계사법재판소 판결 등에 근거하여 모든 국가를 구속한다. 간략히 말해, 평화적 수단이 실패했음을 확인한 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분명히 공인하거나 안보리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협소한 개념의) “무장공격”에 대한 자기방어가 아닌 이상,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는 금지된다.
물론 다른 말이 많이 있다. 따라서 유엔헌장에 기초한 세계질서의 규칙들과 -2차대전 후 미국 주도 하에 확립된 세계질서의 두 번째 축인- 보편인권선언에 표명된 권리 사이에는 노골적인 갈등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종의 긴장이 존재한다. 유엔헌장은 국가주권을 침해하는 무력을 금지하는 한편, 보편인권선언은 억압적 국가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다. “인도적 개입”을 둘러싼 쟁점은 이러한 긴장에서 기인한다. 코소보에서 미국/나토가 주장하고 사설이나 보도문에서 광범위하게 지지되는 것은 이러한 “인도적 개입”의 권리이다(보도문의 경우 심지어 용어의 선택에서조차 반영되고 있다)
뉴욕타임즈(3월 27일자)의 한 기사는 “법학자들, 무력 사용을 위한 판례 입증”이라는 제하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의 사례가 제시된다: 미국측 유엔 사절단 자문위원이었던 앨런 거슨(Allen Gerson). 다른 두명의 법학자가 인용된다. 그중 한명인 테드 갤런 카펜터(Ted Galen Carpenter)는 “행정부의 주장을 비웃고” 근거없는 개입권을 기각했다. 세 번째 인물은 시카고법대의 국제법 전문가인 잭 골드스미스(Jack Goldsmith)이다. 그는 나토 폭격에 대한 비판자들이 “타당한 법적 논거를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도적 개입에 대한 이의가] 관례나 관행의 문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기사제목에 언급된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시되는 증거를 요약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가 사실이 “관행이나 관례”의 결정에 관련된다는 점에 동의할 경우, 골드스미스의 관측은 타당하다. 우리는 또한 자명한 이치를 명심할 수도 있다: 인도적 개입권은, 그러한 것이 존재한다면, 개입하는 이들의 “선한 믿음”을 전제로 하며, 이러한 가정은 그들의 수사(修辭)가 아니라 그들의 기록, 특히 국제법의 원칙이나 국제사법재판소 판결 등을 그들이 준수했는가 하는 기록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적어도 타국과 관련될 경우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다. 한예로, 서구가 가만히 있을 때 대규모 학살을 막기 위해 이란이 보스니아에 개입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는 비웃음당하며 기각되었다(사실은 무시되었다). 만약 여기에 강대국으로의 종속을 넘어서는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이란의 “선한 믿음”이 가정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한 질문을 하게 된다: 개입이나 테러와 관련된 이란의 기록이 과연 미국의 그것보다 나쁜가? 또한 다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물을수도 있다: 모든 국가가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안보리의 결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온 유일한 나라의 “선한 믿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그 나라의 역사적 기록은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이 대화 의제에서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정직한 사람은 이를 단순한 교조에 대한 충성으로 치부해버릴 것이다. 이러한 문헌-대중매체나 기타 문헌- 대다수가 이와 같은 기본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고찰해보는 것은 유용한 과제이다.
2. 이들 규칙이나 다른 고려사항이 코소보의 경우에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지난 몇 년간 코소보에서는 인도적 재앙이 있었으며 이는 압도적으로 유고슬라비아의 군사력에 기인한 것이었다. 희생자들은 주로 알바니아계 코소보인이었으며 이들은 이 유고슬라비아 영토의 인구중 9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반적 추산에 의하면 2천명이 사망했고 수십만명이 난민이 되었다.
이러한 경우 외부인은 세가지 선택에 처하게 된다.
(1) 재앙을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2)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3) 재앙을 완화시키려 노력한다.
이러한 선택은 다른 동시대의 사건들에 의해 뒷받침된다.몇몇 유사한 규모의 사건들에 유념하면서 코소보가 어느 패턴에 들어맞는지 물어보도록 하자.
(ㄱ) 콜롬비아. 콜롬비아의 경우, 미국무성의 추산에 따르면, 정부와 친정부 준군사집단에 의한 정치적 살인이 대략 코소보의 그것과 동일한 수준이며 이들의 잔학행위로 인한 난민이 연간 백만명 이상이다. 90년대 내내 폭력이 증가함에 따라 콜롬비아는 미국의 무기와 군사훈련을 제공받는 제일의 서반구 국가였으며, 이러한 원조는 “마약전쟁”이라는 구실-거의 모든 진지한 관찰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하에 현재에도 증가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특히 가비리아 대통령을 열렬히 칭찬하고 있는데, 인권조직들에 따르면 가비리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을 위해 전직 대통령들 이상으로 “끔찍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정은 이미 여러 곳에 나와있다.
이 경우 미국의 반응은 (1), 즉 잔학행위를 확대시키는 것이다.
(ㄴ) 터키. 극히 보수적인 추산에 따르더라도, 90년대 터키의 쿠르드족 탄압은 코소보와 같은 유형에 속한다. 터키의 탄압은 90년대 초반 정점에 달했다. 이를 입증하는 하나의 지표는 90년에서 94년 사이 터키 군대가 농촌 지역을 초토화하면서 백만명의 쿠르드인이 농촌으로부터 쿠르드의 비공식적 수도인 디야르바키르로 이주한 사실이다. 94년에는 두가지 사실이 기록되었다. 94년은 조나단 랜달(Jonathan Randal)이 현장에서 보도했듯이 “쿠르드 지방에서 최악의 탄압이 자행된 해”였고 터키가 “미국 군사물품의 단일 최대 수입국가이자 결국 세계 최대의 무기구입국”이 된 해였다. 터키가 촌락을 폭격하면서 미국 제트기를 사용했다고 인권조직들이 폭로했을 때, 클린턴 행정부는, 인도네시아나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무기인도를 보류할 것을 요구하는 법률을 피해가는 길을 찾았다.
콜롬비아와 터키는 테러주의 게릴라들로부터 자국을 방어한다는 이유 아래 자행되는 (미국이 지원하는) 잔학행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례는 다시 한번 (1), 즉 잔학행위를 확대시킴을 보여준다.
(ㄷ) 라오스. 매년 수천명의 사람들-이들 대부분은 어린이와 가난한 농민들이다-이 라오스 북부 자르스고원에서 살해되고 있으며, 이는 역사상 민간인을 목표로하는 가장 대규모적인 폭격이자 분명 가장 잔인한 것이다. 가난한 농민들의 사회에 대한 미행정부의 격렬한 공격은 이 지역의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최악의 기간은 미행정부가 -대중과 기업의 압력에 의해- 협상을 강요당하고 북베트남에 대한 정기적 폭격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1968년부터였다. 키신저와 닉슨은 폭격기를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사상자들은 소규모 대인무기인 “꼬마폭탄(bombies)”으로 인한 것인데 이는 지뢰보다도 훨씬 극악한 것이다. 꼬마폭탄은 대인살상과 불구화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며 트럭이나 건물 등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자르스고원은 제조사인 허니웰(Honeywell)에 의하면 폭발실패율이 20-30%인 수억개의 이러한 범죄도구로 도배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상당히 저열한 품질관리, 혹은 지연된 행동을 통한 민간인 살해라는 합리적 정책을 나타낸다. 이 수치는 가족들이 은신처로 삼은 동굴까지 관통하는 고등미사일을 비롯한 배치된 기술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꼬마폭탄”으로 인한 연간 사상자수는 수백명에서 “연간 전국 사상자수 2만명”-월스트리트저널의 베테랑 아시아 담당기자인 배리 웨인(Barry Wain)에 의하면 그중 절반이 사망자이다-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추산된다. 보수적 추산에 따르면 따라서 올해의 위기가 대략 코소보의 그것에 비교될 만하다. 비록 사망자가 어린이에 훨씬 더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1977년부터 지속적인 잔학행위를 경감시키기 위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메노파중앙위원회(Mennonite Central Committee)의 분석에 따르면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어린이이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인도적 재앙을 공개하고 다루기 위한 노력들이 있어 왔다. 영국에 본부를 둔 지뢰자문단(Mine Advisory Group)은 이러한 치명적 물체들을 제거하려 하고 있지만, 미국은 결국 일부 라오스 민간인을 훈련시키는데 동의하면서도 “지뢰자문단을 따르는 소수의 서구 기구들로부터 빠져나가고 있다”고 영국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영국 언론은 또한 미국이 자신들의 활동을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무해한 절차의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는 지뢰자문단 전문가들의 증언을 분노한 어조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모든 활동이 그러하듯이 여전히 국가기밀인 상황이다. 방콕 언론은 이와 매우 유사한 캄보디아, 특히 1969년초 이래 미국의 폭격이 집중되었던 동부지역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이 경우 미국의 반응은 (2),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대중매체와 주석가들의 반응은 라오스에 대한 전쟁이 “비밀전쟁”-1969년 3월 이래 캄보디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의 의미는 잘 알려진 그러나 억압된 전쟁이다-으로 규정된 규범을 따라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자기검열 수준은 따라서 엄청나게 되며 이는 현재의 국면과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례의 적절성은 더 이상의 언급이 없이도 자명해야 할 것이다.
이미 널려있는, 또한 생화학전쟁-1996년, 5년간 50만명의 이라크 어린이를 살해한 것에 대한 그녀의 반응을 물었을 때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우리는 그 댓가가 가치있다고 생각한다”고 전국방송에서 말했다-이라는 사악한 형태를 통해 이라크 민간인을 대량학살하는 등의 보다 심각한 동시대의 잔학행위와 같은 (1)과 (2)의 다른 사례들은 굳이 더 이상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를 포함한 다른 사례들은 코소보가 보여주는 것과 같이, 클린턴 행정부의 “도덕 나침반”이 어떻게 적어도 적절하게 기능하는가에 관한 경외로운 수사를 접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러한 사례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나토의 폭격 위협은 예상대로 세르비아 군대와 준군사조직의 잔학행위를 급격히 증대시켰으며, 국제적 감시자들의 출국을 불러왔고 이는 물론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 웨슬리 클라크 [나토군] 사령관은 나토의 공습 이후 세르비아계에 의한 테러와 폭력의 강화-이는 일어난 상황 그대로였다-가 “전적으로 예측가능”한 것이었다고 선언하였다. 테러는 처음으로 수도 프리슈티나까지 다다렀고, 알바니아계 인구의 상당 부분을 축출하기 위한 노력임이 분명한, 대규모 촌락 파괴와 암살, 거대한 난민의 흐름-클라크 장군이 정확히 관찰하듯이, 이들 모두는 위협과 무력사용의 “전적으로 예상가능한” 결과이다-등에 관한 신뢰할 만한 보도가 존재한다.
코소보는 따라서 (1), 즉 -정확히 예상하면서- 폭력의 확대를 도모한다는 전략의 또다른 증거이다.
적어도 공식적인 수사를 고수한다면 (3)을 예증하는 사례를 찾기는 너무나도 쉽다. “인도적 개입”에 관한 최근 학계의 주요연구중 하나인 션 머피(Sean Murphy)의 연구는 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한 1928년의 켈로그-브라이언드 조약 이후, 그리고 이러한 조항을 강화하고 분명히 표현한 유엔헌장 이후의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최초 국면에 “인도적 개입”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일본의 만주 공격,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공, 히틀러의 체코슬로바키아 일부 점령 등이었다. 이들 모두는 고조된 인도주의적 수사와 더불어 사실적 정당화를 동반했다. 일본은 지도적인 중국인 민족주의자-그는 미국이 남베트남을 공격하는 동안 급조할 수 있었던 그 누구보다도 신뢰할만한 인물이었다-의 지원 아래 “중국 산적”으로부터 만주인들을 방어하면서 “지상낙원”을 건설하려 했다. 무솔리니는 서구의 “문명사절”을 전달하면서 수천명의 노예를 해방시키고 있었다. 히틀러는 독일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이해에 봉사하기 위한 진심어린 욕구로 가득찬” 과업을 통해, 그들의 의지-슬로바키아 대통령은 슬로바키아가 [독일의] 보호령이라고 선언해줄 것을 히틀러에게 요청했다-에 따라 인종간 긴장과 폭력을 종식시키고 “독일과 체크 민족의 민족적 개별성을 보호”하고자 한다고 공표했다.
이러한 지긋지긋한 정당화를 유엔헌장 이후 기간에 이루어진 개입-“인도적 개입”을 포함하여-에 대한 그것과 비교해보는 것은 또다른 유용한 지적(知的) 연습이 될 것이다.
이 시기 (3)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1978년 12월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이는 당시 절정에 달했던 폴포트의 잔학
행위로 귀결되었다-이다. 베트남은 무장공격에 맞선 자기방어권을 주장-이는 유엔헌장 이후 시기의 변명이 그럴듯한 사례 중 하나이다-하였다. 크메르루주 정권(민주캄푸치아; DK)은 국경 지역에서 베트남에 맞서 잔인한 공격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론은 국제법을 잔인무도하게 위반하는 아시아의 “프러시아인들”을 비난하였다. 이들은 폴포트의 대학살을 종결시킨 죄목으로, 처음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중국의 침공으로 그 다음에는 극도로 가혹한 미국의 제재부과에 의해 엄벌에 처해졌다. 미국은 축출된 민주캄푸치아(DK)를 공식 캄보디아 정부로 인정했는데, 이는 국무성의 설명에 의하면 폴포트정권과의 “지속성” 때문이었다. 미국이 캄보디아에서 이후 계속된 공격에서 크메르루주를 지원한 것은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한 사례는 “인도적 개입에 관한 태동중인 법적 규범”의 기초가 되는 “관례와 관행”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원(圓)이 네모지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이데올로그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토의 공습이 국제법의 취약한 구조를 더욱 허물어뜨린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나토의 결정을 낳은 논의들을 통해 이를 분명히 하였다. 영국은 논외로 하더라도(지금으로선, 우크라이나가 고르바초프 이전 시기에 독자적인 행위자였던 정도만큼 독자적이다), 나토 국가들은 미국의 정책에 회의적이었으며, 특히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군국주의적 횡포”(케빈 컬런, 보스턴글로브 2월 22일자)를 불쾌하게 생각했다. 오늘날 이 분쟁지역을 면밀히 조사하면 할수록 미국의 무력 강요에 대한 반대는 -심지어 나토 내에서조차(그리스와 이탈리아)- 커지게 된다. 프랑스는 나토 평화유지군의 배치에 권한을 부여하는 유엔안보리 결의를 요구한 바 있다. 미국은 “나토는 유엔과는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국무성 관료의 설명이다-을 고집하면서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미국은 “‘권한을 부여한다’는 신경통적인 어휘”가 나토의 최종성명에 쓰이도록 허용하기를 거부했으며, 이는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어떠한 권한도 양도하기를 꺼리기 때문이었다; “승인한다”는 어휘만이 허용되었다(제인 펄레즈, 뉴욕타임즈, 2월 11일자). 이와 유사하게 이라크 공습은 특정 시기 유엔에 대한 경멸의 뻔뻔스러운 표현이었으며 그렇게 이해되었다. 또한 몇달 전 한 작은 아프리카 나라의 의약품 생산의 절반을 파괴한 것-이 또한 “도덕 나침반”이 정의로부터 빗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사건이 아니다-도 물론 동일한 경우이다-사실들이 “관례와 관행”을 결정하는데 의미를 가진다고 간주될 경우 즉시 중요하게 검토되어야 할 기록은 말할 것도 없다.
보다 그럴듯하게, 1930년대말에 그 의미를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질서의 규칙들에 대한 더 이상의 파괴는 무의미하다고 주장될 수도 있다. 세계질서의 틀을 짜는데 있어 세계를 주도하는 힘[유엔]에 대한 경멸은 이제 극한에 다다라서 더이상 논의할 것도 없다. 내부 문서 기록을 검토해보면 이러한 입장은 초기 시절들, 심지어 1947년 새로 구성된 안보리의 최초 규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케네디 시기 동안 이러한 입장은 공공연한 표현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레이건-클린턴 시기의 주요한 혁신은 국제법과 헌장에 대한 도전이 완전히 공개화된 것이다. 이 입장은 또한 흥미로운 설명으로 뒷받침되었는데, 이는 진리와 정직성이 중요한 가치로 간주될 경우 언론의 1면을 장식하고 학교와 대학의 교과과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고위당국은 세계사법재판소와 유엔, 그리고 여타 기구들이 전후 초기 몇년간과는 달리 이제 더 이상 미국의 질서를 따르지 않으므로 이들이 의미를 잃었다고 잔인하도록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한편 공식적 입장을 채택할 수도 있다. 이는 정직한 자세가 될터인데, 적어도 자기정당화적 태도와, 변하기 쉬운 적에 맞선 고도의 선택적 무기로 경멸시되는 국제법 원칙의 장악이라는 냉소적 게임을 거부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레이건주의자들이 신천지를 개척한 한편, 클린턴 하에서는 세계질서에 대한 도전이 극단화되어 매파 정책분석가들에게조차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손꼽히는 주류 저널인 포린어페어즈(Foreign Affairs) 최근호에서 새뮤얼 헌팅턴은 미국이 위험한 경로를 밟고 있다고 경고한다. 세계 대다수-그는 아마 세계 대부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의 눈에 미국은 “그들 사회에 대한 단일한 최대의 외부 위협”으로 간주되는 “악당 초강대국이 되어가고” 있다. 그는 현실적인 “국제관계이론”은 이러한 악당 초강대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이 생길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입장은 실용주의적인 지반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자기 사회의 다른 이미지를 선호하는 미국인이라면 실용적 지반에서가 아닌 재고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것은 코소보에서 무엇을 해야하는가하는 문제를 어디에 남기는가? 그것은 대답되지 않은채로 남는다. 미국은 하나의 행동방침을 선택했고 이는 자신이 분명히 인정하듯이 잔학행위와 폭력을 확대시킨다-“예측가능하게”. 이는 약탈을 일삼는 국가들로부터 미약하지만 적어도 제한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국제질서 체제에 또다른 일격을 가하는 행동방침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결과는 예측불가능하다. 하나의 가능한 관찰은 “세르비아에 떨어지는 모든 폭탄과 코소보의 모든 인종적 살상이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가 어떤 식으로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파이낸셜타임즈, 3월 27일자). 몇몇 가능한 장기적 결과는 극도로 추악한 것이며, 예고 없이 사라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했어야 했다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다: 우리는 잔학행위가 지속되는 것을 단순히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 하나의 선택은, 항상 그러하듯이, 히포크라테스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우선 해를 끼치지 말라.” 이러한 기본적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 것도 하지 말라. 항상 무언가 고려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 외교와 협상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다.
냉전이라는 구실이 효력을 상실함에 따라 “인도적 개입”의 권리는 -정당화를 동반하건 아니건- 향후 몇년간 보다 자주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높이 존경받는 주석가들-그 요점이 보도되지도 않은채 미국에 의해 거부되는 결정에서 이러한 문제를 판결하는 국제사법재판소는 말할 것도 없다-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국제관계와 국제법에 관한 학문분야에서 헤들리 불(Hedley Bull)이나 루이스 헨킨(Louis Henkin)보다 존중받는 목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다른 나라의 견해를 무시한채 세계 공공이익에 대한 권위적 판관을 자처하는 특정 국가나 국가집단은 사실 국제질서에 대한 위협세력이며 결국 이 분야의 효율적 행동에 대한 위협”이라고 불은 15년 전에 경고했다. 헨킨은 세계질서에 관한 모범적 저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력행사에 관한 금지를 침식하는 압력은 슬픈 일이며, 이러한 환경에서 무력행사를 정당화하는 주장은 설득력도 없고 위험하다… 인권의 침해는 사실 너무나도 흔한 일이며, 외부의 무력행사로 이를 치유하는게 허용될 경우, 거의 모든 국가에서 거의 모든 다른 국가에 대한 무력행사를 금지하는 법이 사라질 것이다. 인권은 다른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주장되어야 하며 부정의는 다른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치료되어야 한다. 침략에 문을 열고 전쟁의 불법화와 무력행사의 금지라는 국제법의 발전된 원칙을 파괴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정되는 국제법 원칙, 세계질서, 엄숙한 조약의무,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 가장 존중받는 주석가들이 심사숙고한 의견-이들이 자동적으로 특정한 문제들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각각의 문제는 그 진가에 따라 고려되어야 한다. 사담 후세인의 표준을 택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국제질서의 원칙을 위반하는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수행하는데 있어 입증하고 충족시켜야할 막중한 부담이 존재한다. 이러한 부담은 아마 결코 충족되지 않을테지만, 이는 열정적 수사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보여져야 한다. 이러한 위반의 결과는 주의깊게 평가되어야 한다-특히, 우리가 “예측가능”하다고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 또한 최소한 진지한 이들에게는 행동의 이유 또한 평가되어야 한다-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지도자들과 그들의 “도덕 나침반”을 추종함으로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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