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화물연대 광주지부 故 박종태 지회장은 대한통운을 비롯해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열사는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 날고 싶어도 날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가길” 소원했다. 고인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유가족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열사의 아내 하수진 씨의 글을 싣는다.

벌써 짧지 않은 2년이란 시간이 지났네요.
장례식이 끝난 이후로 저와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넷이 아닌 셋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배우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었습니다. 딸아이는 무뚝뚝하고 잔소리 많은 엄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를 다시 찾아야 했고 아들은 같이 목욕도 가고 축구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혼자 져야 함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 정말 말 그대로 믿기 싫은 현실의 두려움에 적응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온 우리의 생활 터전의 겉모양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지만 실제 생활하는 우리는 달라져야만 했기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요. 그나마 주위 분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이들은 아직 아빠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땐 자신들보다 화물연대 아저씨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떠난 거 아니냐고 물어 보기도 합니다. 또 집회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집회 하냐고 물어 보기도 합니다. 아직 어리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게다가 뉴스를 보는 어른들에게선 한숨이 끊이질 않으니 더 이해가 안 될지도 모릅니다.

아빠의 빈자리를 실감할 때마다 어린 나이임에도 견뎌내야 함을 힘들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선택이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거나 별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여겨진다면 이해는커녕 아빠와 세상에 대한 원망만 커지겠지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아니 오히려 우리는 비록 아프고 어려움은 있었지만 아빠의 선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밑거름이 되었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 목숨마저 내 놔야 하는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아빠의 선택이 고귀했음이 증명되는 세상이 어서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2011.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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