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 날치기로 국보법 7조(찬양·고무 등)와 10조(불고지)에 대한

수사권을 안기부가 행사할 수 있게 된 가운데, 95년 이른바 ‘간첩 불고

지’ 혐의로 기소된 함운경 씨의 1심재판이 속개되어 관심을 모았다.

함 씨의 재판은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던 허인회 씨가 무죄판결을

받은 후에 진행되는 재판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14일 오후2시 서울지법 형사10단독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은 ‘간첩 김

동식’ 씨를 증인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함운경 씨를 만나 자신이 대남

공작원임을 밝혔다”는 김 씨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하는데 촛점이

모아졌다. 검찰은 김동식의 증언을 통해 함 씨의 불고지 혐의를 입증

하려 했지만, 김 씨는 수차례 자신의 증언을 번복하는 등 일관되지 못

한 진술로 재판부의 의혹을 샀다.

김 씨는 자신의 노동당 입당 시기를 90년에서 86년으로 번복하는가

하면, “당원번호를 기억하느냐”는 판사의 질문엔 “당원증을 받는 즉시

회수당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했다가 곧바로 판사가 “진

술서에 기재한 당원번호는 무엇이냐”고 되묻자 “이제 기억났다”고 진

술을 뒤엎는 등 횡설수설하는 모습이었다.

피고인 함운경 씨는 “3개월간 수감되어 있으면서 수차례 김동식과의

대질심문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밝힌 뒤, 증인에게 몇 가지 질

문을 던졌지만 증인은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일관했다.

재판후 담당변호인 이정우 변호사는 “간첩 불고지 사건은 조작이다.

경찰수사였기 때문에 변호인 접견등을 통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지만,

만일 안기부에서 불고지 수사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지역당 하나

정도는 만들었을 것”이라며 이번 안기부법 개정이 가져올 상황을 우려

했다.

95년 불고지 혐의로 구속됐던 사람은 허인회, 함운경, 이인영, 우상

호 씨이며, 이중 허 씨가 무죄판결을 받았고 이인영, 우상호 씨는 각각

구속만기와 구속적부심에 의해 풀려난 뒤 검찰이 기소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간첩 김동식의 전향여부를 놓고 한동안 흥미있는 진술이 전개됐

는데, 변호인이 “전향한 시기가 언제냐”고 묻자 김 씨는 “모르겠다”고

했다가 곧 “전향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장은 “전

향하지 않은 남파간첩을 처벌하지도 않고 수사기관에서 데리고 있어도

되느냐”고 물었으며, 검사는 “남파간첩은 사법처리에 전례가 없으며,

대공정책상 사법처리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판사는 “전

향여부를 결정하지도 않은 남파간첩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서는 것은 잘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97년 1월 14일(화) 인권하루소식 제8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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