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김대중 정부는 시장제일주의(신자유주의)를 철회하라!
이 성 경
민주노총 총력투쟁의 선봉으로 나선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일주일을
넘기고 있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요구는 돈 몇 푼 더 받자는 것이 아니다. 단순
한 고용안정만도 아니다.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은 이
렇게 지하철 노동자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투쟁으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그런 만큼 김대중 정부를 앞세운 총자본의 대응도 필사적으로, 그러면서도 치
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응의 기본전략은 ‘여론을 동원한 고사작전’이다. 그것
을 위해 김대중 정부는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고 있다. 여기에는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그 동안 여·야로, 신자유주의세력과 수구세력으로, 정치권과
재벌로 나뉘어 갈등하던 모든 지배세력이 합세하여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구조조정은 IMF 사태라는 위기상황 아래서 국가경제를 파탄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데 서울지하철과 민주노총 등이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이러한 국가적 과제인 구조조정 자체를 거부하고 법절차를 무시한 채
파업을 벌이고 있다. 구조조정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
도 이번 기회에 법과 원칙을 확고히 세워 파업을 일삼는 강경노선의 노동운동을
뿌리뽑아야 한다. 레이건이나 대처처럼!”
과연 그런가? 김대중 정부가 말하는 대로 구조조정을 하면 나라경제가 위기에
서 구해질 수 있는가? 일시적인 고통만 참고 견디면 풍요롭고 행복한 미래를 기
약할 수 있는가?
영·미식 시장제일주의-신자유주의는 인간적 삶에 대한 도전이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호황을 누리던
서구자본주의가 70년대 들어 불황에 빠져들었을 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복
음으로 등장했다. 종교의 복음과 다른 것이 있다면 여기에서는 ‘신’의 자리에
‘시장’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오로지 이윤만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시장의 원리에 모든 것을
복속시킨다. 예컨대 인간의 노동력도 철저하게 개별화된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
의 경쟁원리에 따르도록 만들려고 한다. 상품화, 시장화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
은 없애버려야 한다.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집단의 힘으로 노동력의 가격(임
금)을 결정하려 하는 것은 시장에 반한다. 사회복지나 사회보장제도도 마찬가지
이다. 오직 자본가가 언제든지 사서 쓰고 필요없으면 사지 않을 수 있게(자를
수 있게!) 고용이 유연화되어야 하고, 이윤을 벌어들이는 데 기여한 만큼씩 줄
수 있도록 임금이 유연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효율성이 높아지고, 경제가 살아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인간의 노동력을 이렇게 철저히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인
간도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처럼 수요가 늘면 더 생산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수많은 인간이 남아도는 상품처럼 ‘잉여인간’으로 전락한다. 경쟁과 이윤을 위
해 수많은 인간이 인간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것이다. 실업자라는 이름으로,
노숙자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제는 이렇게 ‘잉여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제도
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잉여인간이 늘어나는 속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도 끝없
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임금은
줄고 노동강도는 강화된다. 노동자에게는 지옥이 되고 자본에게는 천국이 되는
그런 사회가 바로 시장제일주의-신자유주의 사회인 것이다.
대처가 한 일이 이것이고 레이건이 한 일도 이것이다. 대처와 레이건은 들어
서자마자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시장제일주의를 제도화했다. 그렇게 해서 미국과
영국의 독점자본은 아직 그런 영.미형 신자유주의를 채택하지 않은 다른 나라의
자본에 대해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호황의 혜택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았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노동자.민중은
실질소득이 하락했고 빈곤층은 더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3년∼95년 동
안 생산직 노동자의 평균 시간당 임금은 12%나 감소했다. 그래도 실업률은 낮지
않느냐고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는 대부분 언제 잘릴 지 모르는 임시직이다. 그
리고 유럽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다는 영국의 경우도 실상을 보면 무취업자 가구
비율이 20.6%로 프랑스(8.8%), 독일(8.4%)보다 훨씬 높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
에 대한 복지혜택도 없애거나 대폭 삭감했다. 스스로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른바 일-복지제도라는 이름으로. 이에 반해 스톡옵션제니 연
봉제니 해서 상층 일부 계층은 수천만 내지 수억 달러의 엄청난 소득을 누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회는 두 개의 국민으로 나뉘어진다. 20:80사회가 된다. 그 결
과는 노동자·민중의 경제적 생활이 악화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쟁과 이윤만
이 가치를 인정받는 속에서 모든 인간적 유대는 파괴된다. 사회가 황폐해지고
인간성이 피폐해진다. 가정이 파괴되고 범죄가 만연한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계
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총격사건이 미국사회의 문화적 파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
고 있지 않은가? 영국의 경우에도 신자유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시폭동
이 발생했으며 그래서 노동력 절감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보다 폭동을 진압하느
라고 든 치안비용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나마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은 그동안 복지국가라고 해서 ‘복지병’이라는 말
이 나올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복지제도가 있어왔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
정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그것이 유지되고 있다. 예컨대 영국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선두에 섰던 나라지만 아직도 약 53주에 이르는 실업급여 외에 교육, 의
료 등에서 상당한 복지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미국은 기부와 자선이라도 발전
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복지후진국에다 가진자들이 자선조차 하지
않는 천민자본주의가 아닌가? 그런데 영·미식의 신자유주의를 도입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천민화된 한국판 신자유주의의 미래상은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익히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지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면
서 우리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조금만 들여다 보자. 실업자는
이미 4백만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고용보험에 가입해야만 지급받을 수 있는 실
업급여는 3개월에서 길어야 6개월 기한으로 지급되고 있다. 퇴직금과 퇴직수당
에 의한 생계유지 기간은 71%가 5개월 이하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결국 6개월에
서 12개월 정도가 실업자들이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인 것이다. 이것도 고용보
험에 가입했거나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에게만 해당된다. 고용보험에 가
입하지 않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나 건설일용노동자, 사업에 실패한 자영업자 등
은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근로자가구 소득의 67.1%가(97
년 통계) 가장의 임금으로 충당되고 있는데, 올해 가구주 실업자가 전체 실업자
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4%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생존의 파괴는 노동자만이 아니다. 농업의 붕괴로 빚더미에 앉은 농민들의 삶
도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농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 사람만
1,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급증하고 있는 노점상을 비롯한 도시빈민들
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5대 재벌들은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면서도 작년 1년동안 자산이 13.8%
나 증가했다. 또 금융소득자들은 연 70%의 막대한 소득을 올렸다. 억대 연봉자
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특권적 중산층들의 소득증대가 승용차 등 고가품을 중심으로 한 소비증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영.미와 같은 여
피족이 우리나라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보다도 더 천민적인 여피족들이!
그리고 이렇게 하여 우리 사회는 두 개의 국민으로 나뉘어진 20:80사회로 나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 속에서 사회와 인간성의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우선 실업자
들의 가정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남성실업자 중 7.7%가 이미 이혼했거
나 별거 중이고, 10.8%는 이혼이나 별거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생계비 마련을 위한 어린이 유괴나 살인, 가족동반형 자살의 증가, 보험금을 타
기 위해 아들의 손목을 자르고 자신의 발목을 절단하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잇따
르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조사한 ‘실업실태 및
복지요구조사’에 의하면 실업자 5명 중 1명은 무엇이든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
을 느끼고, 가구주 실업자 4명 가운데 1명은 죽고싶다는 절망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실업자들은 극심한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사회생활에서 배제되어 영구실업자가 되거나 인간쓰레기로 전락
할 위기에 놓여 있다. 노숙자의 급증은 그 징표이다. 한편 살아남은 직장인들은
소위 ‘ADT증후군’이라고 하여 해고위협으로 인한 각종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민자본주의에 접목된 한국판
신자유주의가 어떤 모습을 띠게 될 지는 이미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계속해서 시장제일주의-신자유주의의 길로 가자는 것인가?
김대중 정부는 시장제일주의-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도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비타협적으로 밀고 나가겠다고 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해서 외국자본을 유치해야 경제를 살
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해서 경제는 살려지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멕시코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 나라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렇
게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했지만, 공기업을 초국적 자본에 다 넘겨
주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등 자본의 천국을 만들었지만 그 나라 경제가 위기
에서 자유로운가? 국민들의 경제생활이 나아졌는가? 아니다. 왜 그런가? 신자유
주의 세계화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된 시장에서는 강약이 부동이
다. 얻는 자는 소수요 대부분은 잃는자가 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는 자본
일반의 이데올로기이자 전략이기도 하지만 자본 중에서도 전 세계에 대한 독점
적인 지배를 추구하는 초국적 자본의 이데올로기이요 전략인 것이다.
금융이나 기간간업을 초국적 자본에 내주고, 경제 전반이 더욱 깊이 예속된
상태에서는 초국적 자본의 요구대로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들이 자신들의 축
적 위기를 전가시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장제일
주의와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법이나 정책, 투쟁이 벌어지면
초국적 자본은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시장의 신뢰’를 철회할 것이
다. 경제가 더 깊이 예속될수록 이러한 초국적 자본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따라 노동법이 계속해서
개악되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보라! 조금만 길게 보면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
을 해서 시장에, 실질적으로는 초국적 자본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죽는
길이지 사는 길이 아니다.
이미 세계 도처에서 이러한 신자유주의-세계화는 거센 저항에 부딪치기 시작
했다. 우리가 총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남미에서도 여러나라에서 노동자들
이 총파업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민중들만이 아니다. 양심적인 지식인,
종교인, 문화인 등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저항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교
황까지도 이미 작년초에 신판자본주의-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유럽에서 사민당 세력이 줄줄이 선거에서 승리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정권을 잡은 사민당 세력들이 초국적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있지만!
심지어는 초국적 자본 세력 안에서도 투기자본을 규제하느니, 최빈국의 외채
를 일부 탕감하느니 하는 논의들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힐러리가 나서서
“공동체주의”를 선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그러
나 신자유주의가 낳은 파괴적 결과들을 어떻게든 무마시키지 않으면 안 될 지경
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처와 레이건을 들먹이는 김대중 정부도 다른 한편으로는 약삭빠르게 이런
것들을 모방하고 있다. 제3의 길, 생산적 복지를 들먹이면서 신자유주의에서 신
중도노선으로의 전환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발칸
전쟁에서 가장 앞장서고 있는 것에서 ‘제3의 길’의 허구성은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대량해고와 대량실업을 초래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비타협적으로 강요하면서 중도노선 운운하는 얄팍한 술수로 노동자.민중을 속여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 술수는 작년에 노.사.정 위원회를 가
지고 상층 관료들을 끌여들여 노동자투쟁을 교란시켰던 것으로 충분하다.
김대중 정부는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을 노동자 중에서도 소수가 경제를 살리는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것으로 매도하면서 고립, 괴멸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민주노총의 투쟁에 실업자·도시빈민·농민·대학
생·진보세력이 참여하고 있어 산업현장은 물론 사회전반의 불안감을 야기할 가
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은 실업자·도시빈
민·농민·학생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의 함께 하는 총력투쟁이다. 그들을 빼고
나면, 4천만 국민 중에서 얼마나 남는단 정부’라는 이름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신자유주
의 정책기조를 포기하고 민주노총의 4대 요구를 수용할 것을 선언해야 한다. 그
것만이 노동자·민중의 생존을 지키고 총체적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를 살리는
길이자 김대중 정부 자신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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