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들 거리로 내몰고, 항의조차 못하게 하려는가

일제의 식민통치와 분단논리를 앞세운 독재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민주적 기본권은 극도로 제한되어 왔다. 민주주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핵심적 기본권의 하나인 집회 시위의 자유 역시 여전히 제한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권 하에서 의원입법으로

4월 27일 국회상임위를 통과, 5월 3일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는 집시법 개정안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사유재산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

개정안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유재산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주거지역 또는 유사한 장소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정부기관책임자나 재벌그룹 총수의 사택과 재벌그룹 본사가 집회 장소로 되온 것이 발단이다. 그동안 이러한 곳에서의 집회가 여러 가지 명목의 허위집회신고로 방해받아 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조항이 통과될 경우 기업이나 정부의 책임자들이 대중의 비판으로부터 손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찰의 해산명령권이다. 준수사항을 위반하여 질서유지를 할 수 없을 때 경찰이 해산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치적인 목적이나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집회·시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받을 수 있다. 더구나 이 조항은 이의신청 등 최소한의 보완절차도 없는 것이므로 공권력 행사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집회현장에서 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도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질서유지선과 관련한 처벌조항의 신설이다. 그동안 시위로 인해 발생한 시위대중과 경찰의 대립은 사실상 경찰이 모든 차도행진을 자의적으로 봉쇄해 왔기 때문이다. 교통질서유지를 이유로 절대 불허해 왔던 주요 도로에서의 행진이 허용된 후, 오히려 평화적 시위가 정착되고 있다는 점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런데도 이른바 ‘질서유지선’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할 경우 이를 둘러싼 경찰과 시위대중의 대립만 증폭시킬 뿐이다.

*국민 비판 억누르려는 발상

사실 현행 집시법에서도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 공관, 국내주재 외교사절의 숙소 등지에 대해 1백미터 이내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헌법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비판과 의견개진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현행 집시법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외국의 대사관이나 영사관 앞에서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대사관이 집회시위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지극히 사대주의적인 악법조항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재벌사옥들은 저마다 이름모를 나라의 대사관 하나씩을 유치(?)해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이번 집시법 개악은 수백만 노동자들을 정리해고로 쫓아냄으로써 생존권을 박탈한 현 정권이 이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민주적 기본권마저 제한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집시법 개악을 즉각 중단하고, 현행 집시법의 독소조항을 폐지·개정해야 할 것이다.

[저 자] 김태연 민주노총 기획국장

[출 처] 매일노동뉴스

[발 행 일] 199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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