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칠레민중의 투쟁과 좌절의 역사 <칠레전투>를 보고
이 성 경
지난해 말 세계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라는 인
물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신병치료를 받던 중 재임시 200여 명
의 스페인 사람들을 살해, 납치한 혐의로 체포되어 인권법정의 준엄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피노체트는
1973년 쿠데타 이후 13만 명을 투옥, 계적 상징 인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고한 양민 학살사건이 어디 아득한 옛날 먼 나라 이야기겠는
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요, 역사이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80년 5.18 광주민
중항쟁이다. 매년 갖은 구속 탄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인권영화제를 개최해
온 <인권운동사랑방>은 “전세계 학살자를 처벌하라”는 기치를 내걸고 광주민중
항쟁 기념 영화상영을 하였다. 4시간 36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상영된 영화는 바
로 <칠레전투> 라는 작품이다.
73년 9월 11일 군부 쿠데타에 의해 장렬히 죽어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는
33년 사회당을 창설하였고, 70년 9월에는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어 세계에서 최
초로 선거를 통한 평화적 인 방법으로 마르크스주의 정권을 탄생시켰다. 아옌데
는 전형적인 식민지 종속국이었던 칠레에 농지개혁을 단행하고, 임금과 복지를
개선했으며, 칠레 인민의 젖줄인 구리광산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미국은 30대
다국적 회사 가운데 24개가 칠레에 진출해 있었고, 은행을 제외한 칠레의 18대
기업이 모두 이들의 자회사이며, 칠레의 구리사업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었
다. 이러한 칠레에 노동자 민중의 정권이 들어서자 두려움을 느낀 미국은 구리
수입을 중단하고 생산재, 생활필수품의 수출을 중지하여 ‘생산력 감퇴와 실업,
물자난’을 조성하면서 인민연합 정권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또 국내 반혁명
세력을 규합하여 반인민연합을 결성케하는 한편 칠레 군부에 대한 개입을 강화
하여 쿠데타를 준비했다. 이에 편승하여 반인민연합은 운수 노동자 파업을 사주
하여 경제를 교란하고, 1972년에는 자본가 파업을 조종한다. 결국 미국의 3년여
에 걸친 공작 끝에 육해공 경찰군의 합동쿠데타로 인민연합 정권은 무너지고 만
다. <칠레전투>는 아옌데의 인민연합 정권이 피노체트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기
전 9달 동안 흔들리는 칠레의 모든 기억을 담아놓은 역사적인 다큐멘터리이다.
전세계 35개 국에서 이미 상영되어 여섯 개의 상을 받은 이 영화는 정작 자신의
나라에서는 25년만에 처음으로 상영되어 자랑스런 민중투쟁의 역사를 밝혀주고
있다.
제1부 ‘부르주아지 봉기’는 아옌데 정부가 사회주의 개혁을 실시하고 있는 가
운데 우파 기득권층이 노골적으로 정권을 공격하는 내용이다. 자본가들은 끊임
없이 파업과 시위 등을 일으키며 정권을 뒤흔들려고 한다. 그러나 민중들의 ‘아
옌데 지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고해진다. 칠레의 산티아고 거리는 보수
와 진보, 좌와 우의 치열한 공방전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제2부는 ‘쿠데타’라
는 제목으로 반개혁 세력의 6월 쿠데타와 11월 대통령궁 함락까지를 다룬다. 실
패로 돌아간 반개혁세력의 6월 쿠데타를 기점으로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 개혁
에 대한 기득권층의 공격은 더욱 치열해진다. 민중들은 국회를 폐쇄하고 더욱
강도높은 개혁을 단행할 것을 요구하지만 아옌데는 합법적인 정치공간 안에서
개혁을 모색한다. 결국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등 소위 입법파라고 알려진 군부를
내각에 등용하여 반개혁 세력들을 달래보려 한다. 그러나 아옌데 정권의 등에
비수를 꽂은 이들 피노체트를 포함한 군부세력은 1973년 9월 11일 대통령궁을
포화의 잿더미로 만든다. 아옌데는 칠레의 사회주의 정권과 함께 피노체트에 의
해 살해된다. 제3부는 ‘민중의 힘’이라는 제목으로서 아옌데 정권 말기 노동자
들을 중심으로 한 자생적 사회주의 운동에 관한 내용이다. 아옌데는 1년 반 동
안 은행, 구리, 철강, 석탄 등 국가 기간산업을 국유화시킨다. 민중들은 이러한
개혁을 발판으로 삼아 자생적 사회주의를 실행한다. 기득권층의 매점매석과 유
통부문 마비에 따른 생필품 부족에 맞선 ‘민중상점’, 중요한 거점이 될 사업장
에 대한 노동자의 직접 경영을 일컫는 ‘산업벨트’들이 속속 생겨난다. 특히 자
본가들의 파업과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한 부품 부족에 대해 노동자들은 ‘발명’
을 동원해 가며 사력을 다해 맞섰다. 그러나 정치불안과 더불어 기득권층과 미
국의 반혁명 공세가 혁명을 강하게 죄어옴에 따라 칠레 민중들의 자생적 사회주
의 실험은 마지막 참호의 외로운 싸움이 되어간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우리나라의 5.18 광주민중항쟁을 담은 비디오 장면들
이 교차되었다. 무고한 양민들을 마구잡이로 찌르고, 때리고, 살해하고 마침내
는 대통령궁을 탱크로 짓뭉개는 장면들이… 그리고 자발적인 광주 민중들의 민
주화 행렬과 자치행정, 5월 27일 반인륜적인 살인집단에 맞서 목숨을 던져 항거
하며 끝까지 도청을 사수한 우리 광주 민중들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이 영화는 참과 거짓, 평화와 살인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실된 역사를 있
는 그대로 옮겨놓은 감동적인 영화이다. 생동감 넘치는 투쟁의 현장, 노동자 민
중들의 삶의 터전, 피비린내 나는 공포와 살해현장 곳곳을 샅샅이 누비며 그야
말로 목숨을 걸고 영화를 찍었다는 경외감을 지울 수 없었다. 장면 곳곳에서 영
화를 찍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역사의 진실을 올곧게 전달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참된 마음과 사명감이 느껴졌다.
당시 영화 속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너무나 당당하고 활기에 가득차 있었다.
칠레의 노동자 민중들은 위기에 처한 사회주의 개혁을 지켜내기 위해 수십만 명
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열정적으로 아옌데 지지 시위를 벌였다. 또 노동자들이
자본가 및 군부의 반개혁 책동과 그것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아주
주체적이고 정확하게 바라보면서 매사에 명쾌한 태도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조금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과 역사의
주인다운 태도였다. 미국과 반개혁 세력의 탄압과 침략에 맞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열정과 사명감에 감동과 뜨거운 연대감이 느껴졌다.
73년 9월 11일 탱크를 앞세운 군부세력들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대통
령궁을 지키며 불의에 항거한 아옌데 대통령의 감동적인 마지막 연설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 칠레 국민 여러분, 방송이 앞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작
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이
역사적 시점에서 나는 인민에 대한 충성을 목숨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 나는 쓰라린 마음으로 연설하고 있는 것은 아
닙니다. 그러나 칠레의 군인으로서 맹세를 배반한 자들에게는 도덕적 형벌이 내
려질 것입니다. 그들은 힘이 있고 나를 부술 수도 있지만 사회의 전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국민들은 역사를 창조할 것입니다.
…나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누군가가 이 암울하고 쓰라린 순간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향
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칠레여, 영원하라.”
이 영화는 나에게 역사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자각
하게 해주고 내가 지금 한 발, 한발을 올바르게 내딛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되묻
게 한다.
끝으로 다른 나라의 동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