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원자력병원 노조 탄압을 중지하고
병원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철회하라!
임 선 희
전국보건의료노조 원자력병원 지부가 지난 12일 다른 국공립 병원들과 함께
파업에 들어간 지 24일로 13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함께 파업에 들어갔던 다른
병원들은 대부분 하루이틀만에 구조조정을 유보하고 임금을 동결 또는 소폭 인
상하는 수준에서 타결되었지만 유독 원자력병원만 타결은커녕 병원측의 무단적
인 탄압으로 인해 파업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원자력병원 지부는 이제까지 대
부분의 임단협에서 파업 직전이나 직후에 타결되었고, 장기파업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우스갯소리로 “노조가 창립된 이후 12년치
파업을 소급해서 한다”고 말한다고 한다.
이번 원자력병원 지부가 파업에 들어가게 된 과정이나 그 이후 상황을 보면
이번 파업이 철저히 병원측의 “노조 깨기” 작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조는 전국보건의료노조의 지침에 따라 구조조정에 맞서 12일 파업에 들어가
기로 하고 그 동안 파업 준비를 해 왔다. 그러나 파업 직전인 11일까지 병원측
과의 교섭에서 대부분 의견이 접근되고, 성과급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만 남
았기 때문에 노조에서는 파업에 들어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11일 밤 11시 파업전야제를 하고 있던 중 교섭석상에서 병원은 무려
117개에 달하는 개악안을 갑자기 들고 나왔다. 여기에는 122명의 인원감축, 7%
임금삭감, 연봉제 도입, 비정규직 확대, 각종 복지축소 등 병원측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개악안은 전부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노조에서는 개악안 그 자체에
대해서나, 합의된 것을 느닷없이 뒤집는 병원측의 행태 모두에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12일 예정대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병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다음날인 13일 전국보건의료노조 이상춘 위원장과 나순자 서울본부장, 이
강춘 원자력병원 지부장을 비롯한 상집 전원, 규찰대, 노래패장 등 총 23명을
업무방해로 고소.고발했다. 그리고 경찰은 이들 중 9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
고 16일에는 이상춘 위원장을 강제연행하여 구속시켰다.
교섭을 진전시키다가 파업 바로 전날 내용을 전면 뒤집은 것으로 보나, 또 파
업에 들어간 다음날 일상적인 상집활동을 하지 않는 감사를 포함해 차장급들까
지 무차별적으로 대거 고소.고발을 한 것 등을 볼 때 병원측의 행태는 노조를
깨기 위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미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 과장급 이상 의사들 사이에서는 “열흘 정도의 파업은 각오하고
있다. 그러면 노조에서 백기 들고 나올 것”이라는 병원측의 방침이 파다하게 돌
았다고 한다. 서울지하철의 직권면직 기한이 7일이어서 8일만에 파업을 풀었으
므로, 티면 노조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614명의 조합원들은 매일 400여 명의 농성대오를 유지하며 이런 장기
파업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노조 집행부도 놀랄 정도로 완강하게 투쟁하고 있
다.
한편 원자력병원의 의사들은 ‘서울대’라는 학연과 ‘의사’라는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쳐 ‘원자력병원 평의사협의회(이하 원평)’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병원의
경영진과 함께 ‘노조깨기’에 앞장서고 있다. 작년에 노조가 3시간 파업을 했을
당시에도 병원측에게 조합원에 대한 징계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등 진작
부터 노조에 적대적이었던 ‘원평’은, 이번 노조탄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
다. 이 ‘원평’의 의사들은 매일 저녁 늦게까지 남아 대책회의를 하면서 노조에
대한 강경탄압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파업이 예상외로 완강하게 진행되면서 부
담스러워 하는 백남선 원장을 다그치고 있다.
의사들이 이런 반노동자적인 태도로 나오는 것은 연봉제와 계약직 확대 등을
찬성하면서 더욱 특권적인 위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다른 종사자들은
업무성과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 반면에 의사들은 환자들을 직접 진료하고 진
료방법과 회수를 결정하므로 진료를 하거나 비싼 기계를 사용한 수치들이 그대
로 나오기 때문에 얼마든지 연봉을 올릴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잉진료와 불필요한 고가장비의 사용 등으로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부담이 전가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올 2월에 백남선 원장이 취임한 이후 환자수가 특별히 늘지 않았는데
도 원자력 병원의 진료수입이 14억 원이 늘었고, 병원측에서 스스로 “환자들을
쥐어짰다”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것이 이런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다.
또 ‘원평’은 계약제를 도입해서 다른 직종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든 말든 우리
는 학교 선후배로 서로서로 돌봐주기 때문에 문제없고, 오히려 간호사 등 다른
직원들이 의사 말 잘 듣게 되고 임금 적게 준만큼 우리가 더 받는다는 식의 생
각들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의사들의 분위기는 공공병원을 철저히 수익성 위주로
운영하려는 경영진의 입장과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
원자력병원은 과학기술부 산하 원자력연구소 부설기관으로 암전문병원이다.
그래서 이곳은 논팔고 집팔아서 비싼 입원비를 대가며 마지막으로 전문병원에서
치료 한번 받아보자고 상경한 환자들이 많다. 그런데 명색이 국립병원인 원자력
병원이 사경을 헤매며 마지막으로 의지해 오는 암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환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쥐어짜서 돈을 더 벌어보자는 심보인 것이다. 그래서
노조는 더더욱이나 연봉제, 인원감축 등 병원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반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암환자들의 시급한 치료를 나몰라라 할
수 없어서 기왕에 진료 받던 환자들의 방사선 치료, 수술 등 최소한의 치료활동
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병원측에는 민형사상 문제해결, 징계 철회 등을 선결
조건하되서 인원감축없이 임단협의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성과급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양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측은 122명 인원감축, 연봉제 도입, 계약직 등 비정규직 확대, 임금삭감 등
117개의 개악안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무노동무임금, 고소고발, 대량징계에 더하
여 공권력 투입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시로 열리는 교섭석상에서 “과
기부 지침이다” “아직 모르겠다”는 등 노조간부들을 우롱하는 태도로 일관하며
명분쌓기용 교섭만 계속하고 있다.
사태의 전후 과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제도언론에서는 사태의 원인과 책임
은 덮어둔 채 양비론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환자들이 노사간에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정상진료를 하라며 아우성을 치는 모습을 부각시키고, 백남선 병
원장이 “환자들을 볼모로 한 파업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노조 배후에 제3의
세력(민주노총 등)이 있어 해결이 어렵다”고 억지 주장하는 것을 마치 객관적인
보도인양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지난 4월 말 서울지하철 노조의 파업투쟁 당시 언론의 왜곡보도, 흑색
선전을 지긋지긋하게 겪었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 파업”이라며 불편함에 성
난 시민들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무조건 파업은 안 된다는 식의 여론몰이 말이
다. 그리고 서울지하철 노조가 투쟁을 접은 후에야 ‘우리가 그 때 좀 편향적이
었다’는 사후약방문 식의 기만적인 태도를 보았다. 그리고 원자력병원 상황에서
그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병원 노조의 장기파업과 노조에 대한 탄압은 공공병원마저 돈벌이수단
으로 삼으려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에 편승해서 더욱 살찌려고
하는 특권 이익집단화된 의사들, 그리고 이들을 등에 업은 백남선 병원장이 빚
은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도언론은 여기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원
자력병원 노조의 파업 투쟁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를, 또 얼마나 반인간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그리고 이에 맞
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대의와 정당성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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