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에 날개 달아준 신가이드라인
마키무라 쑤요시(牧村剛) 6/9
지난 5월 24일 미일안보조약 신가이드라인 관련 법안 3건이 일본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이에 분노와 반성과 투쟁으로의 새로운 의지를 다짐하면서 한국에서 싸우는 여러분에게 보고 드린다.-필자 주-
법률적인 예비지식
원래 미일안보에는 78년 책정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소련의 몰락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에 알맞는 미일안보로 바꾸어 만들자는 의도 아래 (‘미일안보 재정의’,96년) 이미 미일간 교섭이 진행돼 왔다. 그리고 구(舊)가이드라인을 개정한다는 형식으로 97년에 신가이드라인 (정식명칭:미일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정부합의, 이후 합의에 기초하여 법제화가 진행돼 온 것이다.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3 부분으로 이뤄진다. 즉 개악 자위대법, 개악 미일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
(ACSA,통칭 아크사), 그리고 주변사태법이다. 첫째는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것, 둘째는 전시(戰時) 미일간 협력을 위한 구체적 협정이며, 핵심 부분은 주변사태법의 제정이었다.
주변사태법에서는 “일본 주변지역에 있어서의 사태이자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경우(주변사태)”를 상정(想定)하여 소위 말하는 ‘후방지원’에다 자위대를 동원하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한다. 말하자면 일본이 공격을 받지 않아도 ‘국익’을 위해 세계에 군대를 자유롭게 파견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법률이다. 그런 전제 아래 갖가지 후방지원이 정해지고 있다. 후방지원이란 것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국익’을 위해 해외출병을 하는 것을 인정한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이다. 주변사태법의 입법화로 일본은 미군과 함께 군사적인 세계 진출을 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구(舊)해군 시절부터 일본의 장기인 소해(掃海) 작업을 어디든지 법적 문제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 시절에도 구일본해군 출신자가 한반도 연안에서 소해작업을 하다가 사망자도 생겼단다. 걸프전에서도 자위대는 이란 영해까지 진입해서 소해를 행했다.) 동시에 관민을 불문하고 전쟁협력을 정했음로써 국내를 전쟁동원태세에 놓게 했다.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번 가이드라인에 기초하는 법개악/입법화에 대해서 여러 시각으로부터 반대가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전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이것이 일본제국주의의 세계진출을 위한 군사적 뒷받침이라는 지점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85년 프라자합의 이후 급속히 초국자본화 해왔다. 그리고 90년대가 들어서서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밀고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세계로 나아가는 초국적자본으로서의 일본 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출병을 하겠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하다. 일본은 벌써부터 군사 예산액으로 세계 제2위 군사대국인데 일본에는 교전권(交戰權)을 금지한 평화헌법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자위대를 일본군으로 부를 수 없고 또 해외출병의 ‘자유’도 없었다. 이런 상황 아래 어떻게 신자유주의 정책 (사실은 노골적인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군사정책을 마련하는가가 문제가 된 것이며 그 대답이 현 단계에서는 미군과의 협력을 빌미로 해외로 나아가기 위한 가이드라인이요 주변사태법이었다.
주변사태법은 이를테면 유사(有事)기본법이다. 국기/국가의 법제화 책동 등 이데올로기 공세도 거세어져 오고 있다. 적들은 최종적으로는 헌법 개악을 노릴 것이다. 가이드라인 관련법은 유사법제라 부를 수 있는 법체계를 만들기 위한 돌파구였던 것이다.
적들의 움직임
적들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90년대가 들어서서 미국과 안보조약의 새로운 위상을 (사실은 새로운 핑계를) 모색해 왔으나 97년 9월에 신가이드라인을 책정했다 (이것은 국회 승인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1년 반이 걸려 법제화되었다.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임은 이 1년간의 일본 상황을 보면 분명해진다. 작년 9월에 노동기준법이 전후 이래 결정적인 개악이 되었고 노동시간이란 개념이 폐기돼 버렸다. 그리고 올해 들어서서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이 통과되었는가 하면 조직적 범죄대책법 (도청법), 노동자파견법개악 등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서 봐야 된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현재 한미일, 한일간의 군사교류가 활발화되어 있고 김대중정권 이후 군사교류의 상설창구가 설치되었다.
또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북한이 최대한 이용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작년 8월 31일 북한은 인공 위성을 쏘아 올렸는 바 있는데 이것은 주권국가로서의 권리 표명이자 군사적 수준의 과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언론이 이것을 ‘미사일 발사’라고 선전하면서 북한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분위기 속에서 제일 교포들이 폭행 당했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있었다. 더불어 일본은 올해 3월에 ‘불심선’ 소란을 빚어 사실상의 전쟁예행연습을 했다. 이것들은 모두 가이드라인 관련
법안의 예행연습이자 이렇게 손쉽게 법안을 통가시키기 위한 도구가 된 것이다.
반대운동의 경과와 앞으로 해야 하는 일
반대운동은 가이드라인에 관한 미일 교섭시부터 계속 진행되어 왔다. 특히 오키나와 반전운동의 고양 때문에 정부의 계획 제출이 늦었다고 볼 수 있다. 95년 이후 오키나와 반전운동이 고양되고 일본의 전체 반전운동도 다시 고양을 보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투쟁을 전국적으로 강력하게 확산시킬 수는 없었고 가이드라인의 신자유주의적 배경을 간파(看破)하여 신자유주의 반대를 축으로 한 투쟁으로 상승시킬 수도 없었다.
다만 희망의 싹도 있다. 지난 노동법 개악 때 내셔날센터 틀을 넘어 노동조합들이 공동 반대행동에 함께 나섰다. 이것을 이어받아 이번 가이드라인 반대 투쟁에서는 특히 전쟁협력을 강요당할 운수부문 20개 노조들과 종교계가 주최한 동경에서의 집회 (5월21일)에는 5만 명이 모여들어 싸웠다. 입법화가 된 이제는 불복종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학원 등 현장 역량강화가 더욱더 중요하게 된다. 이것은 입법화를 가능하게 해버린 주체적인 반성이기도 한다.
우리가 자랑하는 오키나와 반전운동과 반가이드라인 투쟁, 그리고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결합시키면서 세계의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과 함께 운동을 전개한다면 기필코 일본 제국주의의 겨냥을 분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먼저 현장에 발판을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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