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를 해체하라

시류에 대항하여(Against the Current) 99/5-6월호

코소보 대학살과 미국/나토의 공습은 좌파의 원칙과 정치적, 도덕적 용기에 대해 가장 큰 도전을 제기하였다. 우리 세대에서 인종 학살을 중지하기 위한 즉각적인 행동의 필요성과 제국주의 개입에 반대하고 저지할 필요성이라는 상반되는 요구 사이에 생긴 명백하고 총체적인 충돌이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은 전례없던 일이다.

코소보에서 저질러진 인류에 대한 범죄는 이전에 보스니아전쟁 동안 밀로세비치 정권과 그와 제휴한 갱단에 패배를 안겨주는 것으로 인해 몇년전에 미리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1991년부터 그 동안 요구되었던 것은 나토 폭격이나 침략이 아니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이 소규모 다민족 자치주를 파괴하는 목적의 인종 청소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무장할 수 있게 혀용하는 것이었다.

서방은 “전쟁 확대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무기 수입을 금지했는데, 무장되지 않은 보스니아 시민들은 밀로세비치의 ‘유고국민군’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준군사집단의 파괴 행위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보스니아가 크로아티아와의 군사 동맹에 가입하는 것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내내 서방은 밀로세비치를 발칸 ‘안정’의 열쇠로 취급하면서 그의 학살행위와 내부 압제를 조장했다.

진행 중인 재앙

폭격이 시작되자, 코소보에서 빠져나온 난민의 행렬, 대규모 인구감소와 촌락 소개(疏槪), 그리고 대규모 즉결 처형을 위한 남성 난민들의 분리 등에 관해 믿을 만한 보고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을 파멸시키기 위한 세르비아 정부의 움직임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이러한 작업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유고 폭격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밀로세비치 정권과 냉소적인 협상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온 서방의 정책에 의해 가능했다. 그러나 조장되었다는 주장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990년대 초 정점을 이루었던 유고의 민주적 반대 세력에 의한 반전 투쟁은 세르비아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단위적이며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미국 최대 시위보다 더 큰 규모의 반전 동원을 이루었다.

그리고 밀로세비치에 저항한 시민들의 용감한 유산(遺産)이 폭격으로 최초의 피해를 당했다.

그러나 아무도 패배하고 몰락한 국가에서 일어난 지금의 반대가 코소보에서의 학살과 인구 감소에 대한 효과있는 도전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한 때 유망했던 밀로세비치에 대한 민주적 도전을 탈선시킨 주요 국제 요인은 나토의 폭격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밀로세비치를 정당화하고 갈수록 더 잔인해지고 1998∼99년 코소보 재앙으로 결말이 난, 코소보에서의 모험, 크로아티아와의 전쟁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대한 인종 청소를 끊임없는 지지하던 서방측 정책이었다.

10년 동안 서방측이 한 것은 오직 이 정권이 영구적이고 제거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그 군대가 승리하기 시작한 후에 있은) 보스니아 분할을 굳힌 데이턴 협정과 특히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자결권을 배제한 랑부예에서의 마구잡이 협정의 의도가 가져온 현실적인 결과이다.

나토 폭격이 유고 민주 세력과 코소보에서의 학살과 인구 감소에 미친 영향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결국 어떠한 이유에서든 코소보를 떠나는 난민들은 공습을 환영하고 폭격이 강화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사회주의자로서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한 혁명적인 반대자로서 우리는 일반인들의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학살을 막을 수는 없는가?)을 직시해야 한다.

코소보 전쟁의 정치학

우리의 대답은 미제국주의가 스스로 저지르고 있거나 뒤에서 지원하고 있는 수많은 학살과 반인류적인 범죄(과테말라,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인도차이나, 이라크인들의 기아 상태)를 언급하면서 시작되어야 한다.

미국이 조직한 이라크인에 대한 가학적 고문이 사담 후세인의 잔인한 점령으로부터 쿠웨이트를 해방시킨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지금의 전쟁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보여준다. “인도적인 개입”이라는 제국주의자들의 탈출구는 처음 개입을 지지했던 순진한 민족들로서는 예견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가장 끔찍한 결과의 서막이다.

미국과 나토가 구세주가 되고 안정의 보증인이 될 수 있도록 한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의 견해는 공포의 심화가 가장 있을법한 결과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전쟁은 두 가지 악의적인 과거 잔재의 대결이다. 과거 냉전 파트너(반공 냉전에서 워싱턴의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해 50년 전 미국이 조직한 연맹인 나토와 자신의 기회주의적 야심을 진행시키기 위해 스탈린주의에서 민족주의로 변모하고 세르비아에서 가장 해악적인 부분들과 제휴한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정부)가 이제 적이 되었다.

나토는 코소보인들을 구출하기 위한 인도적인 이유에서 유고와 전쟁 중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에 관련된 전쟁도 아니다. 나토는 자신과 그 정치적 지도자들을 구하기 위해 전쟁 중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협과 허세는 실패했으며 이제 그것이 “우리는 나토를 구하기 위해 코소보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과 무관하게 그들은 최후까지 계속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전쟁 확대

우리는 유고에서의 나토 전쟁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나토는 본질상 제국주의 지배를 위한 기계에 지나지 않고 나토 그 자체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나토는 1949년 미국의 지위가 경제 헤게모니에서 절대적으로 확고하고 유럽의 정치적 정책 결정자였으며 군사력과 핵무기로 인해 워싱턴이 유럽 자본주의 재건의 보증자이자 구유럽 식민 제국 변혁의 감독자였을 때 창설되었다.

반세기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과거 적이었던 소련은 사라졌으며 미국 자본주의는 심각한 경제적 라이벌과 부딪혔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대규모 군사적 개입을 조직하는 고유한 능력을 통해 이번 전쟁에서 유고에게 다시 미국의 전지전능함을 확인시키고자 한다.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욕구는 소비에트연

방 이후 거의 붕괴된 러시아가 더 이상 군사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지금 시기, 나토의 새로운 회원국인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체코 공화국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 저변에 깔려 있다.

외견상 미국의 지도력은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 대신 발칸에서의 고배의 경험은 민간인들이 무방비상태에 빠지고 지쳐가는 동안 머뭇거리고 두서없이 나불대면서 체계적으로 계획된 인종 청소를 예견하고 막아내지 못한 미국의 지도력이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붕괴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 나토의 팽창은 러시아의 위엄을 손상시키고 있으며 그 곳의 우익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번 전쟁은 일단 시작된 이상 거의 필연적으로 전면적인 점령을 야기하고 발칸 지역 지도를 새로 그리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코소보를 포함한 관련 민족들의 자결권은 정복이라는 목적에 무참히 종속될 것이다.

우리는 코소보인 스스로 나토 개입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며 그 개입이 확대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의 근본적인 투쟁은, 가능한 모든 곳에서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피해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번 전쟁이 가져올 결과들을 직시하지 않는 전쟁 지지자들을 향하고 있다.

베오그라드 정부에 대해 사죄를 하는 이들과 달리 우리는 이번 전쟁이 미제국주의에 의해 유고를 붕괴시킬 음모의 일환으로 미리 계획되었다는 의견에 동조할 수 없다. 어쨌든 미국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유고에서 분리되는 것을 자극하는 데에 독일보다는 덜 열성적이었으며 확실히 워싱턴은 불안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대세르비아를 향한 밀로세비치의 야망에 거의 반대하지 않았다.

이번 전쟁에 대한 예상과는 달리 나토와 미국은 그들의 외교적 계획과 군사적 위협에 실패했으며, 그들은 필요한 군사적 혹은 정치적 준비 없이 전쟁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국무성 발칸 전문가는 명백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세르비아 정부가 코소보 알바니아계 인구 90%에 반대하여 계속적으로 코소보를 묶어둘 것을 결심했다면 200만 코소보인들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죽이거나 추방해야만 했다.

자신의 임무가 밀로세비치와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그런 ‘전문가’들은 압제에서 코소보 인구 감소로의 미리 계획된 정책의 단계적 확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랑부예에서 밀로세비치와의 협정을 확실히 하고 공습의 위협을 통해 그를 저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토는 급작스럽게 두 가지 중 어떤 것도 강력한 재앙을 초래할 선택 중 하나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소보인들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이 선택을 클린턴과 유럽 사민당 파트너인 블레어, 죠스팽 그리고 슈뢰더는 각국 정부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나토의 단결과 존립 자체를 의심스럽게 할 만한 믿기 힘든 패배를 야기시킨다는 이유로 숙고할 것을 거부했다.

나토는 공중전을 시작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일단 첫 번째 공격으로 세르비아의 항복을 받아낼 수 없게 되자 크루즈 미사일 기술에 자아도취된 군사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패배를 인정하든가 아니면 냉혹한 전쟁 확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날마다 코소보인들에게 가해지는 공포와 손을 쓸 수도 없는 피난민들의 긴급 상황이 알려 짐에 따라 전쟁은 다른 누구보다 전쟁을 계획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논리를 강요했다. 명백하게도 코소보인들을 구하는 것보다 더 중대한 명령인 나토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제 전쟁에서 싸워서 이기는 것이 필수적이다.

1980년대 레이건의 측근이었던 로렌스 이글버거의 말을 따르면 “우리는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라인 세르비아가 나토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

나토의 약속에 따라 난민들이 귀환하기 위해서는 코소보에서 유고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무력화되고 다시는 회복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한 목표는 세르비아가 군사력과 그 힘을 재건하는 능력을 파괴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번 폭격은 세르비아의 현존 군사기반을 궤멸시키는 것 뿐 아니라 경제력을 이차대전 이전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려야 해야 한다.

더구나 공군력만으로는 세르비아군을 몰아낼 수 없으며 코소보의 대부분(일부는 코소보 내 세르비아인들의 도피처로 남을 것이다)에 나토 보호령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지상군이 코소보에 파견되어야 한다. 클린턴이 그 여인과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고 엄숙히 맹세했던 것과 같은 신뢰를 주면서 매일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 세르비아에 강제적으로 새로운 국경을 강요할 것이다. “세르비아 공화국”에 동참하든 않든간에, 몬테네그로가 유고에서 탈퇴하든 않든 간에, 한편으론 알바이나인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그리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강제로 마케도니아의 국경을 조정하든 간에 이 모든 결정은 점령국에 의해 취해질 것이다. (외교적 영역에서 어떠한 역할이 러시아에게 중재자로 주어질 지라도) 이러한 것들이 밀로세비치와 그의 갱 파트너에 의해 준비될 것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세르비아 본국에 대한 군사 점령을 논외로 하더라도 아마도 유고 정부는 어쨌든 제거되어야 하며 그 외에도 국민들은 현재 이라크 국민들이 사담 후세인에 의해 통치되었다는 용서될 수 없는 죄로 인해 받고 있는 것과 동일한 공포에 종속될 것이다.

이러한 목표들은 미국과 다른 나토 강대국 국민들이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은 규모의 사상자와 비용을 수반하면서 전쟁을 장기화하고 전후 개입 정도를 강화시킬 것이다. 클린턴과 다른 유럽의 파트너들이 민주적 원칙이 요구하는 것-그들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성명을 내고 의회에 전쟁 선포에 대해 논의해 줄 것-을 해낼 만한 정치적 용기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학살을 중단하고자 하는 존경스럽고 진지한 열망과는 무관하게 나토의 행동을 지지하는 좌파 진영의 모든 이들은 이러한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 그 결과는 그 힘이 미치는 모든 곳, 즉 실제적으로 모든 곳에 자의적으로 (주로 미국의 의지에 의해) 개입하는 더욱 악의적인 탈냉전시대의 나토뿐이다.

코소보 yes, 나토 no

이러한 현실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나토공습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전쟁을 지지하는 것은 이제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만을 의미한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인도적 구출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외견상 자선적인 군사 개입과 오직 군사-정치적 세력 강화 또는 이윤을 위해 행해지는 군사개입 사이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불가피하고도 냉혹하게도 전자는 후자를 위한 핑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코소보전쟁의 경우, 미국과 나토는 전쟁을 일으키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유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고자 원했다. 하지만 일단 전쟁이 시작되고 나자, 이는 불가피하게 나토의 발칸지역 점령에 의한 새로운 영토 재분할로 확대되었다. 비록 이번 전쟁 자체는 그것이 밀로세비치와 공존하는 다른 “정치적 안정”으로 끝나든, 아니면 참략자들에게 막대한 사상자와 군사적 붕괴를 가져오는 것이 되든 간에 나토 스스로에게도 파멸의 길로 판명될 것이다.

나토의 붕괴는 이 무시무시한 인간 학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이득이다. 나토의 패배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의 진상을 폭로하여 나토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나토 해체 이외에 나토측에 제안할 수 있는 다른 건설적인 대안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든 간에, 코소보와 세르비아인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만약 나토가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밀로세비치와 협상을 한다면 코소보인들은, 집도 절도 없는 상태(발칸의 팔레스타인인과 쿠르드족)로 남게 될 것이다. 만약 나토가 궁극적으로 세르비아를 제압하고 코소보에 군사적인 보호령을 설치한다면 난민들은 귀환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생존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점령상태에 좌우되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진행된 밀로세비치의 대세르비아 운동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국가적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크로아티아에 거주하는 수십만 세르비아인들의 안녕을 핑계로 밀로세비치는 1991년 크로아티아에 대한 침략을 자행했으며 크로아티아가 영토를 수복하자 그 지역 세르비아인들은 크라지나 지역에 있는 고향에서 추방당할 수 밖에 없었다. ‘세르비아 공화국’에 있는 세르비아인들은 고립되었으며 코소보 지역 세르비아인에게는 나토 점령구역에서의 미래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르비아 본국의 세르비아인들은 경제적 파멸과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의 상실로 신음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자결권을 지지한다. 민주적 가치를 지닌 누구도 정치적 권리 뿐만 아니라 육체적, 문화적 생존을 위한 싸움인 그들 투쟁의 정당성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인구 전멸 혹은 대규모 분산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독립 코소보만이 유일한 현실적 해결책이다.

그러나 코소보의 정당한 투쟁은 반동적으로 확대되어 버린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하나의 치장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미국은 절대로 코소보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코소보인들을 단지 협상의 볼모로 취급할 뿐이다. 심지어 그들은 1998년 유고군이 최초의 공격을 개시했을 때 코소보해방군의 패배를 반기기조차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나토가 세르비아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학살함으로서 코소보를 해방시키려는 행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전선 내부의 또다른 전쟁’이 존재함을 믿는다. 이 전선에서 사회주의자들은 민주적 열정을 가지고 전선에 가담하여 투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코소보 알바이나인들과 유고군의 전투에 어떤 식으로도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그러나 원칙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생존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코소보인들의 권리를 지지한다.

코소보해방군 그 자체는 좌익 세력이 아니다.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입장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아마 그런 이유에서) 밀로세비치군에 대항한 군사적 성공의 전망이 심하게 과대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학살의 위협에 대항하여 코소보 독립을 위한 정당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코소보 난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지역으로의 이주를 보장 받아야한다. 만일 미국으로 피난할 것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면, 이들은 영구체류 또는 시민권을 받아야 하며 그들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무조건적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와 동일하게 우리는 공중에서는 나토에 의해 폭격을 받고, 지상에서는 정권에 의해 사냥당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세르비아 군대 혹은 코소보에서 의무적으로 인종 청소를 위한 준군사집단에 징집될 위험에 처해 있는 세르비아내 민주적 활동가들에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제국주의자와 밀로세비치 양측은 세르비아 민중들의 고통과 민주 세력 붕괴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시키고 조장할 것이다. 인터넷과 국제적인 진보 매체가 제공하는 기고 덕분에 세르비아내 반대의견이 알려질 기회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검열당하지 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모든 가능한 물자와 정치적 연대를, 그들이 밀로세비치의 꼬리도 아니고 제국주의 점령자들의 볼모도 아닌 민주적 저항의 재건에 기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고의 파멸을 자행하고 있는 양측의 군사 충돌에 대해 분명히 직시하자. 밀로세비치의 인종학살적인 탈스탈린주의와 나토 제국주의 중 우리가 지지할 곳은 아무데도 없다. 코소보에 자유를! 나토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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