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생명공학과 하이테크농업은 세계를 먹여살릴 수 없는가?
앤드루 킴브렐, 생태주의자(The Ecologists), 98 10/11월호
몬산토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머리말은 “누가 저녁식사 하러 오는지 맞춰보세요. 2030년까지 100억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회사는 “더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지구의 자연자원에 대해 점점 늘어나는 압력”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 농업관련 거대기업은 다음에는 저기술농업은 “전세계의 팽창하는 인구를 먹여살릴만한 충분한 작물 증가분 및 개선을 낳지 못할 것”이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몬산토에 의하면 “오늘날의 고수확농업은 멋진 성공이다…” 게다가 이 회사는 “생물기술의 혁신은 부가적인 토지 없이 가치있는 열대우림 및 동물서식처를 보호하면서도 작물수확을 세곱으로 만들 것이라고 단언한다”. 거기다가, 생물기술 혁명은 “농업에서 화학물질 사용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결론은 분명하며, 몬산토의 광고캠페인 “생물기술은 전세계를 먹여살릴 수 있다…수확이 시작될 것이다”에서 자축될 것이다.
현재 몬산토의 상업광고는 배고픔, 식량생산, 농업에 관한 위험한 수많은 현대적 농업의 신화들에 푹 빠져 있다. 불행히도 이러한 신화들은 워낙에 자주 반복이 되면서,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자신들이 세계적인 배고픔을 확산시키는 주범인 몬산토 및 여타 농업 및 생명기술 관련 초국적기업들에게 편리한 위장막을 제공해 준다. 지속가능한 농업의 옹호자들이 계속해야할 임무로서도, 이러한 신화들을 벗겨내는 것이 필요하다.
전세계적인 배고픔은 주로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는 식량의 부족으로부터 기인한다.
배고픔에 대한 신화는 없다. 7억8천6백만명이 매일 굶고 있다고 추산된다. 그리고 배고픔은 늘어나고 있다. 70년에서 90년까지 중국만 제외하고는, 전세계 배고픈 사람들의 숫자는 11%이상 늘어났다.
신화는 배고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주된 원인에 관한 것이다. 몬산토는 우리로하여금 세계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식량생산이 뒤따르지 못한다고 믿게 만들 것이다. 그 결과는 수억명의 사람들이 굶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와 통계들은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사실 전세계 배고픔이 70년대 이래로 늘어온 것만큼 1인당 식량생산도 늘어 왔다. 남미에서 배고픈 사람의 숫자는 19% 늘어났다. 그러나 1인당 식량공급은 거의 8% 늘어났다. 남부 아시아에서는 배고픔과 1인당 식량생산은 모두 9% 늘어났다.
이러한 통계치와 수많은 다른 증거들은 70년대 이래로 인구증가가 배고픔 증가의 주된 원인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지적해주고 있다. 각각의 사람들이 이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총 식량은 실제로 상당히 늘어났다. 그러면 전세계적 배고픔의 주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기본적인 원인은 식량 의존이다. 수 세기 동안 산업적 체계는 사실상 지구 전 지역에서 농민들을 토지로부터 배제시켜 왔다. 그 토지는 수출작물 재배에 이용되었다. 이러한 수출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은 어느 사회에서나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본원적 자본축적”이다. 이러한 엔클로저의 결과는 (그리고 지금까지도) 토지, 공동체, 전통,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는 식량의 독립성을 상실한, 헤아릴 수 없는 농민들이었다. 토지로부터 쫓겨나서 그들은 새로이 산업화된 도시로 몰려가서 금새, 도시산업에서 저임금 일자리를 위해 다투는 도시빈민계급이 되었다. 토지에 남아있는 자들은 새로이 대규모로 산업화된 농장에서 저임금 노동으로 대개 생계를 유지하려 한다. 현재 제3세계 5억명 이상의 농민들은 토지가 없거나, 자신의 식량을 위한 충분한 토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
엔클로저 이후 도시 및 농촌 빈민 모두 완전히 식량의존상태에 놓여 있다. 식량에 대한 그들의 접근
은 오로지 구매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구매력을 잃게 되면 그들은 굶어죽게 된다. 농업 산출량의 증가는 배고픔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토지에 대한 접근과 구매력이라는, 배고픔의 근저에 놓여 있는 핵심 이슈들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식량을 기를 수 있는 토지나 이를 살 수 있는 돈을 갖고 있지 않으면, 기술이 아무리 극적으로 식량생산을 끌어올린다 할지라도 당신은 굶게 된다.”
보다 더 규모가 크고 기술집약적인 농업이 식량생산에 보다 효율적이다.
크고 기술지향적인 농장이 낫다는 신화는 식량산출이 배고픔 해결책이라는 신화가 가져오는 당연한 추론이다. 세계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산출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대규모 농장과 보다 더 진보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대규모의 기술집약적인 농장으로 향하는 이러한 추동이 갖는 가장 즉각적인 효과는, 비극적인 엔클로저 추세를 가속시킨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2차대전 이래로 농장 평균크기는 두 배 이상이 되었다. 동시에 농장의 수는 2/3가 줄어들었고 농민 숫자는 그 숫자의 두 배만큼 줄어들었다. 그 결과가 가져오는 패턴은 친숙한 것이다. 농촌 공동체의 파괴, 그리고 빈곤화되고 뿌리뽑힌 수많은 농민 및 여타 사람들의 도시로의 탈출이다. 그 결과는, 실업률, 범죄, 식량의존성, 배고픔의 증대이다. 대규모 농장과 기술이 제3세계에서 계속 번성하고 있지만, 더욱 비참한 결과가 예견되고 있다.
농촌 공동체와 식량 자급을 말살하는 것은 농장의 규모 뿐만이 아니라, 기술도 그러하다. 신기술의 진보는 농촌에서 노동자들을 대체하면서, 대규모 농장 외의 모두에게 경제적인 재난이 되었다. 생물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말하길, “농민의 대다수는 기술변화로부터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다. ‘농민의 수혜는 보통 대규모 운영자들인 초기 채택자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다.’ 이들은 재빨리 자본을 확장하여 신기술에 투자할 수 있다. 이들은 곡물의 단위가격이 하락해도 이익을 챙긴다. 동시에 가격하락은 늦은 채택자들의 노력을 방해하여 변화하는 시장 속에 머무르게 한다.”
몬산토 및 여타 기업들은 기술과 규모가 농촌 공동체들로부터 거두러 들이고 있는 비용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이 비용으로 식량생산에서의 효율 증대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작가이자 활동가인 마티 스트레인지가 상술하듯이, 대규모 농장들은 보다 더 효과적이지 않다. 그의 연구 결과는 기존의 평가에 의해서도 중규모 농장들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신빙성있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더 큰 것이 더 좋다는 상당히 순화된 ‘규모의 경제’적 시각을 뒷받침하는 계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기존의 효율성 분석은 대규모 산업 농법이 야기하는 사회적, 환경적 비용을 깡그리 무시한다. 수질 및 대기오염, 표토의 손실, 생물다양성 상실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 수많은 연구들은, 대규모 농장들이 소규모 농장들에 비하여 훨씬 큰 환경적 영향을 미쳐 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규모 농장들은 40%에 달하는 침식의 증가를 야기하며, 그 결과는 현재 인공비료의 늘어나는 사용량에 의해 은폐되고 있지만, 점차 산출량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효율성 분석은 또한 살충제, 호르몬 및 기타 독성물질들로 오염된 식품의 소비가 야기하는 건강상의 비용을 무시한다.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 수백만의 농민과 수천의 농촌 공동체들의 해체 또한 효율성 계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비용들은 농업생산에 외부적인 것으로 간주되면서 “외부효과”로 이름붙여진다. 이러한 비용은 배제된 채, 대중들은 대규모 산업화 농장들에서 생산된 식품의 “진짜” 가격을 절대로 알지 못한다.
게다가, 효율성 분석은 소규모 농장들의 독특한 특징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산출량만 측정하기 떄문에 ‘규모의 경제’적인 시각은 소규모 농장들이 투입량을 줄이는데 대해 갖는 중요한 이점들을 무시한다. 예를 들어 다양화는 서로 다른 계절마다 재배되는 작물의 다양성에서 나타나듯이 투입물을 보다 더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효율성을 증대시킨다. 스트레인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농업경제학에서는 다양화에 대한 편견이 상존한다. 이는 대규모로 어떤 일을 잘 하는 것이 소규모로 여
러가지 일들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최적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극대에 대한 병적인 집착 때문이다.”
1989년 미국 국가연구위원회(USNRC)는 대규모 산업형 농장 대 대안적 농장의 진정한 효율성을 평가하도록 요청받았다. 그 결론은 “큰 것이 좋다”는 신화에 정반대였다.
“잘 관리된 대안적 농업체계는 항상 기본의 농장들보다 단위생산당 화학 살충제, 비료, 항생제를 덜 사용한다. 이러한 투입물의 사용을 줄이면, 면적당 작물산출과 축산관리체계의 생산성이 줄어들지 않고서도 (몇몇 경우에는 오히려 증가하며), 생산비용이 줄어들며, 농업이 나쁜 환경 및 건강상의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줄여준다.
높은 산출을 가져오는 산업적 작물생산에 대한 “로우테크”적 대안은 동일한 생산량을 수확하기 위해 더 많은 토지가 필요하고, 따라서 습지, 삼림 및 기타 고유의 생태계를 위협한다.
몬산토 및 여타 농업관련 기업집적체들은 미국과 유럽의 소비자들에 대하여 새로운 강력한 경쟁자인 유기농산물이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더이상 “틈새”시장이 아니라, 미국에서 유기농산물 시장은 1990년대 중반에 400억불까지 치솟았으며, 매년 20%씩 증가하고 있다. 2백만이 넘는 미국 가정들은 이제 유기농산물을 구입하며, 천 4백만명 이상이 “자연”식품을 추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몬산토에게 더 큰 걱정거리는 인도 및 제3세계 국가들에서 기업전략 및 메세지에 대한 저항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분노로 인해 기업들이 수많은 사업들을 포기하게 되었다. 더 큰 것이 더 좋다는 신화는 이제 그 힘을 잃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몬산토의 대응은 “로우테크” 농업대안에 대하여 미디어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몬산토는 환경적으로 의식을 갖고 있는 듯한 가장하에 그렇게 하고 있다. 환경이슈에 대한 기업의 전력(前歷)을 보건대 이러한 기업의 태도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되면서도, 몬산토는 이를 계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신화로 거듭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그들의 주된 주장은, “세계를 먹여살리기 위해” 로우테크 농업은 (이른바 산출이 적기 떄문에) 작물을 재배할 막대한 양의 토지를 필요로 하며, 이때문에 중요한 야생동물 서식지 및 다른 중요한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많은 연구들은 산업적인 하이테크 농업에 대한 대안적 농업은 잘 계산된다면 적어도 산업적인 화학물질 기반적인 경적에 비하여 산출량에 있어 그만큼 효율적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몬산토의 주장은 제3세계에 속여서 판 기술·화학집약적 “녹색혁명”과 연관되어 있는 산출의 감소를 설명하지 못한다. 필리핀, 인도, 네팔에 대한 연구들은 1980년대에 절정에 달한 후에 산출량의 심각한 손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토양의 질저하와 해충의 창궐, 전형적인 대규모 단일경작 농법이 이러한 감소의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
헨리 왈라스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산업적 농업이 농토의 생산성을 파괴하는 것처럼, 이는 또한 다른 식량원들을 손상시킨다고 언급한다. 화학 오염과 부영양화(주로 경작지로부터 흘러나오는 질소와 인 때문에)는 전세계 식량공급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해양 및 수생 생태계의 생산성을 위협한다. 전세계 인구의 60%는 물고기 및 해산물로부터 연간 단백질의 40% 이상을 섭취한다. 화학 오염은 또한 야생동물과, 몬산토가 보호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생물다양성 그 자체를 절멸시킨다.
생명기술은 화학물질을 적게 쓰면서 공해를 줄이고 자원을 적게 쓰면서도 전세계를 먹여살릴 것이다.
몬산토의 최근 광고 캠페인은 거의 모두가, 생명기술이 미래세대를 먹여살리고, 화학농법을 대체할 수 있다는 신화를 전달하려 하고 있다. 몬산토가 세계 제초제 시장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라운드업과 기타 농업의 독약들을 팔아서 재정적인 성공을 이룩하고 있지만, 이제는 화학산업의 모델을 거부하려 하고 있다. “생명기술공장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기존 산업형 공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세계가 환경에 대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식량을 지배한다”고 한 광고 표제는 언급하고 있다. 이 광고카피는, “몬산토에서는 식물 생명기술이 지구에 대한 산업적, 화학적 영향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해충에 저항성을 가짐으로써 살충제를 뿌릴 필요를 없애주는 작물을 개발하였다”고 결론내린다.
물론 실제로는 생명기술에 대한 몬산토의 대부분의 노력이 직간접적으로 농업에서 화학물질의 사용을 더 증가시키는 결과로 향할 것이다. 몬산토가 열 댓개의 특허를 갖고 있는 유전자 조작된 작물의 대부분은 라운드업 제초제에 저항력을 갖도록 유전자조작된 작물들이다. 이제 농민들은 라운드업을 더 많이 사서 뿌릴 것이며, 이 때문에 물, 공기, 식량 오염을 야기할 것이다. 자신들의 광고에 언급된 몬산토는 또한 해충에 저항력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식량작물에 자연 제초제인 Bt를 넣은 작물을 만들어 내었다. 이 기술은 아직 성공적이라고 확인되지는 않았으며, 거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해충들이 Bt에 대하여 저항력을 가지는 결과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Bt를 필수적인 해충조절 도구로 이용하는 많은 유기농 농민들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다. 만약 해충 저항력 증가로 인해 Bt가 상실된다면, 농민들의 유일한 대안은 제초제 사용을 증가시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몬산토는 생명기술 신화를 파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책략을 쓰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몬산토는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과 산업으로부터 야기되는 화학 공해에 익숙하고, 이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도 충분히 나쁜 것이긴 하지만, 생물학적 공해는 더욱 근본적이고도 훨씬 더 악독한 것이다. 이는 외래식물, 동물이나 기타 생명체들이 환경 속에 방출될 때 명확해 진다. 미국에서 이러한 형태의 생물학적 공해는, 집시나방, 쿠드주 덩굴, 그리고 밤나무 마름병, 네덜란드 엘름병을 일으키는 생물체 등의 환경적 재앙을 불러 왔다. 몬산토 및 다른 기업들은 유전자 조작된 수천가지의 새로운 미생물, 식물, 동물을 환경에 방출하고 있다. 이러한 유전자 조작된 유기체들 각각은 환경에 해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인 “외래종”들이다. 수많은 유전자 조작된 유기체들이 가져올 장기적인 영향은 석유화학제품들의 전 매출액으로부터 이미 야기된 피해를 충분히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화학적 공해의 경우에는, 해를 입히는 화학물질은 자기복제하지 않으며, 이것이 확산되더라도 그 집중적인 피해는 점차 희석될 것이다. 따라서 화학공해로 야기된 피해는 대부분 국지적이며, 시간이 지나면 흩어져서 없어진다. 생물학적 공해, 즉 생물기술적 유기체들의 방출이라는 경우에는, 생태계의 교란은 유기체들이 증식하고 퍼지고 돌연변이를 일으킴에 따라 점점 증가하고 심화된다. 그 문제는 국지적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비가역적인 방식으로 확산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해충 저항력이 작물에서 잡초로 퍼져나가면 병에 저항력을 갖는 잡초가 증식할 것이며, 따라서 잡초를 고립시켜서 통제하는 것(제초제를 엄청나게 무차별적으로 사용할 지라도)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다. 유전자 조작된 각 유기체의 방출은, 몬산토와 다른 기업들이 즐기고 있는 생태적 룰렛게임이나 다름없다. 생태계만이 패자가 될 것이다. 생물학 공해는 21세기의 가장 시급한 공해문제가 될 것이다.
생물학적 공해를 넘어서서, 생물기술은 농업에서의 엔클로저 과정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몬산토와 다른 초국적기업들은 이제 농업생산에 필수적인 유전자, 식물, 동물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몬산토는 종자를 유전적인 불임으로 만들어서 종자를 저장하지 못하도록 할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모든 농업적 생명들이라는 공유자원을 엔클로저(사유화)함으로써, 생존 자체를 위해 모든 농민과 소비자들이 기업체들에게 더욱 의존적으로 만들게 하고 있다.
(번역: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위한모임 허남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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