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김대중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보고
이 영 수
호화옷 로비 사건과 김태정 법무부 장관 사퇴, 조폐공사 파업 유도 검찰공작,
손숙 장관의 2만 불 격려금 사건, 서해 교전, 금강산 관광객 인질 사건 … 끝도
없이 숨가쁘게 이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국민의 정서와 민심은 김대중 정부로부
터 급격히 이반되어 왔다. 이러한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은 뒤늦게나마 대국민
사과를 하고 나섰다. 국민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며 “민심을 하늘로 여기고 취
임 초 자세로 돌아가 국정을 올바르게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동안 민주노
총의 총력투쟁 등 노동자`민중들의 거센 비판과 저항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던 김대중 정부가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국정운영기조를 서민과 중산층 중심으
로 바꾸어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듣던 중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노
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제 김대중 정부가 정말로 ‘국민의 정부’로 거듭 태어
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 기대를 거는 국
민들도 있겠지만 아직도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 우리 노동자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때 공약했던 고용보장과 최소한도의 생
존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번복하였다. 정리해고에 반대
하고 저항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구속.수배하였으며(한편에서 수만 명 대사면
조치가 대대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어느 독재정권 시절보다도 더 많은 노
동자들이 구속되었다.) 취임 1년 사이 근로조건은 10년 전으로 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에 의한 정리해고로 400만 명이 넘는 실업자와 노숙자가
발생하고, 임금은 삭감되고 체불되어 가계를 꾸려가기 어려운 고통스런 현실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5대 재벌만 하더라도 지난 한 해동안 부채탕감과 지원금
으로 13.8% 자산이 증가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조폐공사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는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투쟁
을 무력화하는 선례를 남기기 위해 검찰이 파업을 유도하고 노조 간부들을 구속
하는 사태가 독재정권 시절보다 더 음모적이고 악랄하게 진행돼 온 것이다. 더
군다나 작년 6월 민주노총은 김대중 대통령이 방미를 앞두고 산하 조합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면서 노.정합의를 했었지만 그 이후
모든 약속이 파기되는 사기를 당했었다.
이렇게 당해 왔는데 ‘죄송하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사과가 되겠는가? 더구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죄송하다는 이야기
도 없이 그저 “최근 몇몇 사건들로 국민에게 심려를 많이 끼쳐드린 점”에서 대
해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반성하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하니 그 사과의 진
실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의 대 국민 사과
는 또 한 번의 ‘악어의 눈물’이 아닐까 우려되는 것이다.
사과를 하면서 내놓은 정책들조차 빈약하기 그지 없다. 우리 노동자들은 김대
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정리해고, 임금삭감, 대량실업, 빈부의 양극
화, 공안탄압 등에 더 이상 당할 수만 없다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총력투쟁을
전개해 왔다.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사회안전망 실시, 산별교섭 진행 등 4대
요구조건을 걸고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철회할 것을 요구해 왔던 것이다. 그리
고 조폐공사 사 사업장에 대한 진상조사와 법적 처벌, 공안대책협의회 해체, 구속자 석방 및
수배해제 등을 요구하며 전국과 각 지역에서 단식농성 투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노동자의 이러한 절박한 요구에 확실한 답을 회피하고 있다. 이
번 사과와 국정운영 방향이 생산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고통을 일방적으로 감
수해 온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반영한 것인가? 단식을 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은 과연 무엇인가? 노동자의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은 보장되는가? 정리해고로 인한 실업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가?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부터 철회해야
김대중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정부’로 다시 태어나고, 노동자와 민중의 마
음을 돌리려고 한다면 우선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전면적으로 철회하겠다고 선
언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IMF와 미국이 시키는 대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한 결과 빈
부의 양극화는 이미 가장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20%를 위한 80%의
희생을 기조로 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과 고통을 전제하
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1차 희생자인 실업자가 400만 명이다. 이번 발표에
서 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일자리 창출과 생계비 지원으로 100만 명으로 실업자
를 줄인다고 하지만, 1주에 2시간만 일해도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 현실에서
실업자에 대한 통계수치도 문제이지만 지금까지 실업대책으로 중점적으로 실시
해 온 공공근로사업도 3개월 한시적일 뿐만 아니라 50만원의 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가 없다. 정규직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그 자리에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며 임시직을 고용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실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정리해고제를 철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발생한 실업자에 대한 생계도
정부가 책임지고 실질 생계비를 보장해야 한다. 1인당 23만원씩 지원하는 생계
비는 받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실제 생계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선심성
사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을 지원하여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생산적 복지’라며 내놓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생산적 복지’라는 말부터가
정규직 대신 임시직이나 더 나쁜 일자리에서 일을 하도록 강요하고, 그것을 거
부하면 실업수당을 주지 않는 정책, 말하자면 사회복지 축소 정책을 은폐하기
위한 수사가 아닌가?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마치 그것이 기왕에 해 오던 신자유
주의 정책을 크게 수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둘러대면서 노동자`민중을 기만하
고 있다.
진실로 김대중 대통령이 노동자.민중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하고 그 요구에 답
하려 한다면 ‘생산적 복지’ 운운하면서 민중을 기만하지 말고 신자유주의적 정
책 기조의 확실한 철회를 천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리해고제를 철폐하고 모든
실업자에게 기본적인 생계비를 보장하라는 요구에 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작·공안탄압 사업장 문제 미봉해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지금 불볕더위에 단식농성을 벌이며 피 말리는 투쟁을 하고 있는 공
안탄압 사업장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근본적인 해결이 되어야 한다.
지난 6월 25일 한국후꼬꾸, 덕부진흥 노조의 대표자들이 국민회의 조한천 노
동위원장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책임을 분명히 지겠느냐”는 노동자의 요구
에 대해 국민회의 노동위원장은 “노력은 해보겠다”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애매
한 태도 때문에 지금도 한국후꼬꾸, 덕부진흥 노조는 단식 철야 농성을 무기한
전개하고 있으며 조폐공사, 부산지하철, 서울 지하철 노조는 국민회의 중앙당사
에서 점거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안산 반월공단의 한국후꼬꾸와 덕부진흥은 97년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받은 사
업장이다. 국정감사에서는 회사측의 17개 위법사항을 시정할 것을 조치하였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항상 투쟁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언제 그랬느냐
는 식으로 노동자만 일방적으로 구속.해고되고, 노조는 무력화되어 싸움은 흐지
부지 끝나 버렸다. 검찰, 노동부, 경찰, 국정원의 비호 하에서 이러한 불공평한
현실이 반복되어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번에도 또 사탕발린 말로 넘기려 한
단 말인가?
진정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민심이 하늘’이라는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민심을 수렴하려 한다면, 종교계 인사를 만나고 시민단체 인사를 만나는
것보다 우선 ‘국민’ 중에서 다수일 뿐 아니라 가장 절박하게 싸우고 있는 노동
자의 분노와 요구를 분명히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그것이 빠진 대국민 사과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국정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양치기 소년에 속아온 것처럼 수없이 속아서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또다시 몇 가지 선심성 방안을 내놓고 이것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노사
정위원회에 들어와야 한다며 정부의 요구를 관철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면
우리 노동자들은 결단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조폐공사와 지하철 공사, 한국
후꼬꾸와 덕부진흥 그 외에 공안탄압 사업장들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반
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목숨을 건 투쟁이 결코 헛되지 않게 또다시 죽 쒀서 개주는 일이 없
도록 요구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투쟁을 전개해 나가자!
그리고 김대중 정권에게도 경고 한다! 이번 만큼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이
번에도 잔수로 떼우려 한다면 노동자.민중의 분노는 대대적인 투쟁으로 터져나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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