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정권 동향]

국면전환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김대중 정부

노동자.민중의 저항투쟁과 급격한 민심이반, 서해 교전 사태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김대중 정부가 국면전환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5월 25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몇몇 사건으로 국민에

게 심려를 많이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크게 반성하고 죄송

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는 국정운영을 해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어 대북관계, 중산층과 서민의 생활안정 대

책, 재벌개혁 등 구체적인 정책과제를 언급하면서 국정운영의 기조를 전환하겠

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기자간담회를 전후하여 김대중 정부는 대정부 투쟁에 나서고 있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간부들과 잇따라 접촉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심수습용’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중산층·서민 생활안정 대책과 ‘생산적 복지’

정책으로 민심 되돌리기 시도

김대중 정부가 민심수습의 출발점으로서 가장 주요하게 내놓고 있는 것은 중

산층·서민의 생활 안정대책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산

층과 서민들이 그동안 고통을 함께 분담했으니 이제 과실도 같이 나누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 정부는 봉급생활자에 대해 총 1조 4천억 원 규모의 세금

부담을 경감시키고 1조1천억원의 추경을 편성해 중산층을 지원하는 데 쓰기로

했다.

근로소득공세와 의료비 등 각종 특별공제한도를 높이고 신용카드 공제를 신설

해 봉급생활자의 소득세를 평균 28%, 1인당 평균 20만원을 경감하기로 했다. 또

한 세금이 붙지 않는 근로자우대저축 가입대상을 확대하고(현행 연 급여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으로), 국민주택기금을 통해 융자받을 수 있는 주택구입자금과

전세자금 한도도 확대하기로 했다. 중소·벤처기업 창업시 2년간 취득세, 등록

세를 75% 감면해 주던 것을 전액 면제키로 했다.

이와 함께 추경예산사업으로는 신용보증기금에 2천억 원을 출연, 창업을 원하

는 사람들이 최고 1억 원 한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고, 7천 155억

원을 투입하여 근로자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확대와 서민들의 자녀교육비 지원,

지역 의료보험지원 등 서민생활의 부담을 완화시키기로 했다.

농어민 대책으로는 1조 1천억 원 규모에 이르는 농어촌 특별경영자금의 금리

를 현행 13%에서 6.5%로 낮추고, 6조 9천억 원 규모의 영농·영어자금 금리 역

시 IMF 이전 수준인 5%로 환원해 농·어민의 부채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그 동안 문제가 되어온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료 인상을 상당기간 억제하고, 현

행 72만원인 국민연금 지역·직장가입자에대한 연금보험료 소득공제 한도를 상

향조정하기로 했다. 또 국민연금 납부유예 대상자인 5명 미만 영세사업장 노동

자를 직장가입자로 편입시키되 사업주 부담분을 국가나 연금관리공단이 대납하

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이상의 대책들은 노동자.민중의 당면하고 있는 고통과 부담을 부분적이고, 일

시적으로 덜어주는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서민층에게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보장 정책은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대중 정부

는 이른바 ‘생산적 복지’를 내걸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청와대 복지노동수석

을 단장으로 하는 ‘삶의 질 향상 기획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미 지난 6일 현충일 기념사에서 국정지표로서 복지를 추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생산적 복지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국민생활보호기본법 제정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및 능력개발 △지식기반산업에 적합한 직업훈련 강화

△제3섹터 방식의 일자리 창출 방안 △노점상 등 도시자활부문의 제도 정비 등

을 들고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생산적 복지’는 신자유주의적 정책(특히 노동

시장의 유연화)을 기본으로 하면서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업자

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식의 소득이전적 지출을 가급적 줄이고 일할 능력과

의지를 갖춘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복지병’을 미리 예방한다는 것이

다. 25일 기자간담회에서 김 대통령이 올해와 내년에 각각 5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실업자를 1백만 명 이하로 줄이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권의 ‘개혁성’ 제고를 위한 조치들도 추진

한편 김대중 정부는 개혁이 실종되었다는 비판에 따라 정권의 ‘개혁성’을 제

고하기 위한 조치들도 내놓고 있다.

그 첫째는 재벌개혁이다. 김 대통령은 “재벌개혁 방침은 확고부동하다”면서

“은행과 재벌간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제재조치를 하고, 그래도 안되면 단호

한 조치를 취할 결심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봉균 재경부 장관도 일본 <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장쪽에 치중해온 경제정책을 부채비율

축소 등 재벌구조개혁을 우선하는 쪽으로 바꾸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둘째는 정치.인권 분야의 개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들 최근 시민·인권단

체의 간부와 원로들을 잇따라 면담하는 한편 장애인 인권운동을 벌여온 김성재

한신대 교수를 민정수석비서관에 기용했다. 이와 더불어 김대중 정부는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별법’ 제정을 전격 수용했다. 이에 따라 그 동안 법무부와 인권단체들의 대립으

로 시간을 끌어온 ‘국가인권기구’ 설치(인권법 제정) 문제도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중간층 시민단체들이 강력히 요구해 온 특별검사제 도입과 부패방지

법 제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8·15 때

양심수들에 대한 대규모 사면을 단행하겠다는 입장도 흘리고 있다. 그밖에 정치

권과 공직사회에 대한 사정작업도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러나 국가보안법 철폐 등 노동자.민중의 민주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노동자 투쟁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분리 대응

김대중 정부는 조폐공사 공작·공안 탄압 사건 폭로를 계기로 다시 투쟁의 파

고를 높여온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지도부를 잇따라 접촉하고 투쟁을 누그러뜨

리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일차적으로는 한국노총을 분리·견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노총과의 협상을 통해 △ 근로자, 서민의 삶의 질 제고와 생산적 복

지체계의 구축, 구속자 석방·수배해제 긍정적 검토 등 국정운영의 기조전환 △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 철저 조사와 법적 조치 및 노사문제 공안대책과 분리

△ 노사간에 체결된 단체협약을 이행하되 새운 단체협약체결시 공공부문 개혁의

원칙과 취지가 반영되도록 노력 △ 노사관계 제도개선위원회를 설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과 법정근로시간 단축 등 근로시간과 관련

된 제반제도의 개선방안 논의 △ 사회안전망 확충 및 사회보험 개혁 △ 노동계

가 법위반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업장에 대해서 관련내용을 조사해 신속히 의

법조치 △ 전직 실업자 초기업 단위노조 인정, 노조 정치자금 기부 허용 등 노

사정위 합의사항 이행 등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체력단련비 사실상 폐지 ▲

퇴직금 누진제 적용금지 ▲학자금융자제로 전환 등을 골자로 하는 공공부문 예

산편성지침이 일단 무력화되면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폭과 속도를 조절하지 않

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노총을 투쟁에서 이탈시키고 난 다음에 김대중 정부는 민주노총이

요구해온 김대중 대통령 면담을 받아들이고 일부 요구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

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요구 중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철회는 물론이

고 전면적인 구속자 석방과 수배해제, 공안대책협의회 해체, 노정간 직접교섭

등에 대해서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일면 견인, 일변 고립

의 양동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기조는 변하지 않아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뜻을 따르는 정치’ ‘중산층 서민 위주의 정책’을 내세

워 국면을 전환하려 하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자.민

중의 저항이 고조되는 가운데 고관집 도둑사건 및 호화옷 로비 사건, 손숙 환경

부장관의 전경련 자금 수수사건 등으로 민심이 급격하게 기반하는 데 따른 위기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서해안 교전사태, 금강산 관광

객 억류 사건 등으로 수구·보수세력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햇볕정책이 위기

를 맞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책변화의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수구·보수세

력의 불만도 어느 정도 달래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노동자와 서민층 및 개혁세

력의 지지기반을 상실할 경우 햇볕정책을 지속시켜 나가기 어려워지기 때문이

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위에서 서민층의 불만을 일시 누그러뜨리는 복지정책을 가미하는 것에 불과하

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복지’는 바로 영미 신자유주의에서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정책을 무너뜨리면서 내놓은 것이다. 즉 사회보장제도

와 사회복지를 축소하면서 임시직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이전보다 악화된

조건으로 일할 것을 강요하는 ‘일-복지’ 정책인 것이다. 재벌개혁의 고삐를 쥐

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빅딜과 부채 축소가 전부이다. 지난 1

년 동안 5대 재벌은 덩치를 더 키우고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는가 하면, 부채

를 줄인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상호출자를 늘려 총수 지배와 선단식 경영도 더욱

심화시켰다. 5대 재벌을 완전히 해체하지 않는 재벌개혁은 공염불임을 보여주는

것인데 김대중 정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국정운영 기조의 전면적인 전환인 듯이 떠들어대고 있지만 사실은 신자유주의

기조 하에서 초국적자본과 재벌 등의 이해를 크게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복지와 개혁을 가미함으로써 중간층을 견인하고 민심을 반전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전투적이고 변혁적인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고 신자유주의를

계속 관철해 나가겠다는 것이 김대중 정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재벌은 이러한 부분적인 양보 혹은 개혁조치에 대해서조차 완강하게 반

대하고 있다. 경총은 단체협약 우선 적용,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 협의 등 정부

와 한국노총의 합의에 대해서도 “사용자측 주장이 배제됐고 합의 결과가 구조조

정을 후퇴시킬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노정간 합의사

항은 노사정 위원회에서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이후 협상과정에서 입지를 강화한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

까지 수없이 경험했듯이 이러한 재벌의 반발을 배경으로 김대중 정부가 ‘검토’

하겠다고 하는 정책·조치들조차 빈껍데기로 전락시켜버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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