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 코소보 사태의 의미
신세계대전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8)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4. 전망 : 발칸 전쟁 이후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1> ‘신 세계질서 수립’을 위한 미국 –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한반도를 또다시 긴장으로 몰아가고 있다.
발칸 전쟁이 끝나자마자 한반도 주변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서해안에서 북한 어선과 경비정의 월선 문제를 놓고 며칠 동안 대치하더니 결국
에는 총격전이 벌어지고 북한 경비정이 침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곧이어 금강
산 관광객 한 명이 귀순유도 발언을 한 혐의로 억류되어 조사를 받게 되면서 햇
볕정책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도 중단되었다.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에서 한국
계 미국인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산가족 재회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던 남북 차관급 회담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북한과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북한
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장이 중국을 서 예정에 없던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한·미·일 3국은 대북 정책을 조율하기
위해 긴급히 회동했다. 그리고 뒤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서둘러 미국 방문 길에
올랐다. 오부치 일본 총리의 중국방문에서도 한반도 문제가 주요 의제로 거론되
었다.
6월 이후 한달 사이에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다. 발칸전
쟁이 끝나자마자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심상치 않은 조짐과 긴장된 움직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초국적 자본의 대변지로서, 발칸전쟁을 시종일관 선도했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지가 이 물음에 정면으로 답하고 있다. 다음 차
례는 김정일의 북한이라고! 당근만으로는 안되며, 채찍을 써야 한다고! 발칸에
서 신세계질서의 수립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은 미국-초국적 자본이 동아시아로,
구체적으로는 한반도로 공격의 화살을 겨누기 시작한 것이다! 긴장은 바로 여기
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1)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대결전략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한반도의 정세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역시 미국이다. 따라서 한
반도 정세의 추이를 전망하려면 미국의 대북정책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대해 봉쇄·대결전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다
가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계기로 이른바 ‘관여전략(engagement strategy)’
으로 전환한다.*주95) 관여전략이란 어떤 것인가? 간단히 말하면 북한을 정치·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군사적으로 압박해서 무너뜨리기보다는, 경제봉쇄도 풀
어 주고 외교관계도 정상화하여 교류와 협력을 확대함으로써 북한을 개혁·개방
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대북 전략 변화는 미국의 대외정책 전반의 기조와도 맥을 같이하는 것
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초국적 자본이 승승장구하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시기였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외정책도 초국적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자본주
의’의 확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관여·확장전략’이 미국
대외정책 전반의 기조로 자리잡아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이러한 대외정책 전반의 기조변화와 다른 측
면을 가지고 있었다.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깡패국가
(rogue state)’라는 낙인을 거두지 않았다. 4자회담을 요구해 성사시키고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을 촉구했지만,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에 대한 투자는 이
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북한이 제네바 합의 사항을 준수했지만 미국은 경제제재
를 해제하고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미국은 애초부터 북
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교류·협력을 추진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무슨 생각으로 제네바 합의에 응하고 관여전략으로 전환했던
것인가? 미국이 대북 정책을 바꾸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북한이 곧 스스로 무너
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네바에서 북미간 협상이 이루어지던 시점
에 북한은 사상 유례없이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90년대 초 소련과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경제난에 대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이 겹
치고 있었다. 그런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에서 절대적인 지도력을 행사
해 온 김일성 주석마저 사망했다. 그래서 미국 정책집단들 사이에서는, 소위
강·온파를 떠나, 북한이 길어야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라는 ‘북한
붕괴설’이 대세를 이루었다. 심지어는 몇 달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
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 온건파들은 북한이 붕괴를 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
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무리하게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보다는 조금씩 ‘당근’을 주어 가면서 개혁·개방을 시키기만 하면 북한을 미국
에 복종하는 자본주의체제로 바꾸어 낼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을 폈다. 이것이
대북 관여전략이었다.*주96)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고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목표에서는
동일하다 하더라도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봉쇄·대결정책에 비해 관여전략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는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데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는 이러한 긍정성을 담보할 만한 진
실성도 없었던 것이다!
작년 8월 31일 북한의 광명성 1호 발사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대북 강경론이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광명성 1호의 발사는 미국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광
명성 1호가 발사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미 중앙정보국은 북한이 앞으로 10년 내
지 15년 안에는 알래스카와 하와이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
기 어려울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은 광명성 1호를 지구궤도에 올
려놓음으로써 태평양 사령부는 물론 미국 본토까지도 겨냥할 수 있는 대륙간 탄
도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강경파의 대북 강경론, 즉 대결전략(confrontation strategy)이 급격
히 확산된 것은 단순히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관여정
책에서 가정했던 것과는 달리 북한은 미국이 바라는 대로 자본주의적 개혁·개
방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한 중
유와 약간의 식량을 제공했을 뿐 국교 정상화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봉쇄도 풀
지 않았다. 군사적 압박은 다소 누그러뜨렸지만 경제적인 압박은 계속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벌써 붕괴되었어야 하는데 붕괴할 조짐은 나타나
지 않았다.*주97) 이렇게 북한붕괴론에 기초를 둔 관여전략이 실패했다는 인식
이 미국 지배세력 전반에 확산되면서, 더 늦기 전에 군사적 압력을 포함하는 강
도 높은 대북 공세를 펴야 한다는 강경론이 대세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 내 강경파들은 제네바 합의를 무효화시키기 위한 정치공세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무력위협 공세를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정치공세로서
는 금창리 지하시설이 핵무기 개발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제네바 합
의에 따른 중유 지원 예산 삭감을 시도했다.*주98) 행정부와 의회의 갈등으로
표면화된 이러한 강·온 대립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외관계
협의회가 중재안을 마련하면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중재안은 의회가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대북 중유 비용 지출을 허용하
는 대신, 행정부가 99년 5월까지 북한이 대량 파괴무기 개발을 중단한다는 보증
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 전반을 철저하게 재검토할 것
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1994년 핵위기 당시 강경론을 폈던 전 국방장관 페리가
대북 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로써 제네바 합의가 깨질 뻔한 위기는 넘겼으나 강경파는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을 명시한 개정된 ‘작전계획 5027’을 흘리면서 무력위협 공세를 계속했다.
98년 10월 24일부터 11월 2일까지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델타(Delta)’라는 암
호명으로 ‘미래전’ 훈련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대북 군사적 압력이 위험
수위에 이르면서 북한도 ‘선제타격권은 미국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며,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 본토를 미사일로 공격하겠다’는 항전의지를 담은 강경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은 전쟁위기로 치달았고 이른바
’99년 3∼5월 위기설’이 공공연하게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말해주듯이 북한 붕괴설에 근거하고 있던 관여전략이 실패로
드러나면서 미국의 대북 정책의 기조는 대북 대결전략이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2) ‘신 세계질서’의 수립을 위한 미국 – 초국적 자본의 입체적이고 강도 높
은 대북 공세가 시작되고 있다.
북한은 ‘신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집중 공략 대상이다!
험악한 상황으로 치닫던 한반도 위기상황은 북·미간에 식량지원을 대가로 금
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현장조사에 합의함으로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현장조
사 결과 의혹도 해소되었다. 그러면 이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기는
해소된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한숨
을 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무엇보다도 미국 온건파로 대변되는 초국적 자본의 세계 전략 자
체가 또 한 차례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간 승승장구하던 초국적
자본은 지금 축적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가 도
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미국-초국적 자본은 무력공격을 포함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공격적 확장을 통해 위기를 예방하는 전략으로 돌아서고 있
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공격적 확장은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을 유일패
권으로 하고 여타 강대국들을 하위 파트너로 하여 전 세계를 수직적으로 지배하
는 ‘신 세계질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공격적 확
장과 ‘신 세계질서’ 구축을 관철하기 위해 발칸에서부터 ‘신 세계대전’에 불을
당긴 것이다!
‘신 세계질서’의 구축이라는 목표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은 1차적이고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다. 왜 그런가? 첫째,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요 강대국들과 국경을 마주 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여타
강대국들을 견제하면서 미국을 유일패권자로 하는 ‘신 세계질서’를 부과하기 위
해서는 북한을 무너뜨리고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전일적인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
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미국의 유일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잠재적
도전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둘째, 미국-초국적 자본은 동아시아 나라들에서 국가자본주의적 요소들을 해
체하고 신자유주의를 강제함으로써 전 지구적 자본주의로 완전히 통합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한 견지에서도 미국의 자본주의적 개혁·개방 요구를 완강
하게 거부하면서 버티고 있는 북한이라는 존재는 크든 작든 하나의 걸림돌이 아
닐 수 없다.
셋째, 보다 결정적인 것은 군사적 측면이다. 국제관계에 있어서 어떤 나라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거나 보호하는 최종적인 수단은 결국 군사력이다. 발칸 전
쟁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신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외교적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여 항복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은 세계전략의 핵심요소로 “대량파괴무기 비확산 전략”을 추
구하고 있다. 강대국들은 미국 유일패권 하의 하위파트너로서 복속시키면서 그
입지를 일정하게 보장하되 여타의 나라들에 대해서는 핵과 미사일 등 대량파괴
무기를 갖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치·군사적으로 미국의 지배에 맞설 수 있는 가
능성을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미국-초
국적 자본의 세계전략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미국-초국적
자본으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북한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
는 것이다.*주99) 더구나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이 중동이나 아시아의 다른 나
라들에게 수출되어 미국이나 유럽 중심부를 타격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
렇게 되면 미국-초국적 자본이 추진하는 ‘신 세계질서’는 언제, 어디서 구멍이
뚫릴 지 알 수 없다. 미국-초국적 자본이 미사일 문제에 대해 극도로 신경질적
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 초국적 자본은 미사일 문제를 고리로
북한에 대한 인위적인 붕괴전략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1996년 이래 네 차례에 걸쳐 미사일 협상을 진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1000km 이상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생산·배치의 포기와 수출 중단을
요구하는 미국측과 미사일 개발·생산·배치 등은 주권사항으로서 협상테이블에
도 올릴 수 없다는 북한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
고 있다. 다만 북한은 수출만큼은 현금 보상이 주어진다면 중단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주100) 이에 대해 미국은 보상 제공은 불가하며 다만 경제봉쇄 해제,
외교관계 개선, 비료나 식량제공 등 정치·경제적 혜택을 일정하게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 동안 미사일 문제는 미국과 북한간의
쌍무적 협상의 틀 안에서만 논의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물론 미사일 문
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을 국제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기
도 했다.*주101)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유고는 국제법에 무슨 근거가
있어서 무력공격을 했는가? 아니, 자국의 결정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
를 놓고 미국이 언제 국제법을 존중한 적이 있는가? 미국이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해 쌍무협상으로 시간을 보낸 이유는 국제적 규제체제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대
북 정책 자체가 북한붕괴설에 근거한 관여전략을 기조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북한이 생존을 위해 개혁·개방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리고, 미국-초국적 자본이 발칸전쟁을 계
기로 ‘신 세계질서’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북한의 미사
일 문제는 이제 ‘신 세계질서’의 구축에 있어서 핵심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
다. 미국-초국적 자본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은 물론 이 미사일
문제를 고리로 북한에 대한 인위적인 붕괴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미
사일 문제는 북한을 붕괴시키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다. 미사일만이 문제라면 미
국은 경제봉쇄 해제와 국교정상화는 물론이고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과 단계적 철수 등 상호인정과 평화적인 공존을 위한 방안들을 행동에 옮기
면 된다. 그러나 북한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큰 목적이기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공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 – 초국적 자본의 공세는
입체적이고 강도 높게 진행되어 나갈 것이다.
그러면 대북 공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떻게 전개될 것인
가?
먼저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공식화하기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페리가 대북 정책조정관에 임명되면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 방향은 물론
관여전략 중심에서 대결전략을 중심에 두는 방향이 될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조만간 발표될 페리 보고서를 놓고 다시 강·온파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논쟁 속에서 페리 보고서는 관여정책―이른바 ‘포용
정책’으로 불리는―을 담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보수 강경파는 페리
보고서가 북한에게 시간만 더 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온
건파는 페리 보고서를 옹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김대중 정부도 페리 보고서를
지지하고 있다. 강경파로 알려진 페리가 대북 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되었을 때나
지난 2월 페리가 대북 관여정책의 실패를 지적하고 햇볕정책을 비판한 <예방적
방위>라는 책을 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페리의 구상이 그만큼 달라진 것인가? 페리가 제시하고 있는 기본
구상은 앞으로 미사일 문제와 관련하여 포괄적인 협상을 진행하되 이 협상에 실
패할 경우 ‘북한을 무시하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무시전
략’은 ‘대결전략’과 근본적으로 다른가? 표면적으로 보면 약간의 차이는 있다.
이른바 ‘당근’의 강도를 높인 것이나 군사적 제재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제시하는 ‘당근’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만한 수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무시’한다는 것은 그냥 팔짱끼고 바라보고만 있겠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경제봉쇄와 정치·외교적 고립의 강도를 훨씬 더 높여서 압박을 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명시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군사적 압박수단이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러한 포괄적 협상안은 온건파만 제시했던 것이 아니다. 보수파의 견해
를 집약한 아미티지 에서 일괄타결안은 협상안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최후통첩이다. 발칸전쟁의 경우
랑부이예 협약이 그러했듯이! 그래서 페리 보고서는 표면적으로 기존 대북 관여
전략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북 대결정책으로 가는 교
두보인 것이다.
미국 내에서 강온파가 입씨름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 지배세력 내에서는 정책
전환에 대한 컨센서스(합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주102) 이러한 상
황에서 강·온 대립은 페리 보고서가 마치 관여전략에 입각해 있는 것처럼 몰고
감으로써 정책전환의 명분을 축적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미국-초국적 자본은 서방 강대국들의 공조체제로 북한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 쌍무적 현안으로 논의해 오던
미사일 문제를 국제적인 정치쟁점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경주되기 시작했다. G8
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수출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또
한 초국적 자본세력의 대변지인 <이코노미스트>지는 7월 10일자에서 한반도 문
제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북한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일은 94년 핵 위기를 통해 그가 더 나쁘게 행동할수록 주변국들이 더 필사
적으로 자신을 매수하려 한다는 것을 배웠다.”며 “이제는 그를 미몽에서 깨게
만들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주변국들은 단순하고도
일치된 목소리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사일 실험이 계속
될 경우 기존의 지원이 철회됨은 물론 보다 심각한 경제제재가 가해질 것이라
는!*주103)
이러한 국제적 공조체제는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뿐만 아
니라 미사일에 대한 마땅한 국제적 규제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여론몰
이를 통해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여기에 지난 발칸 전
쟁에서 초국적 자본세력의 입장을 공공연하게, 가장 철저하게 대변하면서 국제
적인 여론을 선도했던 <이코노미스트> 지가 다시 총대를 맨 것이다. 따라서 협
상 자체는 북-미간 쌍무협상으로 진행되더라도 G7, 유엔 등 각종 국제기구와 강
대국들이 대북 공세에 함께 보조를 맞추어 나가면서 압박의 강도를 높여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가는 과정에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하위파트너로서
정치·군사적 위상 강화를 추구하고 있는 일본이 바람잡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
다. 유럽에서 영국이 그러했듯이!
국제적인 공조체제를 갖추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중국이다. 발칸전
쟁의 경우 러시아가 문제였듯이.*주104) 미국-초국적 자본은 전역미사일방위구
상을 강력하게 밀어붙임으로써 중국이 북한을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을 약화시키
는 한편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한편 미국-초국적 자본은 대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남한에서
의 보다 철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제시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커버
스토리에 이어지는 “전쟁의 어제, 평화의 내일”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내일의 평화는 민주주의와 열린 경제를 요구한다. 이는 남한이 보다
풍요로와지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가난한 북한을 보다 잘 먹여 살리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실 남북한 간의 경제적 격차는 이미 문제가 되고 있다. 더 유연한
남한 경제는 통일이 가져오게 될 거대한 충격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며 남한의
더 강한 민주주의는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다”라고. 그러면서 재벌개혁의 부진과 지나친 규제를 비판하고 경제개혁과 정치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초국적 자본은 남한을 신자유주
의로 개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통해 남
한이 기존의 천민자본주의에 비해 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북한을 압박해 들어가
게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금창리 의혹으로 조성되었던 한반도 긴장은 일시적으로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미국-초국적 자본의 공세는 이제 새롭게, 더 입체적이고 강도 높
게 시작되고 있다. 자연붕괴 시나리오로부터 인위적 붕괴 시나리오로! 관여전략
으로부터, 대결전략을 중심으로 하면서 관여전략을 병행하는 입체적인 전략으
로! 미국 혼자서 북한을 압박하던 데서 초국적 자본세력, 강대국들의 공조체제
로 북한을 압박하는 것으로!
이러한 상황에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스스로 지난 4년간 ‘고난의 행
군’을 통해 모진 시련을 이겨왔다고 자부하고 있는 북한은 이러한 미국-초국적
자본의 공세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대중국관계를 정상화했고
러시아로부터 원유공급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한편으로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
지면서도 미국-초국적 자본의 공세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대응할
것이다. 아무리 미사일에 의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전쟁상황으
로 가면 존립이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의 입
장은 미국의 약속 불이행에도 불구하고 북미협상을 끈질기게 유지하는 것이나
최근 들어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 실험을 유보할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서
도 확인된다.
그러나 한반도의 상황변화에서 칼자루를 가지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국-
초국적 자본이다. 시간이 문제일 뿐 미국-초국적 자본의 강도 높은 공세는 필연
적으로 한반도를 긴장상태로 몰고갈 것이다. 1994년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
의 위기상황이 닥쳐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 햇볕정책으로는 안 된다.
그러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민족의 위기상황을 막고 평화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수구세력이 강력하게 버티고 있는 남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상황 속에서
비추어 볼 때 공존과 교류협력 우선의 정책을 견지해 나가는 것만 해도 군사적 대결로 적대와
긴장을 고조시키는 정책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작년 하반기 이후 한반도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는 속에서 햇
볕정책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작년 11월에
이어 이번에 다시 미국을 방문한 것도 햇볕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
해서였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대미 의존성이야말로 햇볕정책의 근본적인 한계
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대결전략 중심으로 전환되어 가는 상황에서 미국
온건파의 관여전략에 의존해 온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
다. 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역시 미국의 관여정책의 규정 하에서 자본주의
적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한, 북한으로부터의 호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햇볕정책이 위기를 맞고 갈팡질팡하는 것은 국내 수구파의 준동에도 일
정정도 원인이 있으나 보다 결정적으로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대결 위주로 바뀌
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 보도만 보더라도 방미 때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당위성을 열심히 설득했지만 미국 조야의 반응은 ‘썰렁’했다고 한다. 김대중 대
통령이 무슨 수로 미국의 정책변화를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햇볕정책
을 고수하려고 해도 우리나라 군사정보의 90%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특히
국방부와 정보기관에 포진하고 있는 강경파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가지고 의혹
을 제기하면서 대북 압력을 가하는 데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먼저 미국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야만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북한이 착하는가? 미국의 군사력으로부터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사력을 휘두르고 있는 미국이 남쪽에 자신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은 북한에게는 항상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언제 군사력을 동원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북한이 핵
이든 미사일이든 자위수단을 강구하는 것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북한의 자위수단 강구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는 무엇보다도 남한이 미국에 대해 자주적인 입장을 확고히 하면서 한반도 긴장
을 유발하는 대북 압력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 정전협정을 평화협
정으로 바꾸고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킴으로써 긴장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야 북한에 대해서도 진실성을 가
지고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으로 나가자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을 자본주의적으로 개혁·개방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미
국의 관여전략과 마찬가지로 햇볕정책도 북한을 개혁·개방의 대상으로 보는 한
아무리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을 도 최근 일본 잡지 <세카이> 8월호에 기고한 ‘남북화해를 통한 한반도 평화’라
는 글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 추기경은 “남북 화해를 위해서는 먼저 서
로의 체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며 “전체 국민이 상대방 사회 체제의
본질적인 측면을 이해·존중하는 태도를 보일 때 비로소 남북 관계에 근본적인
사회 통합 가능성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또한 “화해는 상대
방이 직면한 문제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일 때
가능하다” 면서 “북한 동포의 식량난과 기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
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7.4 공동성명에서 남
북이 7천만 겨레와 전 세계에 천명했던 것이다!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자주·평
화·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통일로 나가자는 것이 7·4 공동성명의 기본정신
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현실적으로 적지 않은 긍정성을 가지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7·4 공동성명의 정신과 원칙에 서 있지 않다. 바로 여기에 햇볕
정책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신 세계대전’의 불길이 언제 모르는 지금,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햇볕정책을 넘어서 7·4 공동성
명에 입각한 자주적인 통일정책으로 전환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 주 ————-
95) 제네바 합의는 전쟁 직전까지 갔던 한반도 핵위기의 산물이었다. 미국의 대
북 핵사찰 압력으로부터 시작된 한반도 핵위기는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
국제원자력기구의 강제사찰 압력→북한의 핵확산금비조약(NPT) 탈퇴→북미회
담과 NPT 탈퇴유보→북미 협상의 결렬→미군의 군사력 배치 증강 및 팀스피리
트 훈련의 재개→북한의 핵연료봉 제거→유엔을 통한 국제제재 추진 등의 과
정을 밟아가며 1994년 6월에는 전쟁발발 직전까지 치닫고 있었다. 이러한 위
기는 카터의 방북을 계기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1994년 10월 제네바
에서 북미간 기본합의서 체결로 일단락되었다.
96) 이들은 또한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위험스러운 도발이나 대규모 난민사
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관리하면서’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북한은 곧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에 의해 무너질 것이니 북한이
그 사이에 합의를 뒤집으려 하더라도 ‘시간은 우리편’이라고 장담하기도 했
다.
97) 보수파의 견해를 집약하고 있는 아미티지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호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북한 정권이 위협받을 만한 사회적·정치적 불안
이나 군사적 불만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정권 발족 50주년 기념식
때 드러났듯이 북한 정권은 김정일의 장악 아래 공고한 것으로 보인다.” “북
한이 급속한 시장지향적 개혁을 시도한다는 어떤 징조도 없다. 그 대신 식량
부족을 완화하고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역 차원에서 최소한의
신중한 개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미티지 보고서 : 시간을 버는 쪽은 북한
뿐이다”, <신동아>, 1999년 4월호 참조.
98) 사실 금창리 굴착공사는 1989년부터 시작되었고 미국의 첩보위성은 지속적
으로 이를 감시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보수 강경파들은 인공위성이나 미사
일 시험발사만 가지고는 대북 공세의 강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금창리 지하시설이 핵무기 개발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은 제기한 것이었다.
99) 미국 국방정보국 국장인 패트릭 휴즈는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에 대한 대
규모 광역적 재래전을 벌이려는 위협은 거의 제한되어 있지만 오로지 북한만
이 예외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호석, 앞의 글 참조.
100) 북한은 미사일 수출을 포기하는 대가로 3년간 연간 10억 달러씩 30억 달러
상당의 ‘현금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화일보> 3월 29일자
참조.
101)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 등의 구속력 있는 국제적 규제체제를 갖
추고 있는 핵 문제와 달리 미사일의 경우 미국 등 선진국 중심으로 미사일 개
발기술 이전을 규제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밖에 없다. 102) “북한 미사일 문제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없을 만큼 초강경 입장이다”,
「북한 때리기 회초리 다시 꺼낸 미국 의회」, <시사저널> 6월 2일자 참조.
103) “몸부림치는 폭군, 세계적인 위협(Desperate tyrant, global menace)”,
, 1999년 7월 10일자 참조.
104) <이코노미스트> 지도 이 점을 제기하면서 “미국, 남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엄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동아시아에서 경쟁과 심지
어 전쟁이라는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는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허용하든
지 아니면 김정일이 물러서도록 설득하든지”라고 경고하고 있다. 앞의 글 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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