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참된 방송개혁을 위한 방송노동자의 결단
임 선 희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
을 할 때면, 탄압하는 정권보다도 더 열받게 하는 존재가 바로 언론, 그 중에서
도 방송이다. 올 봄 지하철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 때도 우리는 변함없는
‘편파와 왜곡’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런데 방송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7월 13일 새벽 6시부터 전국방송노
동조합연합(방노련) 소속 한국방송공사(KBS) 노조와 계열사 노조연합, 문화방송
(MBC) 노조, 방송위원회 노조가 무기한 전면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당장 여성
앵커가 빠진 채 남성 앵커가 단독으로 뉴스를 진행하는가 하면 일부 뉴스는 얼
굴이 바뀌었다. 정규 프로그램을 재방송과 외화로 긴급 대체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19일 나갈 예정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이 출연하는 ’21세기 위원회’ 녹화
도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한다.
이번 방송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주된 쟁점은 방송개혁 문제이다. 방송노동자들
은 지난 90년 노태우 대통령이 방송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후 꾸준히 방송독립을
외치며 방송개혁투쟁을 벌여 왔다. 방송노동자들은 김대중 정권에게 상당한 기
대를 걸었었다. 과거 야당시절 방송법 개혁을 요구하며 개혁법안을 제출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부터 올 2월까지 방송개혁위원회에 적극 참가하여
방송개혁 입법을 준비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 11월 막 통과시키려
던 방송법을 막판에 보류시키더니 방송개혁위원회를 파행으로 몰고 갔다. 그리
고는 더 개악된 안을 들고 나왔다.
이에 방송노조들은 지난 2월 방송개혁위원회를 탈퇴하였다. 이어 KBS 노조는
3월에, MBC 노조는 4월에 조합원의 90%가 훨씬 넘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그리고 수차에 걸쳐 조합원 총회와 방노련 연대 집회를 하는 등 꾸준
히 투쟁을 준비해 왔다. 그러다가 정부측이 방송장악과 신자유주의적 개편의 의
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개악안을 그대로 강행 처리할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최후의 수단으로서 총파업을 결행한 것이다.
방송노동자들도 역시 편파언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모양이다. 방송사
가 파업에 들어가자 언론에서는 ‘명분이 약하다’ ‘조합원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
다’ ‘파업이 잘 안될 것이다’ ‘곧 끝날 것이다’ 등등 예의 ‘편파와 왜곡’을 거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방송노조들은 예상을 넘는 조합원들의 뜨거운 참여에
힘입어 임시국회가 끝난 16일 이후에도 파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개악법안을
유보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개혁입법을 즉각 통과시키라”면서. 그
래서 MBC 경영진도 토로하고 있듯이 “파업이 예상외로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송노동자의 숙원,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정부여당은 정부의 통합방송법안이 ‘뉴미디어 시대’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주요 골자를 보면, △방송위원회
를 구성하여 방송정책권을 부여하는 등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다원화하고 있
는 뉴미디어 시대에 맞춰 방송계 구조를 개편하며 △위성방송사업에 대기업, 언
론사, 외국자본의 참여를 허용하고 △공영성을 강화한다는 것 등이다.
이에 대해 방송노조들은 파업에 돌입하면서 방송위원회 독립성 보장 공영
방송사 사장·이사 인사 검증 실시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 위성방송
사업에 대기업, 언론사, 외국자본의 진입 한 등 5대 요구사항을 내걸고 있다.
다섯 가지로 집약되고 있는 방송노동자들의 요구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담고 있다. 무 자르듯이 자를 순
없지만 위의 5대 요구사항 중 번은 대체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것
이고 번은 주로 자본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번은 권
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고 제대로 된 방
송을 만들 수 있는 담보로서 현업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방송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해묵은 숙원이다. 군사독
재 이후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강요당하면서 숱한 왜곡과 굴절의 역사를 겪어
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 오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된 것이다. 그것이
어찌 방송노동자들만의 바램이겠는가? 우리 노동자를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가
장 바라는 것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공정하고 소신 있는 방송이 아니겠는
가?
그런데 현재 정부여당의 안대로 하면, 방송위원회는 방송정책권을 가지며,
KBS 사장 제청권, 이사선출권, 예·결산 승인권, MBC의 대지주인 방송문화진흥
회 이사 선출권, 교육방송 사장 임명권 등 막강한 인사권과 준(準) 사법·입법
권을 갖는 기구가 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방송위원회의 위원들을 대통령이 3
인, 국회 3인, 국회 문화관광위원회가 추천하는 시청자 대표 2배수 중 3인을 대
통령이 임명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집권당 쪽 방송위원이 2/3 이상을
차지하게 한다는 속셈이다. 마치 방송기구를 독립시키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
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으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방송
위원회는 제2의 공보처가 되고 방송독립의 염원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에 방송노동자들은 방송위원회가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로 역할할 수 있
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방송위원들은 인사검증 절차를 밟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 동안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정권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던
공영방송 사장에 대한 인사검증도 요구하고 있다.
방송독립의 새로운 적, 자본의 지배를 막아라!
또 다른 줄기인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어쩌면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나타
날 문제일 수 있다.
이번 정부여당이 추진하려는 통합방송법은 위성방송 사업을 앞당기고 다양한
미디어를 활성화하면서 거기에 거대자본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성방
송 사업자에 대한 외국자본, 대기업, 언론의 참여를 33%까지 허용한다는 것이
다. 위성방송 사업자는 수신자 관리를 포함해 수십 개의 채널을 관리하는 실질
적인 위성방송의 지배자이다.
내년 8월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투자된 무궁화 위성 3호가 발사될 예정이다.
그러면 채널은 1백여 개로 늘어난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한두 개 위성방송 사
업자의 독과점 지배하에 들어간다. 초국적 언론자본인 머독은 이를 위해 국내
기업과 합작하는 등 이미 국내 방송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위성방송망을 장악한 자본은 자신의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프로그
램을 위성방송망을 통해 전세계에 배포할 수 있는 프로그램 공급권까지 갖게 된
다. 마치 시청자들이 다양한 채널과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선택권을 갖게 되
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초국적 자본의 위성방송망을 통해서 초국적 자본이 제작
하거나 허용하는 프로그램만을 보게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방
송의 상업화, 저질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또 지금도 특정재벌에 대한 비판
기사는 거의 보기 힘든 상황인데, 외국자본에 대한 비판 프로그램은 사라질 것
이다. 그렇게 초국적 자본은 방송을 통해 우리 안방까지, 우리 의식까지 지배하
려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방송노동자들은 위성방송을 서두를 이유가 없으며, 더욱이나 재벌
과 외국자본의 진입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노동자들은 이
와 함께 무모한 시청률 경쟁을 지양하고 저질화를 막기 위해서 민영상업방송 지
배주주의 소유지분을 일정수준 이하로 제한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것을 주
장하고 있다.
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방송위원회 구성이나 임용 절차, 재벌과
외국자본의 진입 금지 등 외적인 장치도 필요하지만 권력의 눈치를 살피면서 각
종 외압에 흔들리는 방송경영진의 독주와 횡포를 막기 위한 내적인 힘과 견제장
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방송노동자들은 방송현업 종사자들이 프로
그램 편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97년 대선 때 무려 7시간에 걸친 사상검증 토론회를 공중파 방송이 생중계
를 한다던가, 지하철 파업에 대한 일방적인 왜곡과 매도를 한 것,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자유메달 수상식을 갑자기 생중계하는 식의 비상식적인 방송편성에 대
해 견제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방송노동자들은 지금이야말로 90년 방송법이 날치기 통과된 이후 10년만에,
그리고 방송법 개혁 투쟁 4년만에 방송을 올바로 세울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에 자칫하면 방송이 앞으로 수십 년 간 권력과 자본에게 더
욱 예속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이라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 그 때문에 방송노동
자들은 임금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고용문제나 단체협상 사항도 아닌 방송법
개혁을 위해 무기한 파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노 조들은 개별 방송사의 현
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자사 이기주의로 비출 수도 있기 때문에 단사
문제는 뒤로 미루고 오로지 방송개혁에 초점을 맞추어 싸워나가고 있다.
언론 민주화 없이 사회 민주화는 요원하다. 그 중에서도 방송은 일반 국민들
의 일상생활과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제대로 된 방송을 세우기 위해 투쟁하는 방송노동자들에게 힘찬 지지와
연대의 박수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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