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정권 동향]

도마에 오른 5대 재벌 개혁, 총수체제는 그대로 유지

최근 5대 재벌 총수의 지배력이 오히려 강화되고 있음이 드러나고, 현대재벌

의 주가조작, LG의 사실상의 데이콤 지배, 삼성의 주식 변칙 증여 등 5대 재벌

의 천민적 행태가 폭로되면서 재벌해체의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 정권이 다시금 재벌개혁을 주창하고 나서고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5대

재벌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재벌개혁의 고삐를 다시 죄는 김대중 정부

김대중 대통령은 16일 대한매일 창간 95주년 기념 특별회견에서 재벌의 제2금

융권 지배구조 방지에 대해서 “재벌의 사금고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선 경영

지배구조 개선에 중점을 둬 사외이사제도를 확대하고 감사제도를 강화하는 등

관련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며 “대주주가 임의대로 자금을 운용하는 일이

없도록 경영전반에 걸친 감독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김태동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8일 서울 인터컨티넨탈 호텔

에서 열린 LG경영인포럼에 참석, ‘국민의 정부 1년 반 개혁의 성과와 향후 전

망’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금융위기를 맞은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부채덩어리인

재벌의 구태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총수나 그 가족이 이사회에 참

석도 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며 재벌가의 잘못된 경영관행에 일침을

가했다.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도 15일 서울 하이야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능률

협회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재벌개혁 초점이 기업 소유구조와 지배구조 개선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한국기업의 수익성 분석’ 보고서를 내고

92~97년 중 5대 재벌 소속 기업들의 자산대비 순이익률은 외부감사 대상 전체

기업(공기업과 금융기관을 제외한 5천여 개)의 평균치에 비해 1.89%포인트 낮다

고 발표했다. 또 보고서는 “총수들이 이익은 독점하지만 이에 따른 비용은 다른

주주들과 나눈다는 생각 때문에 예상 수익성이 낮은 경우라도 무리하게 투자해

왔다”고 지적하면서 총수들의 사적인 이익추구를 견제하기 위해 소액주주의 권

리를 강화할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재벌총수를 비판하고 나

섰다.

5대 재벌 금융계열사에 대한 계좌추적권 발동

김대중 정부는 5대 재벌을 압박하기 위해 5대 재벌 금융계열사에 대해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12일 5대 재벌 금융계열사(증권·투신·생명보험

사)에 대해 특별검사에 착수했다고 밝혔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좌추적권을

발동해 현대 삼성의 펀드자금 이동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계

열사를 이용한 계열사 편법지원이나 펀드간 자금의 부당이동 등을 집중 점검하

기 위해 이미 11일부터 LG그룹 금융계열사에 대해 검사를 시작했으며 오는 10월

까지 대우 SK 삼성 현대 순으로 종합실태점검을 벌인다. 재정경제부는 공평과세

를 실현하고 재벌이나 재산가들의 불법·변칙적인 상속·증여세 회피를 차단하

기 위해 상속·증여세법과 조세범처벌법 등 관련 세법의 총 점검에 착수했다고

11일 밝히고 국세청과 금융기관 등을 통해 각종 불법·변칙적인 상속·증여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있다.

총수체제 유지한 채 소그룹화와 총수 전횡 견제

김대중 대통령과 핵심실세들이 연이어 재벌개혁에 대하여 발언의 강도를 높이

고 재벌총수와 그 일가의 폐해를 지적하고 나서고 있으나 이것이 총수퇴진이나

총수체제를 해체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16일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재벌개혁의 방향에 대하여 선단식 재벌

체제를 소그룹으로 전환하도록 한다는 방향 하에 “강압적인 소그룹화 보다는 지

난해 1월 김대중 대통령과 재벌들이 약속한 5대 원칙을 착실히 이행토록 하는

동시에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일부 분야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유도할 계

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배구조 개선방안으로 ▲대표소송의 요건을 크게

완화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진에 대해 즉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감사위원회의 적용대상을 당초 계획보다 확대하는 방안 ▲소액주주

들이 자신들을 위한 이사를 뽑을 수 있는 누적투표제 도입 의무화 방안 ▲사외

이사가 재벌총수 등과는 독립적으로 선출되고 활동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검토하

거나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하여 소그룹화에 도

움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결국 김대중 정권의 재벌 개혁은 재벌을 소그룹으로 나누고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 사외이사제의 도입 등으로 재벌총수의 횡포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5대 재벌의 총수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재정경

제부가 14일 특정인이 경영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경영일선에서 퇴진하라는 직접

적 요구는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부적절하다며 대신 내부

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퇴출되도록 하는 장치를 보다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

힌 데서도 잘 드러난다.

반발하는 재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6일 3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협의회를 개최하여 재벌

총수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참가 기

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데 지배구조에 칼을

대는 것은 ‘시기상조’란 주장을 폈으며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지배구조 개

선 정책의 속도와 강도가 너무 세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하였다. 또 기업 구

조조정을 재계 자율로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추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요

청했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12일 발표

한 실패 경영진 퇴진 보고서에 대하여 손병두 전경련 상근 부회장은 12일 긴급

기자 회견을 자청하여 “이번 보고서는 산하 씽크탱크인 한경연이 기업개혁 방향

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을 정리한 것일 뿐 김우중 회장은 물론, 전경련의 공식

입장은 절대 아니다” 라고 강조하였고 한경연도 이날 해명서를 발표, ” ‘실패한

경영진 퇴진’ 논란은 시장 원칙에 의해 실패한 전문 경영진이 물러나야 한다는

원칙론을 말한 것일 뿐 특정 재벌총수를 염두에 둔 것은 결코 아니다” 라고 적

극 해명하기도 했다.

대우그룹, 사재출연으로 김우중 체제 유지 기도

한편, 작년 4/4분기 이후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

사재출연을 하고 정부와 채권단은 대우의 유동성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는 6조∼

7조 원 규모의 초단기화(만기 10일 이내)한 해주는 등의 금융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연말까지 부채비율을 200%대로 맞추기 위해서는 대우의 자산을 매각해야 하기

때문에 악성부채의 만기연장만으로도 문제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교보생

명 지분(㈜대우 24%, 김우중 회장 11%)이나 김우중 회장의 계열사 지분 등 사재

를 담보로 1조원 대의 신규 여신을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에 대해 대우 관계자도 “현재 진행중인 대우전자, 대우중공업 조선 부문,

대우자동차 등의 매각, 외자유치 영정상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우는 김 회장의 사재를

포함 10조원 정도가 담보로 금융기관에 제공돼도 김우중 회장의 경영권엔 변함

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5대 그룹 구조조정의 큰 틀은 강제적인 워크아

웃이 아니라 자율적인 구조조정에 있는 만큼 김 회장의 책임 하에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처럼 최근 김대중 정권은 재벌개혁을 강도 높게 주창하고 있고 긴박하게 돌

아가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으나 재벌개혁의 핵심인 재벌총수체제는 고스란히 유

지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소액주주의 권한을 일정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

한다 하더라도 재벌총수 체제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기업

소유와 지배구조의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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