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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합섬 노동자, 민주노조 쟁취하다!

박 영 아

50여 일간 치열하게 투쟁해 온 대하합섬 노동자들이 마침내 민주노조를 쟁취

하였다.

“민주노조 쟁취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 “악으로 깡으로 끝까지 투쟁하자!”

300여 노동자들의 구호 소리가 아직도 구미 전역에 메아리 치는 것 같다. 그들

의 주장처럼 인간답게 살기 위해 악으로, 깡으로 끝까지 투쟁하여 민주노조를

쟁취하였다. 그 투쟁은 노동자를 인간이기보다는 이윤을 짜내는 도구로 취급한

채병하 대표이사와, 노동자의 기본권을 가로막은 채 자본과 굳게 손을 잡고 노

동자 탄압에 앞장서 온 구미시와의 치열한 전쟁이었다. 또한,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이고 자민련 북구갑 지구당 위원장이자, 대하염공과 대하통상의 민주노조를

깨고 유령노조를 만든 장본인인 채병하를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패배주의와의

전쟁이었다. 이 모든 난관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대하합섬 노동자들의 열망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노조가 없던 시절, 현장은 살벌했다. 관리자의 말은 곧 법이었다. 회사가 작

년에 상여금 삭감 동의를 강요할 때도 대하합섬 노동자들은 서명용지의 내용조

차 다 읽어보지도 못하고 서명을 할 정도였다. 몇 년간 호봉승급 한 번도 없었

고, 동종업체보다 30∼40만 원씩 낮은 임금은 먹고살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작

년에 유령노조와 체결한 단협을 보면 1주일 기본 노동시간이 주 46시간으로 되

어 있을 정도였다. 현장에서는 일이 너무 힘들어 한 부서에 있는 사람들 간에도

얘기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회사 생활 몇 년이 되어도 서로 어떻게 생활하

는지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자리조차 드물었다.

그러나 민주노조 쟁취 투쟁을 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농성투쟁을 하

면서, 규찰을 서면서, 부서 모임을 하면서 그들은 형제가 되었고 동지가 되었

다. 일요일은 투쟁현장에 가족까지 모여 음식을 나누고 노래 자랑도 하며 자랑

스런 아버지, 당당한 남편이 되었다. 자본이 만든 파편화 된 인간임을 거부하고

동지와 함께, 가족과 함께 정을 나누며 투쟁하였다. 이렇게 단결된 300여 노동

자의 힘은 채병하의 아성을 흔들어 놓았다.

조합원들은 아침반 일을 마치고 나면 버스를 타고 대구로 갔다. 대구 상공회

의소 앞, 자민련 북구갑 지구당 앞, 심지어는 채병하가 사는 동네에까지 가서

규탄 스티커 부착, 집회 투쟁, 선전전을 한 달 이상 계속 하였다. 법까지 어겨

가며 노동자를 쥐어짜서 모은 돈으로 정치적 야심을 키워온 채병하는 노동자들

투쟁과 시민들의 규탄 앞에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유령노조를 구미시를 응징하는

투쟁 또한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대하합섬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근로감독 소홀과 자본과의 협잡으로 고통받고

있는 300여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요구를 외면하며 두 차례나 설립신고서를 반

려한 구미시를 응징하는 투쟁 또한 치열하게 계속하였다. 구미시청 앞에 매일

오전 9시면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나온 노동자와 오후 근무에 들어갈 노동자들이

구미시 정문 앞에서 오후 1시까지 농성투쟁을 하였다. 그리고 대하합섬 노동자

들과 지역 노동자들은 구미역에서 토요일마다 집회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시장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

았다. 노동자들을 기다려주는 것은 정보과 형사들과 완전무장한 전경들뿐이었

다. 보름이 지나도록 구미시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자, 대하합섬 노조는 지역

의 제 단체와 함께 구미시의 반 노동자적 노동행정을 규탄하며 구미시장 퇴진운

동에 들어갔다. 그제야 구미시는 노, 사, 시청, 시민단체와의 논의 테이블을 만

들겠다고 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구미시가 시간만 끌며 체면치레만 하

고 있다고 본 대하합섬 노동자들은 구미시 전역에서 시장 퇴진 서명운동을 받기

시작했다. 구미역에서 서명대를 마련하여 서명을 받는 한편, 시장과 주택가, 아

파트를 가가호호 방문한 지 약 20여 일 만에 구미시민 30만 명 중 6만여 명의

서명을 확보하였다. 보수적인 도시라서 일개 노조문제로 시장 퇴진 서명이 제대

로 될까라는 모든 선입견과 우려가 한꺼번에 벗겨졌다. 노동자의 기본권이 얼마

나 소중하고 당연한지는 일반 시민들도 알고 있었다. 이로써 자본의 손을 드는

노동행정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을 짓밟던 구미시는 시민들의 심판을 받은 것이

다.

이러한 와중에도 채병하는 노조간부들을 비롯하여 21명을 명예훼손과 직무유

기로 고소·고발하였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9명의 간부를 해고시켰다. 이에 맞서 구경북권의 노동단체와 민중운동단체를 아울러 공동대책위를 구성하여 구미시와

채병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구미시장을 직무유기로 고소·고발하고, 채병하

등 관리직들을 배임과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고소·고발하였다.

대하합섬 노동자들의 투쟁은 조폐공사 파업유도 공작사건이 밝혀진 이후 김대

중 정권이 몰리는 전국적인 상황과 맞물려 조금씩 돌파구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정치적으로 출세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채병하는 악화되는 시민 여론과 노조

측이 강고하게 투쟁하며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네 차례나 고소·고발하자 처벌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노조와의 교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채병하는 마지막까

지 노조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대리인을 내세워 교섭에 임하였

다. 불법단체와는 절대 대화나 교섭이 없다고 공언한 그가 교섭을 시작한 것 자

체가 곧 패배를 자인한 것이었다. 교섭을 시작한 지 10일만인 7월 19일 마침내

대하합섬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쟁취투쟁은 승리하였다.

정문 옆에 설치해 놓은 농성 천막을 함께 돌아보며 대하합섬 노조 간부는 승

리의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믿어지지 것 같았거든요. 우리 조합원들 정말 대단하지요. 8시간 일하고, 8시간 투쟁하

고, 8시간 쉬고…… 군대 같아요. 노동자 군대. 어떻게 보면 채병하가 고마워

요. 우리가 이렇게 단결투쟁할 조건을 만들어 주니 말이에요. 조합원들의 단결

력과 주위의 연대의 힘이 없었으면 우리는 결코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민주노조 운동의 불모지였던 구미 3공단에 대하합섬 노조는 투쟁으로 민주노

조의 깃발을 세웠다. 매일 퇴근조의 노동자들이 그날의 투쟁보고와 투쟁계획을

얘기하고 토론하며 힘과 지혜를 모았던 하루 세 차례의 집회를 그들은 잊지 못

할 것이다. 이 소중한 투쟁의 경험을 살려 앞으로의 노조활동도 조합원들이 직

접 참여하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훌륭한 전통을 살려나갈 것을 기대

해 본다.

IMF 신탁통치 하에서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자본과 정권의 탄압과 공세는 민주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노동자를 파편화시키고 있다. 많은 민주노조가 탄압에 어

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 대하합섬 노동자들의 민주노

조 쟁취는, 조합원들의 흔들림 없는 단결 투쟁과 지역의 힘있는 연대투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더욱 값지고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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