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운동동향]
빈활하던 학생들, 경찰에 의해 살인적 폭행 당하고 강제연행
7월 18일부터 25일까지 ‘공안탄압 분쇄·민중생존권 쟁취 99 하계 노·빈·학
연대투쟁’을 진행하던 중 정권과 자본은 가히 살인적인 탄압을 자행하여 수많은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하였다.
19일 빈활대 학생들이 미아 철대위와 결합하여, 지역 규찰을 돌고 있던 중 경
찰의 연행시도가 있었으며, 22일에는 숭실대, 성공회대 학생들이 결합하던 봉천
3동이 적준(현 ‘다원건설’) 철거깡패 40여 명에 의해 기습적으로 공가 철거를
당했으며, 최촌마을에 결합하던 강원대, 서경대 빈활단은 이미 7월 13일부터 시
작된 지역 원천봉쇄로 인하여 항시 긴장감이 도는 상황 속에서 빈활을 수행하였
다. 7월 24일 낮12시 남양주경찰서 앞에서 ‘구리인창 최촌마을에 대한 공권력투
입 원천봉쇄 및 체포영장 발부, 구속 행위’ 등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한 후 최
촌마을 인근의 도로까지 행진을 하였다. 그러던 중 16시경 전경들이 행진대오를
가로막자 전철연의 양해동 정책위원장이 경찰서장이 “최촌마을 인근까지 행진은
약속하겠다”고 한 말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이 발언이 양해동 씨를 납치하였고, 경찰의 강제연행에 저항하자 또 다시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집회참가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66명을
연행하였다. 연행자들은 남양주경찰서(25명)와 광주경찰서(20명), 의정부경찰서
(21명)에 각각 분산 배치되었다.
경찰측의 이러한 폭력탄압은 다음 날인 25일에도 계속되었다. 25일 청량리역
광장에서 ‘박순덕 열사 2주기 추모대회’를 개최하고 전날의 경찰측 탄압에 항의
하기 위해 남양주경찰서로 집결한 집회참가자들은 오후 5시경부터 정문 앞에서
연행자 석방과 폭력탄압을 규탄하는 침묵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6시경 민변
소속의 변호사가 도착하였으나 경찰측이 변호사 접견을 거부하였으며, 이에 침
묵시위를 하던 집회참가자들은 이 때부터 구호와 투쟁가를 부르며 항의표시를
하였다. 그러자 7시 30분경 남양주 경찰서와 이들을 지원하던 경기도 각지의 경
찰들-미금, 수원 등-800여 명이 토끼몰이식으로 집회대오를 몰아붙였으며, 무차
별적으로 곤봉세례를 퍼부으면서 폭력적으로 연행하였다. 당시 집회를 하던 350
여 명의 참가자 중 20∼30여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연행이 되었으며, 경찰은 연
행자들을 대성리, 양평, 미사리, 팔당 등지에 1∼2명씩 떨구어 놓았다. 최종적
으로 학생 12명, 철거민 4명, 노동자 1명이 남양주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
았다.
한편 연행자들은 연행당시의 폭력진압으로 인해 몸이 아프다고 먼저 치료를
해줄 것을 경찰측에 호소하였으나 각 경찰서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조사만을 강
요하였다. 그 중 본 청인 남양주경찰서에서의 인권탄압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
였다. 전경들의 방패와 곤봉세례로 인해 갈비뼈부상을 당한 양해동 정책위원장
의 경우 30번에 결쳐 “몸이 많이 아프니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호소하였으나
눈도 꿈쩍하지 않았으며, 외부에서 진료를 하기 위해 들어가겠다는 민의련 의사
들의 면회 및 변호사 접견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여학생과 부녀자들에 대한 성추행과 집단구타가 자행되었다.
24일 저녁 한 여학생이 전경 5∼6명에 둘러싸여 사지를 붙들리고 허리와 겨드랑
이, 머리채 등을 휘어잡는 등 전신을 만지작거리는 성추행을 당하며 복도와 계
단에 질질 끌려 다니는 모습이, 면회를 위해 경찰서를 방문한 사람에게 목격되
기도 하였다. 경찰측은 이 여학생을 주 선동자로 보며 집중적으로 조사에 응할
것을 요구하였고, 온 몸이 멍 투성이였던 이 여학생은 치료를 요구하며 조사를
거부하자 영장도 발부되지 않는 사람을 유치장으로 끌고 가 번갈아 가며 발로
차고,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
내손동 철거민인 신영인 씨에 따르면 “경찰측의 인권탄압에 저항해 주민들이
계속적으로 신분을 밝히지 않자 강제로 수갑을 채우고 5∼6명의 의경이 사지를
붙들고 몸을 공중으로 띄워 지문을 찍는 종이를 들이대 강제로 지문을 채취하였
다”고 한다. 24일 연행되어 남양주경찰서에서 끝까지 조사 거부를 했던 13명의
주민 중 대부분이 이러한 방식으로 신원조회가 되었다. 그러다가 조사시간 만료
가 다가오자 25일 새벽에 보호실과 유치장에 가두었던 이들을 한 사람씩 강제로
끌고 나와 강압수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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