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서울의 약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약사다. 우리 약국이 있는 동네는 봉천동.

요즈음은 멀끔한 다세대 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차 흔히들 생각하는 달동네는 아니지만, 혼자 사는 노인네, 낮시간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아직은 빈촌에 속하는 동네이다.

이전 강남의 부촌에서 근무하면서 소위 있는 사람들에게 이골이 나 있던 나로서는 이것이야말로 참된 약사로 살아가기엔 안성맞춤인 지역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개국 1년 정도 지나니 경제적 격차에 따르는 의약품 소비 패턴과 환자들의 약국 이용실태의 상이함이 피부로 절실히 느껴진다.

<주민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약국을 해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참으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실직자 무료투약사업을 할 때도 그랬다. 실직자의 아픔을 함께 하겠다는 플래카드까지 열심히 준비해 약국 창문에 붙여 놓고, 부끄럽게 노동부에서 발행하는 실직증명서를 주민들이 내밀기를 기다리는 우리의 순수한 상부상조와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은 이들 실직자들에게 무료투약을 자존심과 바꾸게끔 하는 굴욕적인 처사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 우리는 진료가 필요하고, 투약이 필요할 때 그들이 누려야 할 당당한 권리가 아닌 얼굴 붉히는 시혜가 되도록 해야만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의료보호 환자가 오면 아직 약국은 의료보호는 급여대상이 아니고, 동정의 의미에서 의료보험 환자와 동일하게 돈을 받겠다고 해야만 하는 걸까?

왜 우리는 환자가 약국 문을 들어서면 ‘대강 얼마짜리 사람’을 간파한 후 그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며 이런저런 약들을 권해야만 하는 걸까?

흙탕물에 몸이 빠져 있으면서 비누로 얼굴만 씻고 있는 내 모습은, 좋은 일 한다고 주민들이 칭찬할 적마다 얼굴 화끈거림을 느끼는 나의 모습은 결코 스스로 되고 싶어하는 참약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꼭 한가지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보건의료인도 양심적이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피말리고 살뜯기는 무시무시한 사회부터 메스를 가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민중의료, 공공의료, 평등세상이 아닐런지…

(서울서 어느 약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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