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지식인’과 ‘기능인’을 구별하면서, 사회적 비판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로서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에 의하면 대학은 이제 기존 질서를 재생산할 수 있는 기능인을 양성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이는 전문 지식 및 기술에 대한 강박적 습득에 따른 사회적 보상에 눈이 멀어, 이것이 어떠한 맥락 속에서 쓰여지는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당시 프랑스 지식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현재 정부가 진행시키고 있는 ‘신지식인’ 정책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정부가 내세우는 신지식인이란 한국 사회의 대표적 병폐인 ‘학벌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경제적 효용성의 맥락 속에서 지식을 상품화할 수 있는 장사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지식인을 학력과 관계없이 자신만이 장시간 연마한 지식 및 기능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논의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일면 타당하게 받아들여진다. 먼저 정부의 신지식인 정책은 학력보다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인상을 준다. 학벌위주의 계층 상승 통로로부터 배제된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러한 정책은 매혹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가가 자신의 재생산 기반을 정당화시켜주었던 공적 교육체제를 스스로 포기하는 강수를 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국가의 보호막 안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 기능했던 대학의 현실안주와 나태함 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그 어느 단위보다 국가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대학은 자기 기만에 빠져 세계의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국가는 “공부 안하는 대학ㆍ교수”라는 여론을 형성해, 대학의 구조조정에 대한 헤게모니를 잡게 되었다. 이는 IMF 경제 위기의 탈출이라는 국가적 욕망 속에 대학이 새롭게 포섭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정부의 신지식인 정책은 대학과 지식인을 통제하기 위해 감시와 검열의 망루를 새롭게 세우는 작업이다. 지식은 경제적 효용성에 앞서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사회적 가치 속에서 평가되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위기가 광범위하게 논의되는 요즘, 정부가 추진하는 ‘신지식인 운동’은 ‘학벌사회’라는 병폐를 거꾸로 강화시킬 염려가 있다. 무엇보다 지식인이란 이러한 지식을 배타적으로 소유한다기보다는 대중과 지식을 소통시키는 매개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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