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네트워크]
고통을 대물림해야 하는
고엽제 피해자들의 한(恨)과 절규
이 성 경
지난 8월 25일 정오, 서울 시내에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경들이 시내 곳곳에 배치되어 마치 전시상황을 연상케
했다.
이날은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들이 정부종합청사에서 고엽제 피해보상
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었다. 제주도, 경상도, 전라도 등에서 수
만 심한 몸싸움이 일어났다. 오후 2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는 ‘월남전 고
엽제 후유의증 전우회 인천지부’ 회원들을 중심으로 700여 명 정도만이 모여서
집회를 하였다.
전국 15개 지부를 둔 ‘월남전 고엽제 후유의증(疑症) 전우회’ 4만여 회원들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후유증과 후유의증을 구분하지 말고 다 같은 고엽제 피해자로 인정해 달라”
“미국의 고엽제 제조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달라”
“국가유공자로서 예우해 주고, 명예회복시켜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대통령 공약사항 중에 들어 있는데 2년이 다 되도록 전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침내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불치병에 신음하는 고엽제 피해자들의 비참한 삶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64년 7월, 온 국민의 빗발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 참전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
다. 그해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8년 6개월 동안 연 312,853명의 군인들이 베
트남 전쟁에 강제로 동원되었다. 그곳에서 5천여 명의 우리나라 군인들이 무고
하게 목숨을 잃었고 수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엽
제’라는 불치병에 걸리게 되었다.
‘고엽제’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사용한 맹독성 제초제를 말한다. 정글이
베트콩의 은신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이 정글지역에 이 고엽제를 무차별
살포하였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이 약품이 인체에 아무런 해도 주지 않는다
고 버젓이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고엽제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던 사람
들은 전쟁에서 돌아온 후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3, 4년만에 죽어버
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엽제가 빗물에 씻겨내려 온 물로 밥을 지어먹었고,
그 후유증이 지금에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엽제 후유증은 혼자 고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해
주어야 하는 유전병이다. 한 달에 수십 명의 피해자가 보훈병원에서 죽어나가고
있다. 정상적인 생활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
아 비관 자살한 사람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르고 있다. 생활고와 장기간의 병 수
발에 견디다 못한 가족들이 집을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천지부만 해도
1,200여 명의 회원 중 400세대만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을 정도이다. 심지
어 아버지가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이유 하나로 자식의 혼사마저 깨지는 경우도
있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아예 자신이 월남전에 갔다온 사실을 철저히 숨기
며 살아가고 있다.
고엽제의 주성분인 문제의 다이옥신은 인류가 발명한 최악의 독성물질로 그
독성이 청산가리의 수만 배에 달한다. 다이옥신은 극히 미량으로도 간암과 기형
을 유발한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만성중독인데, 체중감
소, 생장지연, 감각중추의 신경병, 신경쇠약, 출혈성 방광염, 흉막통, 종양발
생, 콜레스테롤의 증가, 다세대에 걸친 기형발생 등이다. 미국에서 고엽제가 크
게 사회문제화된 것도 베트남전쟁 참전 부모에게서 생겨난 선천적 기형아의 출
산 때문이었다. 베트남에서는 허리 아래 부분이 한 몸인 쌍둥이 형제가 태어나
충격을 던져 주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선천적 기형아의 출산만이 아니라 피부
암, 간암, 내분비계 암, 갑상선 암, 폐암, 신장암, 방광암, 뇨관암 등 수많은
암을 일으킨다. 또한 말초신경 이상, 감각이상을 가져오고, 운동신경의 이상으
로 사지마비를 가져온다. 면역계의 이상은 폐결핵 등 여러 질환을 유발시키고,
콜레스테롤의 상승으로 고혈압을 유발하고, 뇌졸중을 일으키게도 한다. 다이옥
신은 지금의 의학기술로서는 치료 불가능한 독성물질이다. 고엽제 후유증 환자
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뚜렷한 병명도 모른 채 가산을 탕진하고 사회적 폐
인이 되기 일쑤이다.
이러한 고엽제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은 참전한 군인들만이 아니다. 그들 외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사람은 노동자들이다. 1949년 미국의 고엽제 생산공장
(몬센토 사)에서 그 원료를 제조하다가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다이
옥신의 인체 피해 제1호로 기록된 사건이다. 이 사고로 122명의 노동자들에게서
염소성 여드름 피부질환 등의 중독증상이 나타났다. 유럽 여러 지역의 고엽제
생산공장에서도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노동자들이 다이옥신에 대량으로 노출되는
재해를 당하였다.
부끄러운 역사의 희생양이 된 베트남 참전 군인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우리 나라 군인들을 베트남 전쟁에 동원시키고 그 대
가로 미국으로부터 100억불의 돈을 받아 챙겼다. 1인당 월 55불만 주고 나머지
돈은 모두 회수해가서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구미공단, 창원공단, 남해화학
단지 등을 세우는데 썼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
다.
한편 베트남 민중들은 우리나라 군인들에 대해 “미군보다 더 잔인했다”고 하
면서 “1966년 12월 3일에서 6일까지 빈호아사, 롱빈 마을의 찌두레 언덕에 주둔
하고 있던 청룡부대 1개 대대가 이곳 9개 마을에서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430명
을 집단학살하였다. 응옥홍 마을에서는 80대 노인의 목을 잘라서 논에 걸어놓기
도 했고, 희생자 중에는 임산부가 7명 있었고, 2명의 여성이 강간당하기도 했
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군인도 눈앞의 어린아이, 임산부, 노인들을
향해 총을 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죽어 이곳에 묻힌 이들도 희생자
지만 그날 그곳에서 총을 쏘았던 군인들 역시 희생자가 아닐까. 이제 50이 넘어
60고개를 향해 갈 베트남 참전 군인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물어야 하
지 않을까. 누가 그 꽃다운 젊음들을 죽음의 땅으로 몰았나. 누가 그들에게 임
산부, 노인, 갓난아이를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을 했나. (한겨레21, 9월 2일자
에서 인용)
이는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서, 명령에 의해서 인간성이 얼마나 파괴될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68년 23살에 15개월 간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79년 고엽제 후유증인 뇌경
색, 고혈압, 당뇨 등 11가지 질병으로 쓰러져 오른팔을 쓰지 못하고 있는 월남
전 고엽제 전우회 인천지부장 박승원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 있는 한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고엽
제 피해자들을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인생”이라고 한다. 또 그는
“이기든 지든 더 이상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자신이 베트남 전
쟁의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베트남 민중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가해자로서의 고뇌에 찬 말로 들렸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될 고엽제 피해
인천지부의 한 회원은 “피끓는 청춘에 남의 나라 전쟁에 동원되어 희생양이
된 것만 해도 천추(千秋)의 한이 맺히는데, 대를 이어 이 엄청난 고통을 물려주
어 자식까지도 떳떳하지 못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미국, 호주 등 다른 참전국들은 벌써 20년 전에 보상을 다 끝냈는데…
우리를 냉대하는 정부가 한없이 원망스럽다”고 호소하고 있다. 호주의 고엽제
피해자들은 80년 초 벌써 미국의 고엽제 제조회사로부터 5억 달러의 보상을 받
은 바 있다. 태국은 지금도 월남에서 뿌린 고엽제로 인해 자기네 땅이 황폐화되
고 있다고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해
결은커녕 집회 한 번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초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은 자신들의 목숨수당으로 지은 경부고속도
로를 점거해, 주인에게 돌려 달라고 하며 대규모 항의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때 7명의 지도부가 구속되기도 하였다.
군사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탄압에 숨죽이며 지내면서도 조금씩 크고 작은 투
쟁을 한 결과, 95년 정기국회에서 ‘고엽제관련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때
사전에도 없는 ‘고엽제 후유의증(疑症)’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고, 2세와 가족
에 대한 보상은 제외되고 말았다. 이는 김영삼 정부가 고엽제 후유증 대상자를
크게 축소하려는 의도에서 정도가 아주 심한 소수의 후유증 환자만 상이용사로
인정한 것이다. 그 결과 ‘후유의증’이라는 판정을 받은 4만여 명과 속출하고 있
는 수많은 고엽제 피해자들은 보상에서 배제 당하게 되었다.
96년 4월부터는 후유의증 환자에 대한 생계보조비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약
도장애’로 판정되면 약만 지급받고, ‘경도장애’는 20만 원, ‘중도장애’는 30만
원, ‘고도장애’는 40만 원씩의 생활보조비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
인 직장생활도 하지 못하는 사람의 한달 생계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쥐꼬리만한 연금을 받는다고 하여 공공근로를 할 자격도 없고,
병이 있으니 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비참한 생활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컨대 ‘고도장애’로 판정된 사람은 대소변을 가릴 수 없거
나 혼자서 밖으로 다니지 못하고 스스로 라면 하나도 끓여 먹기 힘든 정도의 환
자인데, 이들 대부분은 돌봐주는 가족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남은 것은 ‘대물림되는 불치병과 생활고’밖에 없다. 정
부와 국민의 철저한 무관심과 외면에도 불구하고, 30년이 넘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하루빨리 충분한 치료와 정신적·물질적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고엽제 제조업체와의 싸움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인류의 안정과 건강한 삶을 위해, 또 다시는 제2, 제3의 고엽제 피해자가 생
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살상용 고엽제를 만들고 있는 공해업체들이 지구상에
영원히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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