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후보는 49년 경북 포항 출생이다. 포항 동지상고를 중퇴했고 83년 동아건설 창동공장에 입사한 이후 87년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아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단병호’는 노동계에서 일찍부터 알려진 이름이었다. 89년 서울 지역노조협의회 의장,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초대 위원장, 93년 전국노 동조합대표자회의 공동대표, 96년 민주금속연맹 위원장 등 그의 이력을 보면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알 수 있을 만큼 굵직굵직한 직책들을 맡아 왔었다.
최근에 와서는 98년 초대 금속산업연맹 위원장을 지냈고 지난해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의 총파업 과정에서 구속됐다가 이번에 8.15 특사로 진주교 도소에서 풀려났다. 감옥에서 나온지 보름도 채 안돼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셈이다. 그러나 감옥에 있을 때부터 민주노총의 사령탑으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단 후보는 87년 이후 12년의 노동운동 기간동안 7년 이상을 구속과 수배 생활로 보냈다. 89년 서울지하철 파업, 90년 전노협 활동, 95년 현총련 파업, 98년 총파업 등 모두 4차례 옥살이를 했다.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기간은 5년 정도에 불과하다. 큰 키에 개성이 강한 외모로 수배중 경찰의 눈을 따돌리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 주변 참모들의 말.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현장의 의견을 확인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주위 간부들의 평이며, 소탈하고 권위의식이 없다. 한가지 원칙을 세우면 반드시 해내는 성격이어서 ‘고지식’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95년에는 ‘4월 혁명상’을 받기도 했다.
단 후보에게는 ‘1미터의 원칙’이 있다. 주변 사람들을 1미터 바깥으로 내놓지도 않고, 안으로 들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 그만큼 특정 조직이나 정파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두루두루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신조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2학년인 딸과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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