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칭) 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가 출범함으로써 진보정당 건설운동의 또다른 실험이 시작됐다.

지난 88년 3월 제13대 총선을 앞두고 결성됐던 ‘민중의 당’은 일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출신들이, ‘한겨레민주당’은 진보블럭의 보다 온건한 일부 세력이 참여했다. 90년 11월 결성된 민중당은 한쪽에선 ‘무원칙한 유연성’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과격한 이미지’로 경계받는 등 진보세력 안에서도 폭넓은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이어 92년 5천여명의 노동운동가들이 한국노 동당창당준비위를 결성했지만 민중당과 통합한 뒤 그해 총선에서 한 석의 의석도 확보하지 못해 법적으로 해산됐다. 이같은 실패한 이유로 명망가나 일부 정파 중심으로 운영됐을 뿐 △진보적 성향의 정치세력을 규합하지 못하고 △진보정당의 주축인 노동자들로부터도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한 점 등이 꼽힌다.

이같은 자기성찰 속에 ‘국민승리21’은 97년 6.4지방선거에서 울산 동구청 등 기초단체장 3명과 광역의원 2명, 기초의원 18명을 당선시킨 데 힘입어 대선에서는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권영길 후보를 내세워 정치세력화의 기초를 닦았다. 2년여동안 활동 경험을 토대로 출범한 민주노동당 창당 준비위는 우선 50만 조직인 민주노총, 전국빈민운동연합 등 대중조직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민주진보세력의 지지속에 창당 작업 을 벌이고 있다. 진보정당창당추진위 이상현 총무위원장은 “이전과 가장 다른 점은 ‘정파’ 위주 운동이 아닌 대중조직을 기반한 운동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제도권 진입을 어렵게 하는 소선거구제가 중선거구제 로 바뀌고 정당명부제 도입으로 이어질 지, 현 정당정치에 신물을 느낀 국민들이 진보정당에 지지를 보낼 지는 앞으로 이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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