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강력한 노조가 한 사람의 대표만이라도 독자적으로 의회에 내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유능한 50명의 자유당 혹은 보수당 의원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커다란 발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계급의 반란을 보여주는 더없이 좋은 증거이기 때문이다.”

1898년 영국 철도노조 간부 토머스 스틸스는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 당시 철도노조는 영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노조였지만 초보적인 노조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00년 2월27일 노동조합과 3개의 사회주의단체 대표 129명은 런던에서 노동당 창당대회를 열었다. 대회는 비록 세인들의 무관심 속에 진행됐지만 영국 노동계급이 `반란’의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고세훈 교수(고려대·정치학)의 <영국노동당사>(나남출판 펴냄)는 이 `반란의 역사’를 창당 이전부터 현재까지 추적하고 있다. 그 반란은 커다란 힘으로 성장해 1923년부터 여러 차례 집권에 성공하기도 하고, 80년대와 90년대 대처주의에 따른 영국 정치의 우경화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97년 초 토니 블레어의 `새노동당’은 다시 권력을 잡지만 `제3의 길’로 이념적 변화를 겪었다. 국유화를 당의 공식 목표로 명기했던 `조항4’를 이미 지난 95년 당헌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런 영국 노동당의 역사 중 고 교수가 강조점을 두는 것은 창당과정이다. 특히 그는 토머스 스틸스를 비롯한 소수 엘리트의 헌신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이 정치세력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령 노조조직률은 10%를 조금 넘었고, 노조원의 3분의2 이상이 창당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 사이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 노동계급이 지배층에 대해 가진 영국 특유의 경외심도 `반란’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었다.

고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엘리트들은 “이론에 기대어 역사의 흐름을 지레 예단하거나, 구조에 빗대어 전망을 냉소·낙관하지 않았다”며 “다만 이들은 결정적인 시기마다 그것을 포착하여 전향적으로 활용했다”고 밝힌다. 그는 이것이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진보정당 결성 움직임이 영국노동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 강조한다. 김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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