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작은 매체들이 거침없는 쓴 소리를 쏟아내며 ‘풀뿌리 언론’의 싹을 틔우고 있다.

이들 매체들은 지역주민에게 자질구레한 구석구석의 소식까지 꼼꼼히 전한다. 부수도 적고 편집도 촌스럽지만 지역사회의 잘못된 일은 불독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중앙언론의 손길은 닿지 않고, 지방권력과 교묘한 공생관계에 있는 지방 일간지들이 외면하는 부패관행에도 이들은 날선 펜을 들이댄다.

전북지역 젊은 교수들이 지역언론의 보도행태를 비판하며 직접 돈을 걷어 만든 월간지 <열린전북>은 190쪽 분량의 갓 태어난 작은 매체다. 지난 19일 나온 창간호에는 전북지역 현안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통렬한 비판이 그득하다. 유종근 지사를 ‘봉건영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일찍이 지역언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위 높은 공격이다.

<열린전북>을 창간하는 과정은 전례 없는 실험이었다. 젊은 교수 3명이 지난 2월 산행 뒷풀이 자리에서 ‘할 말 못하는’ 지역언론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직접 대안매체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로 이어졌다. 먼저 월간 <인물과 사상>을 펴내고 있는 강준만(전북대·신문방송) 교수가 “셋이서 5명씩 15명을 모아 100만원씩을 투자하자”고 구체적인 계획을 꺼냈다. 전북대 송기도 교수(정치외교과)가 운영쪽을, 한일장신대 김동민 교수(신문방송학)가 편집쪽을 책임지기로 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뜻밖에 많았다. 회원은 48명으로 불었다.

<열린전북> 창간회원은 도내 6개 대학의 교수 33명이 주축이다. 변호사와 의사, 도의원, 개인사업자 등 각계의 12명도 힘을 보탰다. 3명은 익명으로 참여했다. 회원은 100만원을 내는 대신 글을 올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원고료는 없다. 취재기자도 편집기자도 없어서 편집위원(위원장 김동민) 6명이 직접 편집까지 맡는다. 8명의 운영위원(위원장 송기도)들은 독자관리와 운영 전반을 책임진다. 광고도 없다. 경영이 문제인데, 2만원씩을 1년 구독료로 내는 독자 1500명을 확보하면 꾸려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벌써 유료 구독자가 500명이 넘었다.

작은 매체의 ‘대표선수’는 시·군을 단위로 주간이나 월간으로 발행되는 지역신문들이다. 5000부에서 1만부 안팎의 발행부수에 기자도 4~5명에 불과하지만 지역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중앙지나 지방 일간지가 다루지 못하는 생생한 지역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수집하기도 하는 읍·면소식은 단연 지역신문의 인기품목이다.

전국적으로 400여개의 지역신문이 등록돼 있지만 꼬박꼬박 발행되는 곳은 50개 남짓으로 추정된다.(표 참조) 이 가운데서도 주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으며 ‘풀뿌리 언론’의 제 몫을 해내는 매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언론의 정도를 걷기로 다짐하며 지난 95년 5개 지역신문의 연합체로 출범한 ‘바른지역언론연대(바지연)’는 올해 18개 매체로 늘었다. ‘바지연’에 가입하려면 윤리강령 준수와 편집권 독립이 필수다. 특정인이 지역여론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분산된 소유형태를 갖춰야 한다. ‘바지연’ 소속 대부분의 신문들이 군민주나 시민주 형태를 취하고 지분제한을 두는 등 <한겨레>의 창간방식을 모방했다.

88년 12월 창간된 최초의 지역신문인 <홍성신문>과 <해남신문>, <진주신문>, <부천시민신문>, <남해신문>, <목포신문> 등은 확고하게 자리잡은 1세대 지역신문들이다. <설악신문>, <나주신문>, <당진시대>, <서귀포신문>도 괜찮은 지역신문들로 꼽힌다. <김포미래신문>과 <용인시민시대신문>은 올해 창간됐고, <고양신문>과 <평택시민신문>, 충남 예산의 <무한정보신문>, <안산21> 등도 최근 창간됐다.

이들은 지역 권력과의 비타협적인 투쟁을 통해 주민들과 신뢰를 쌓았다. 한보제철소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쳐 지역민들의 사랑을 차지한 <당진시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역 운동단체들의 전폭적인 지지도 이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진주신문>이 논개사당에서 친일 전력이 있는 김은호 화백의 논개영정을 떼어내자고 주장하자, 진주지역 16개 시민운동단체가 대책위를 꾸려 동조하고 나선 것도 지역단체들의 애정을 보여준다.

작은 매체들은 87년 정기간행물 등록법이 개정된 뒤에야 발행이 허용됐다. 그나마 다룰 수 있는 소재가 생활정보로 제한됐고, 정치소식은 끈질긴 투쟁끝에 97년 이후에야 다룰 수 있었다. 지역사람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의 정치소식이 담긴 신문을 만들 수 있게 된 게 불과 2년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작은 매체들은 대부분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작은 매체를 창간하려는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시·군단위까지 지방자치가 뿌리내렸지만 참다운 지역언론이 드물다는 반증이다. <진주신문>의 윤성효(34) 편집장은 지역신문 만들기를 ‘독립운동’에 비유한다.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있는 일이라는 뜻에서다.

전북대 김승수(신문방송) 교수는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곧은 소리를 내고 쟁점을 만들어내는 작은 매체는 더 나은 지역사회와 더 좋은 삶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작은 매체운동이 성공하도록 국민적인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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