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 제동 걸렸다

주간녹색좌파 9/15

9월 5일, 이스라엘의 총리 에후드 바락과 팔레스타인 정부의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는, 미 국무성의 메들린 올브라이트가 참석한 가운데 샤름 알 세이크 협정에 서명했다. 워싱턴은 다음과 같은 진술로 이 협상을 알려 왔다. “협상 이상의 것은 없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이 조약을 협상했다는 사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원천이다.”

그러나 진상은 공적인 축하에서 언급된 것과는 좀 다르다.

샤름 알 세이크 협정은 1998년 11월에 팔레스타인 정부와 이스라엘의 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서명한 와이 협정을 수정 이행하는 데 대한 동의이다.

와이 협정은 두 가지 주요 문제를 다루었다. 서안의 일부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의 이동 배치와 이스라엘의 “안전”이 그것이다. 군사의 이동 배치는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맺어진 오슬로 협정 I, 오슬로 협정 II에서 합의된 일반적인 이동 배치의 한 부분일 것이다.

오슬로 협정 I이 50년 이상 걸리는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를 거쳐, 서안과 가자 지구에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역사적인 협정이라는 것은 미디어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퍼뜨린 하나의 신화이다. 이런 일은 오슬로 협정 I이 1993년, 협정 II는 1995년에 체결된 이래로 협정에 문서화되거나, 일어나지 않았다.

이 협정은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의 몇몇 지구에서 철수할 것이라고만 언급하였다. 어디에서 얼마나라는 것은 협상을 통해서 결정된다. 이것은 ‘잠정적인 기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잠정적인 기간의 끝이 오기 전에 협상(“마지막 상황”이나 “영구적인 상황”에 관한 협상으로 알려진)은 주목할만한 주제(예루살렘의 상황, 이주민, 서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인의 상황, 팔레스탄인의 최종 국경)로 시작될 것이다.

토지

오슬로 협정과 그 이후의 협정들은 잠정적인 기간 동안 존재하게 될 세 가지 지역에 대해 정의하였다. A 지역은 팔레스타인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지역. B 지역은 팔레스타인이 시민들의 문제를 통제하지만 이스라엘군이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지역. C 지역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는 지역.

와이 협정에 서명하기 이전에, 서안의 3%가 A 지역, 27%가 B 지역, 70% 가 C 지역으로 정의되었다. 와이 협정은 C 지역의 13%를 A나 B 지역으로 바꾸려고 했다. 사실, 2%만이 바뀌었다. 나머지 11%는 샤름 알 세이크 협정의 주제가 되었다.

협정 가운데 아무 것도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가 서안과 가자 지구에 수립될 것이라고 제시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 지중해에서 요르단 강에 이르는 모든 지역에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통제를 유지하면서, 서안과 가자의 고립된 지역에 독재적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수립한다.

서안과 가자의 40-50%가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이 되는 것은 있음 직한 결과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다닐 수 있는 길과 연결된 이스라엘 정착자들에 의해 갈라져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특별한 증명서와 ID가 있어야 한다.서안의 대부분은 이스라엘군이 직접 치안을 유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것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라고 부르지만, 더 정확한 묘사는 반투스탄(남아공의 반자치 흑인 거주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모든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최종적으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협정의 몇 가지 예들이 이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 이스라엘은 안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 어떤 지역에나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 팔레스타인 정부가 통과시킨 어떤 법도 이스라엘은 거부할 수 있다 ; 어떠한 상품의 수출입도 이스라엘은 거부할 수 있다 ; 이스라엘은 지난 30년간의 점령기간 동안 일어난 어떠한 행동에 대후서도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팔레스타인 정부가 소송으로 인한 손해를 지불하도록 협정에는 명문화되어 있다.) ; 이스라엘 시민은 서안과 가자를 마음대로 갈 수 있고, 팔레스타인 정부에 체포되지 않는다.

수백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매일 요르단에 있는 친척을 방문하거나 서안의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예리고(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 가는 첫번째 지역)와 요르단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스라엘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 여행자들은 팔레스타인 규찰대와 팔레스타인 기와 마주친다.

그러나, 이스라엘 안전원은 어둠 속에서 ID 카드와 넝마를 걸친 사람들의 움직임을 조사한다(그들이 팔레스타인 경찰을 통과한 다음에도). 그들이 서안으로 가는 길에 대해 최종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오슬로 협정은 명백하게 경계선을 넘나들 때의 이스라엘인들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협정의 결과를 잘 말해주는 어구이다.

정착

서안에서 영원히 살 생각으로 정착하는 이스라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의 압수와 우회로의 동시 건설 그리고 정착의 증대는 서안을 ‘반투스탄화’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을 갈라놓는 데 목적이 있다.

정착은 라빈 총리(오슬로 협정에 조인한)의 통치 아래 42% 늘어났고, 네타냐후 3년간의 통치 아래 20%가 증가했다. 20건 이상의 새로운 정착이 와이 협정의 승인 이후에 일어났다. 이것은 협정 아래에서 이스라엘이 되돌아간다기보다, 더 많은 땅을 흡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18만 명에 가까운 정착자들이 서안에 살고 있고, 20만 이상이 동 예루살렘에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스라엘 정부와 함께 많은 우회로를 건설하고 있다. 이 길들은 정착과 이스라엘의 거대한 도시들을 연결하고, 이스라엘 정착자들이 요르단 계곡에서 해안 도시 텔 아비브로 직접 여행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스라엘 내각은 와이 협정이 승인 후 20개의 새로운 도로 건설을 승인하였다(미화 7천만 불을 써 가면서). 2월에, 14개의 새로운 도로가 건설 중에 있다.

샤름 알 세이크 협정은 와이 협정의 이행표를 수정한다. 샤름 알 세이크는 와이 협정에서 말했듯이 나머지 11%의 땅을 3단계에 걸쳐 팔레스타인 정부에 되돌려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9월 12일에, 7%는 C에서 B 지역으로 바뀔 것이다. 11월 15일에 2%나 B에서 A로, 3%는 C에서 B로 바뀐다. 1월 20일에 1%가 C에서 AFH 바뀌고, 5.1%가 B에서 A로 바뀐다.

마지막 상황에 대한 협상은 늦어도 9월 13일에 시작하고, 1년 안에 끝낸다. 이 협상은 “이전 조약들을 이행한다는 맥락에서” 진행된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군사 이동은 최후 협상의 진전 여부에 따라 규정지어질 것이라고 바락이 말한 의미이다.

이런 모든 상황들을 푸는 것은 이스라엘이 서안의 58%를 통제하고, 팔레스타인 자치구는 7%에 불과한 이 때, 마지막 상황에 대한 협상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협상 기간 중, 모든 B 지역이 A 지역으로 바뀐다면 팔레스타인 정부는 협상의 끝날 때는 서안의 42% 이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정부가 1967년 이래로 추진했던 계획과 유사한 상이다.

비율에 대한 모든 논의에서, 예루살렘은 포함되지 않는다(이 문제가 최후 협상 의제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시 경계의 정의를 따르자면, 서안의 30% 정도를 점유하게 된다.

가자 지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최근 이스라엘은 약 42%를 통제하고 있다 ; 어떤 조약에서도 더 이상의 군사 이동은 계획되어 있지 않다.

정치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하여, 일반인들은 최후 협상과 관련하여 팔레스타인 정부와 이스라엘 사잉 이미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믿게 된다. 이 현상의 결과는 베들레헴 지역 공동 사무소(팔레스타인 정부와 이스라엘이 그들의 행동을 협상하는 곳)에서 발견된 지도에 나와 있다.

반투스탄화의 결과로 개인적 문제 해결을 추구하도록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치적 삶이 바뀌었다. 부유한 가문과 족벌에 기반을 둔 정치가 돌아왔다.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가 과거 이뤄 낸 성과 중의 하나는 가문에 기반을 둔 정치를 혁파한 것이었다.

정치적 동원은 오슬로 협정의 첫 해에 가능했고, 이스라엘이 고도 예루살렘에 터널을 개통하려는 시도에 분개하여 1996년 최고조에 이르렀다. 시위는 터널 이상의 것에 관한 것이었고, 오슬로 협정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족을 표출했다. 그 때 이래로, 거대한 대중동원은 없다.

진정한 시험은 최후 협상안이 될 것이다. 대중은 정의감과 투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51년간의 시도는 투쟁력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지리적·정치적 분열을 촉진시키는 데 있었다. 오슬로 협정에서 시작된 과정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성공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전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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