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사독재 정권시절 와다 하루키(61)는 한국지식인 사회에서 단연 일본 양심세력을 대표하는 진보지식인으로 통했다.

지난해 도쿄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이 역사학자는 일본에서는 60년대 안보세대로 이른바 `전후 민주주의자’에 속하는 지식인으로 전후 처리에 미온적인 일본 정부와 사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으며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비판정신은 결국 그를 한국 민주화 운동과 연결시켜 70,80년대 암울한 시절 그는 한국 민주화운동에 발벗고 나서 김지하, 지학순, 김대중씨 등의 구원운동을 벌였으며 91년에는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정신은 그의 역사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돼 종래 일본내에서는 금기시되던 일본공산당과 재일조선인 문제를 다룬데 이어 92년에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을 내고 95년에는`한국전쟁’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두 책은 한국에도 번역소개돼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으로 와다를 한국 지식인사회에 각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일본 양심세력의 대명사처럼 통했던 그가 요즘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왕따’에 가까운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 절친했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는 한때 절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를 바라보는 한국 지식인들의 시각이 돌변했을까.

그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94년 한국을 비롯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출신 여성들의 보상을 위해 일본정부가 민간기금이란 형식을 빌어 만든 아시아여성기금에서 비롯됐다는데 많은 한국 지식인들이 인정하고 있다.

즉 와다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비롯한 한국의 민간단체와 지식인, 한국정부는 물론 일부 일본 민간단체들까지 반대하는 가운데 아시아여성기금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일본정부가 직접 보상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고령인 위안부 출신 피해자들이 사망하는 현실에서 민간기금이나마 받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태도는 한국지식인들에게서 즉각 반발을 불러왔다. 일본 양심세력의 대명사라는 그의 이미지가 한국사회에서 결정적으로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한국지식인들이 보기에 `변절’에 가까운 이런 행보는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즉 와다 교수는 지난 4월 발간된 일본 저명잡지인 `세카이’를 통해 “지난해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한일공동선언의 발표는 획기적이었다…·이 선언에 식민지배가 가져다준 고통과 손해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잘못을 바란다는 것이 명기돼 한국이 그것을 평가한다고 확인한 것은 한·일조약이 수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극도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한일공동선언에 대한 이런 평가는 두 나라 정치지도자들에게는 어울릴지 몰라도 한국 지식인들이 지난해 한일정상회담을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 발언은 와다 교수를 더욱 한국 지식인들과 격리시키고 있다.

일본 릿츠메이칸대 법학부 서승 교수는 한일공동선언에 대한 와다 교수의 이런 평가를 두고 아예 “과거에도 진보적이라 불리웠고 현재도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지식인”이었던 그가 보수, 우경화로 방향을 틀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강창일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는 “와다같은 한국민주화 지지세력이 진보적이라 인식돼 온 것은 사실이나 한국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룩된 지금에 와서 위안부 문제니 하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그들의 진면목이 나타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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