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울산대학교 법학과 조교수, 법학박사)

법체계의 생명은 일관성과 무모순성이다. 한 국가의 법체계 내에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법률이 병존하고 있다면 국민은 도대체 어떠한 법률의 요청을 따라야 할 것인가를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국가보안법과 남북합의서라는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가지 법률이 병립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 모순의 전향적 해결을 외면해왔다.

먼저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에 따르자면 북한은 통일의 한 주체도 대화나 협상의 상대방도 아니며, 정부를 ‘참칭(僭稱)’하고 ‘국가변란’을 꾀하는 ‘반국가단체’요 ‘적’이다. 즉 국가보안법상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인 휴전선 이북지역을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무장반란집단 또는 교전집단에 불과하다. 반국가단체 찬양·고무·동조, 이적단체 구성, 이적표현물 제작·반포 등 국가보안법의 거의 모든 주요 범죄구성요건은 모두 ‘반국가단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보안법의 내용은 해방 후 한국전쟁 전까지 항상적으로 존재했던 폭력혁명적 방식에 의한 남한 정부에 대한 전복기도에 대처하면서, 한반도 남측에 극단적인 냉전·분단·반북체제를 구축하려 한 정치세력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경험은 국가보안법의 존립근거를 강화시키는 중요한 계기였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제정되고 반세기가 지난 1991년 9월 18일, 남북한 양측은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다. 유엔헌장 제4조에 따르면 유엔가맹국의 자격조건은 국제법상의 주권국가로서 유엔헌장의 의무를 수락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평화애호국'(peace- loving state)으로 되어있다. 물론 유엔 가입 이전에도 국제관습에 비추어 보자면 북한 당국이 북한 지역에 대하여 사실상의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컨대 국제법적으로 북한은 한반도의 북측 지역으로 무단으로 점령하고 있는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대등한 ‘사실상의 국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국가로 승인한 유엔가입은 북한의 반대를 뚫고 남측의 집요한 요구에 따라 성사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어 같은 해 12월 12일 남북한 당국은 ‘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남북합의서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1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정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4조)라고 선언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이 전제하고 있는 기본논리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강고하게 존속해온 냉전·분단체제가 녹아 내리기 시작했음을 반증한다.

요컨대 현재 남한 내부에는 철저한 냉전과 반북을 전제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탈냉전과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합의서가 존재함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에는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개의 법체계가 병존하고 있다. 즉 북한은 ‘반국가단체’, ‘적’이면서 동시에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대등한 주체인 이중적 법적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모순은 해결되어야 하며, 해결의 방향은 우리가 세계사의 흐름을 역류하지 않는 한 탈냉전과 통일의 방향, 즉 국가보안법 개폐의 방향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국가보안법 존치론자는 북한의 동해 잠수함 침투 사건, 남북해군 서해 교전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지금도 남북간에 적대적 긴장이 엄존하고 있음을 강조할 것이다. 남북 사이에 정치적· 군사적 대립이 존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현재의 상황이 국가보안법이 전제로 한 상황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여러 기준에서 볼 때 남북한 간의 총체적 역관계가 남측의 우위로 판명났으며, 현재 남한 내에는 국가보안법 제정시와 같은 대규모적이고 조직적인 무장지하세력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서해에서 남북한 군대가 교전하였음에도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이 계속되는 역설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의식수준이 높아졌다.

또한 국가보안법 존치론자는 북한 노동당 강령·규약이 남한 지역에서의 이른바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을 포기하지 않고 있고, 북한 형법도 남측의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반혁명범죄’ 등을 규정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남한 만의 국가보안법 개폐는 법률적 무장해제라고 비판할 것이다. 현재 탈냉전의 시대에 북한 법체계나 집권당 강령·규약의 내용 역시 개폐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점은 현재의 남북한 관계를 고려해 볼 때 남측이 국가보안법의 틀에 집착하는 한 북한이 위의 법규와 강령·규약을 개폐할리가 만무하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남한 당국이 탈냉전과 평화공존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북한을 빌미로 과거의 족쇄 속에 안주하여 새 시대의 도래를 늦출 것인가 사이에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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