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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다시 일어선 탄광 노동자들

이 성 경

지난 9월 9일 강원도 사북 동원탄좌 노조 사무실 앞 광장에서 무연탄 화력발

전소 매각 반대 집회가 열렸다. 전라도 화순, 경북 문경, 강원도 태백, 도계,

영월, 사북, 고한 등지의 11개 탄광 노동자들과 주민 등 1만여 명이 광장 주위

비탈길 언덕배기까지 꽉 들어찼다.

“정부는 석탄산업 말살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노동자 생존권을 확실히 보장하

라!”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의 함성과 저항의 행렬이 80년 4월 이른바 ‘사북사태’

이후 또다시 사북읍 내에 물결쳤다. 특히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고한과 사

북지역 상가들은 “탄광노동자들 때문에 우리가 먹고산다”고 하며 일제히 문을

닫고 탄광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하는 등 높은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탄광 노동

자들과 주민들은 무엇보다도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사북 노조 간부들과

의 간담회 자리에서 “1년에 450만 톤의 석탄생산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심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이날 사북읍 내 가두행진을 마친 후, 50여 명의 단위노조 간부들은 쏟아지는

폭우에도 한치의 흔들림없이 동원 노조 사무실 앞 광장에서 삭발식을 하고 철야

농성에 돌입하였다. 13일부터는 12명의 노조 대표자들이 지하 500미터 갱내에

들어가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전개하였고, 14일에는 200여 명의 노조 간부들이

자발적으로 삭발을 하고 철야농성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17일 오전 11시에는 12

명의 노조 대표자 부인들이 모두 삭발을 해 주위가 온통 눈물바다가 되기도 하

였다.

탄광노동자들의 요구는 △국내석탄의 주 소비처인 무연탄화력발전소 매각 반

대 △11개 탄광과 석탄생산 450만 톤 유지 △년 100만 톤 석탄 비축 연장 실시

△근로자 대책비 36개월 분으로 즉각 현실화 △석탄공사 미판매 산원저탄 200만

톤 즉각 비축하라는 것이다.

탄광노동자들의 결연한 투쟁자세와 한국전력 노동자들과의 연대투쟁으로 확산

될 것을 두려워한 산업자원부는 17일 오후 긴급히 팩스를 보내 다음과 같이 조

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향후 석탄생산량은 전년도 생산량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로 하고, 수요대비 공급 잉여분은 한전의 선 수한다 ▲석탄수급 계획에 의한 무연탄 발전 수요가 계속 공급될 수 있도록 법

령에 명시적으로 규정하여 제도화한다. ▲근로자 폐광대책비는 광산노조의 의견

을 참고하여 적극적으로 현실화한다(노정간 특별기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에 투쟁 지도부가 이를 수용하여 9일째 전개된 탄광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 사수투쟁은 일단락되었다.

탄광 노동자의 고단한 삶과 애환

땅 밑으로 500미터를 내려가서, 수평으로 4,900미터 즉 10리나 되는 멀고먼

막장 안.

탄광노동자들은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두운 막장 안에서 오로지 산소

마스크와 작업등의 한줄기 빛에 의지해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 폭과 높이가 7

자씩 되는 좁은 공간에 실내온도는 25도. 굴착기의 소음과 진동으로 금새 온 몸

과 얼굴은 검은 땀으로 뒤범벅이 된다. 250도 경사진 좁은 막장 안에서 석탄을

짊어지고 허리를 구부린 채 몇백 미터씩을 오르내려야 할 때도 있다. 숨막히는

막장 안에서 8시간 내내 한번도 바깥세상의 맑은 공기를 마실 수가 없다. 식사

시간이 되면 밥에 시커먼 탄가루가 섞인 도시락을 먹는다. 석탄을 짊어진 채 쓰

러지지 않기 위해, 막장이 붕괴되더라도 힘없이 파묻히지 않기 위해….

매캐한 화약냄새와 자욱한 탄가루 먼지를 마시면서 더위와 싸워가며 하루종일

진을 빼고 나면 몸은 나날이 쇠약해져 간다. 일을 마치고 갱도를 나오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한계상황에 다다랐다가 무사히 살아나 온 숯덩이가 된 자신을 발

견한다. 이렇게 탄광노동자들의 하루하루는 사투(死鬪)의 나날이다. 하루종일

마신 탄가루에 목이 컬컬해지고 내뱉는 침이 새카맣다. 이를 씻어내기 위해 그

들은 매일 술을 마시게 되고 몸은 점점 더 약해진다.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생

활을 하기 힘들어진 그들을 외면하고 아내가 집을 나가는 등 가정파탄을 겪게되

고,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술에 의지하며 폐인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힘들게 작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광 노동자의 임금은 형편없다.

갱내 근무하는 3교대자의 경우, 한달 임금이 120만∼130만 원이며, 보조공은

107만 원 정도다. 갱 바깥 ‘간접부’의 경우 주간 2교대 근무에 한달 임금은 고

작 65만 원이다. 동원탄좌 노조 500여 조합원 중에서 집을 가진 사람은 50명도

채 안 될 정도로 적다. 비록 학자금은 지급되지만 인근에 대학교가 없기 때문에

멀리서 대학 다니는 자녀에게 적어도 한달에 50만 원 정도의 생활비는 보내줘야

한다. 맞벌이를 하고 싶지만 사북에는 동원탄좌 외에는 공장도 없고 농사도 거

의 없다. 고랭지 배추 농사가 있기는 하나 그것도 한철뿐이다. 단지 빈 몸뚱아

리 하나로도 탄광에 와서 일만하면 그날로부터 13평짜리 사택에서 지낼 수 있다

는 것이 유일한 잇점이다.

또 대부분의 탄광 노동자들은 ‘진폐증’에 걸려 고통받고 있다.

진폐증은 폐에 탄가루가 배겨 폐가 돌처럼 굳어지는 병으로서 한 번 걸리면

완치가 안 되는 불치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호흡이 곤란하고 몸이 마르며 기운

이 없어진다. 탄광에서 3년 정도 일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진폐증 증세가 있기

마련이다. 진폐증에 걸렸다 해도 다른 합병증이 발생하여 심각해지지 않으면 요

양 승인이 나질 않는다. 한 마디로 죽기 직전에나 병원에 와 있다가 죽으라는

것이다. 진폐증 진단을 받고도 먹고살기 위해 그냥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

룩하다.

그나마 진폐증 판정도 쉽지 않다. 산재병원과 개인병원의 진단 결과가 너무나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개인병원에서는 분명 진폐증 증세가 있다는 결과가 나

오는데 산재병원에서는 멀쩡하게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난다. 많은

노동자들이 막장에서 계속 근무할 때는 모르고 지내다가 퇴사하고 3년만 지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탄광노동자들은 사고로도 수없이 죽어가고 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6,000여 명의 탄광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어갔다. 장애

판정을 받고 불구가 된 사람만도 수만 명이 된다. 동원탄좌에서도 1년에 평균

10명이 사망할 정도였다. 올해 6월 5일 동원탄좌 수직갱 570미터 지점에서 작업

을 하던 광부가 전기공급선에 목 부분이 닿아 감전돼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9월 16일에는 지하 500미터 수직갱에서 수평으로 3,100미터 들어가 위쪽으로

난 막장에서 보수작업을 하던 광부 6명이 막장이 붕괴되면서 막장에 갇히는 사

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탄광노동자 생활을 한지 24년 된 한 노동자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오늘 죽

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 내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잠시 후 그는 “광부들은 하나같

이 어질고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다. 허구 한날 땅 밑에서 탄만 캐다보니

세상 물정에 어두워 종종 남한테 사기를 당하긴 해도 남한테 해 끼치는 악한 사

람은 없다. 또 없이 살다보니 어렵고 힘든 이웃과 동료들을 위해주고 아겨줄 줄

아는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투쟁

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의해 석탄산업은 일찍이 구조조정을 겪어 전

국의 360개 탄광이 폐광되고, 현재 전국에 11개 탄광만이 남아 있다. 80년대 5

만 명이 넘던 사북은 탄광이 문을 닫고 광부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지금은 6개

리가 없어지고 인구도 8천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6,000여 명이 근무하던 동원탄

좌에는 현재 500여 명의 정규노동자와 500여 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사북 탄광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투쟁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9월 1일에는 지역의 유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한초등학교에서 카지노

기공식이 있었다. 95년 제정된 ‘강원도 폐광지역 개발촉진 특별법’에 의해 강원

도 정선은 곧 ‘카지노 도시’, ‘한국의 라스베가스’로 변신하게 된다. 순수하고

순박하기만 한 탄광 노동자들은 물밀듯이 들어올 퇴폐·향락문화에 밀려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카지노 산업이 본격적으로 조성

되는 2001년 상반기가 되면, 아마도 사북의 동원탄좌는 영원히 없어질지도 모른

다. 이를 대비하여 이번에 폐광대책비로 36개월 분을 요구했던 것이다. 비록 산

업자원부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현실화하겠다고 했지만 그때 가서 제대로 이행

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리고 탄광이 폐쇄될 경우, 대체산업 유치와 고용보

장을 위한 투쟁과제가 사북 노동자들 앞에 놓여있다.

4일간 갱 안에서 철야단식 은 “정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요일도 없이 강제로 탄을 캐도록 부려먹고는

이제 와서 우리를 헌신짝 취급하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느냐”고 격분해마지 않는

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유일한 자원인 석탄생산을 계속 유지하도록 투쟁하는

우리들이야말로 바로 ‘애국자’들이 아니겠느냐”고 거침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사북 탄광노동자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고, 이 땅의 에너지 자원인 석탄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쉼없이 또 다른 투쟁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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