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35시간 노동, 과연 성공할 것인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9월호 마르띤 뷜라르
2001년 1월 1일 프랑스의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 35시간 노동이 시행될 예정이다. 1년 후에는 모든 기업에 강제적 조항이 될 것이다. 1998년 5월 의회에서 통과된 최초의 예비적 법안은 주 35시간이 강제조항이 되기 전에 단계적 시행을 위해 고용주들에 대한 재정적 원조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올 10월 의회는 두 번째 의안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이 의안은 이미 7월 말에 각료회의에서 합의된 바 있고 따라서 현재 고용주들은 원조 자격을 얻기 위해 자사의 노동력을 증대시키지 않아도 된다. 한편, 새로운 유연한 노동시간 조정은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있으며, 수백만 명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던 프로젝트는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주 35시간 노동은 프랑스 집권 좌파 연정의 팡파르였지만 이를 준비하기 위해 의회에서 통과된 최초의 법안은 거의 열광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피고용인들의 경우 이상하게도 만족감보다는 우려를 나타냈고, 실업자들은 여전히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35시간 노동은 결국 실패한 사회개혁들의 긴 목록에 오르게 될 것인가, 아니면 1936년의 유급휴가 도입과 유사한 거대한 도약으로 간주될 것인가? 이 이슈는 당략적인 논쟁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 계획이 성공하건 실패하건간에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자관계와 사회적 관습에 거대한 변혁을 불러올 것이 틀림없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노동연령 인구의 다섯 중 한 명 꼴로 본래적 의미의 일자리를 갖고 있지 않다. 자신의 필요와 능력에 걸맞는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의 수는 5백만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은 발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방안이 없다면, 주 35시간 노동은 실업에 맞선 투쟁을 사회 전체적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계획은 모든 이해당사자(노동조합, 기업경영진, 공공 당국)를 같은 방향으로 모아낼 수 있는 시도이다.
고용주들이 선전포고로 반응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의제를 설정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정치적 제휴관계와 전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연합체들은 세력을 규합하고 있으며, 노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많은 여가시간, 실업 상태인 사람들에게는 보다 많은 일자리라는 분명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드러난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6월 말 고용연대장관[노동부장관]이 발표한 수치는 1,713,000여 명의 피고용자를 포괄한 8천여 협약의 결과 정확히 70,3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15,000개가 유지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액면 그대로를 받아들이더라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 수치는 4% 정도의 고용창출률을 가리키고 있다. 전체 경제활동 인구에 대해 추정계산해보면 54만 개의 추가 일자리가 창출되었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수년 간의 노동유연화(lean years)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결과는 무시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70만 개의 신규 고용이 있을 것이라는 각료들의 예상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단순비교를 해보면, 마르띤 오브리 고용연대장관의 법안이 가져올 효과가 거의 알려지기도 전인 1998년에 거의 3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 바 있다<1>. 어쨌든, 경제성장에 의해 창출된 일자리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고용창출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후자는 분명 고용창출을 가속화시킨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는가? 작년에 일자리를 신청한 사람들 중 성공한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파트타임 직장을 얻었다.
이제 주 35시간 노동의 실제 목적이 불규칙적인
노동시간 조정과 비정규적인 노동시간을 제도화하려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의혹은 후속 입법에서 고용창출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는 점 때문에 더욱 커진다. 최초의 법안 아래서는 국가 원조금이 노동력의 실질적 증가나 기존 수준의 유지를 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 법안 하에서는 [주 35시간 노동에 관한 노사간] 협정이 서명되자마자 공공 기금이 유입되게 된다. 다시 말해, 국가는 적용될 행위에 대해 지불하는 것이다.
고용 수치에 대해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 신규 입법은 적어도 노동하는 이들에게는 보다 많은 자유시간을 부여하게 될 것인가? 논리적으로는 그래야 하지만 현실은 훨씬 완고하다. 고용주들은 유연한 노동시간 조정과 일일 노동시간의 증대와의 교환으로 주 35시간 노동을 “구매”하려 하고 있다. 분명 관광이나 패션 산업은 계절적 수요에 높이 의존하고 있고 모든 당사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유연성을 필요로한다. 그러나 아무리 거칠게 말하더라도,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제조업체가 일일 노동시간의 증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압박에 호소하는 것은 놀라운 일일 뿐이다.
실제로 이러한 압박은 “유연생산” 방식의 도입에서 기인하고 있으며, 이는 예기치 않은 주문에 대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최소 재고 유지와 인력 변동은 주 35시간 노동 입법이 통과되기 오래 전에 이미 규범이 되었다. 유연 작업 시간에 대한 최초의 규제는 1987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993년에 확대되었다. 연평균 노동시간의 단축에 대한 대가로 10시간에 이르는 일일 노동시간과 최대 48시간의 주 노동시간이 허용되었다. 이는 고용주들로 하여금 잔업수당 지급 회피를 가능케했을 뿐만 아니라 보상이 항상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전체 체제 자체가 꽉 막혀있었다<2>. 노동시간 재조정은 사실상 탈규제로 귀결되었다.
오늘날 전체 피고용인의 거의 절반이 정기적으로나 부정기적으로 토요일에 근무하고 있다. 일요일 노동을 요구받는 피고용인의 비율도 1990년의 20.7%에서 1998년의 25.1%(4분의 1)로 늘어났다<3>. 5백만에서 6백만 가량의 피고용인들이 보통 이틀 연속 휴가를 받지 못한다. 이와 유사하게, 불규칙적인 작업 시간표, 즉 고용주의 변덕과 호의 아래서 일하는 피고용인의 수 또한 1990년에서 1998년 사이에 절반 가량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새로운 35시간 입법 하에 체결된 일부 노사간 협정들은 과거의 임의적인 관행을 위한 법적 틀거리를 확립하게끔 하였고 노동조건은 이 과정에서 간헐적으로 향상되었을 뿐이다.
미리 적절하게 계획되고 교대시간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해가 되지 않는 경우, 비정규적인 노동시간은 노동자측에 이로울 수 있다. 이는 이것이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것이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신자들은 어린아이를 둔 부모와 동일한 필요를 갖지 않는다. 다른 한편, 매주 노동시간이 예측불가능하게 변화하고 피고용인들이 불규칙적인 작업량 요구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조정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조정이 도입되면, 고용주들은 일정한 노동 시간을 25%나 50%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정규적인 노동시간 배치로의 복귀에 질색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는 수용가능한 유일한 변수는 피고용인의 수이다.
제안을 거부한 자동차 노동자들
일반적으로 볼 때, 주 35시간 노동 협정은 비정규적인 노동시간이 이미 굳건히 확립되어 있는 기업들에서 유익한 경향이 있다. 여기서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잘 활용하였다. 그러나 유연 노동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장의 경우 이 협정이 종종 상당한 대가를 치루었다. 르노사의 다용도차량 공장 경영진은 10일에서 14일 사이의 특별휴가를 부여함으로써 주 35시간 노동을 달성하였다. 경영진은 이에 대한 보상으로 매일 20분 휴식의 폐지와 모든 피고용인에 대해 1년에 4개월 동안 의무적인 토요일 작업, 그리고 연차휴가에서 직무교육 기간을 부분적으로 공제하는 것 등을 요구하였다. 이 공장의 피고용인들은 이전에는 토요일 작업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즉, 토요일 작업을 선택하는 경우 이에 대해 잔업수당을 받거나 그 대신 편한 날짜에 비번을 신청할 수 있었다. 만일 이 협정에 합의했다면 노동자들은 이제 선택의 권리를 잃어버리고 잔업수당에 작별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경영진은 6천 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었는데 이는 예정된 고용손실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피고용인들은 이 제안을 거부하였다.
뿌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계획이 제안되었다. 조업 휴식시간과 보상적인 휴가를 폐지할 수 있도록 되면서, 경영진이 발표한 주 35시간 노동은 사실상 36시간 40분에 이르는 것이었다. 다른 작업장들에서도 고용주들이 가장 생산적인 시간에 대해서만 보수를 지급하고자 함에 따라 노동시간 계산 문제를 둘러싸고 협상이 결렬되었다. 몇몇 경우에는 외부 작업장으로 가는 이동시간이 휴식시간으로 계산되기도 한다.
경영진측에서 집착하는 또다른 문제는 조업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임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일일 조업량은 예외 없이 규정되고 어떤 경우에는 불합리한 정도로까지 늘어난다. 프랑스 전력공사(EDF)와 가스공사(GDF)의 경우, 가스 누출이나 고압선 보수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표면적으로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 향상을 목적으로, 휴일을 늘리는 대신 유연한 노동시간표를 받아들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24시간 전화대기 상태의 노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보다 더 이상 아무때나 가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연 노동시간이 도입될 경우 이들은 출장수리에 대해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부문의 모든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기막힌 착상을 생각해낸 현장 관리자는 시간당 킬로와트의 비용을 절감하는 능력에 따라 상관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는 회전율을 높이는 것보다 노동 비용을 감축함으로써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설비 가동시간이나 서비스 이용가능 시간을 늘이는 것은 반드시 기업의 성과를 개선시키지는 않지만 노동조건은 분명히 악화된다. “유연시간 폭이 확대되는 한편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있다”고 노사관계 고문 르네 뱅상은 설명하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시차제로 노동하며 함께 일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이는 때로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낳는 숙련기술의 분배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또한 과도한 직무분할과 작업교대 절차를 조장한다. 특히 서비스 부문은 과거에 알려지지 않았던 직업들에서 테일러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사태에 대처하는 자율성과 능력이 효율성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는 지금 시기에 새로운 소위 “컴퓨터기반” 테일러주의는 엄청난 경제적, 인적 자원의 낭비를 낳고 있다. 다시 말해 유연한 노동시간은 예기치못한 영역들에서 경직성을 낳는다.
탈규제의 과정은 또한 비정규적 노동시간을 담당하기 위한 파트타임 노동자층의 창출을 낳는다. 피고용인들은 정규 노동시간을 일하기를 원하는 시기에 단축된 노동시간과 감소된 소득을 감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에 자신들의 개인적 삶이 예측불가능한 시간과 1주일에 6일의 의무적 노동, 강제적 잔업근무, 교대 전후에 소모되는 시간 등으로 완전한 분열을 겪게 된다. 미국에서 “상시대기 노동자(on-call workers)”라고 알려진 이 노동자들은 필요한 때 호각신호만 울리면 출동하기 위해 항상 대기한다. 파트타임 노동은 신중한 선택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여성과 젊은이들을 게토화시키는 차별적인 노동조직 형태이다. 기업들에 재정적 원조를 제공하는 현재의 규정은 파트타임 노동력 활용을 유도하고 있으며 이의 변화를 거부하는 정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상시적인 노동대기와 끝없는 노동일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또한 관리직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공식적 노동시간이 긴 것과 동시에(공무원은 주 42.8시간이고 민간부문의 관리 및 영업직은 46.4시간에 이른다) 노동시간과 개인시간 사이의 경계 또한 점차 극히 모호해지고 있다. 새로운 입법은 이러한 흐름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 입법은 팀체제로 노동하는 직원과 다른 직원들 사이에 부당한 구분선을 그음으로써 쟁점을 회피할 뿐이다.
임금을 공격하는 사람들
주 35시간 노동 법안은 여전히 임금비용 감축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을 거부하기 전에는 어떠한 실질적 개선도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의 상향조정이라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오브리 장관이 연출한 곡예를 보면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최저임금으로 주당 35시간을 노동하는 사람이 세금 포함 6,881 프랑(1,084 달러)을 버는 반면 34시간을 일하는 사람은 파트타임으로 분류되어 5,990 프랑(944 달러)만을 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한 시간을 노동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이는 높은 대가이다. 또다른 해로운 부분은 저임금에 대한 새로운 면제조항인데 이를 통해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의 1.8
배까지의 소득을 버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사회복지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실제로 전체 피고용인의 3분의 2까지 적용될 것이기 때문에 임금을 억제하는 실질적인 유인효과를 가진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신의 전체 노동력에 대해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고용주는 전체 임금지급 액수에서 한 해에만 두 달치를 자신의 주머니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용주의 경우 적절한 능력을 지닌 직원을 고용하거나 임금인상을 실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면제 계획은 고용을 자극하는 것으로 과대선전된 바 있다. 현재 프랑스의 임금비용이 선진국 가운데 최저수준임에도, 이 계획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보너스이자 저임금에 대한 보조금이다. 경제발전협력기구(OECD)의 생산성 수치에 따르면, 프랑스 노동자는 미국 노동자보다 많은 부를 창출하며 거의 일본에 육박한다. 그러나 주어진 부의 양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100단위, 일본이 77단위의 자본이 요구되는 반면 프랑스의 경우 132단위가 필요한다. 따라서 문제는 산출률이 아니다. 진정한 과제는 자본 활용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시장경제의 법칙은 공격받거나 수정도 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혹은 적어도 제대로 목표를 잡은 재분배 체계를 채택함으로써 이 법칙을 보다 인간적으로, 보다 사회에서 수용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입법은 협상을 위한 가능성있는 장을 열었지만 즉시 이를 포위해버렸다. 이 입법의 약점은 이러한 근본적인 모순에 기인한다.
정리하자면, 주 35시간 노동으로의 이행에 드는 비용의 약 3분의 1은 생산성에서의 성과로 지불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고용창출 효과를 감축시키고 있다. 또다른 3분의 1은 향후 몇 년간의 임금총액 삭감으로 지불되며 이는 경제회복을 가로막는다. 나머지 3분의 1은 국가원조에 의한 것인데 이는 보다 나은 곳에 지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고용주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자본 소득만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는 완전고용을 향한 진보를 가로막는 이데올로기적 구속복(拘束服)이다.
<1> “노동시간 단축을 향한 방침과 유인에 관한 법안”은 1998년 5월 19일 의회에서 통과되었고 주 35시간 노동을 도입하기 위해 고용주들에 대한 재정적 유인을 제공하였다.
<2> Michel Min , N gocier la r duction du temps de travail(노동시간 단축을 교섭하자), Editions de l’Atelier, Paris, 1998.
<3>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 고용조사통계, 1998년 3월.
<4> G rard Filoche, Travail jetable, non. Les 35 heures, oui(고용주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노동 반대, 주 35시간 노동 찬성), Ramsay, Paris, 1999.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