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학살자의 증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문건을 확보해 폭로한 미국

취재팀의 최상훈(37) 기자는 한국과 미국의 `특수한’ 관계가 끔직한 범죄를 수십년간 묻히게 한 주범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에 관심을 둔 동기는.

=한국에선 수십년간 금기로 취급된 미군 범죄, 그것도 양민학살이란 것이 의욕을 솟게했다. 피해자 증언 중심이었지만 <한겨레>와 <말> 등이 94년부터 사건을 다룬 것이 기초 정보가 됐다. 가해자를 찾아 입증하고 싶었다. 10여명 이상의 기자가 참여했다.

-미군의 협조는.

=쉽지 않았다. 미군은 처음부터 사건 당시 제1기갑사단이 영동에 있었다는 자료가 없다고 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비밀해제된 문서를 무수히 뒤지고 정보자유법에 의거해 미 국방부로부터 참전자 명단을 넘겨받아 기갑사단의 존재를 확인하는게 가능했다. 비밀해제됐지만 우리외에 어떤 기자·학자도 그것을 열람하지 않은데 놀랐다.

-국내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나.

=재향군인회의 한 예비역 장성은 “50년전 일을 파헤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취재요청을 거절했다. 한국 국방부도 “주한미군에 물어본 결과 자료가 없었다”고만 말했다. 한국 국방부는 피해자 증언조차 청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참전미군들이 쉽게 털어놓지 않았을 텐데.

=50년이 지나 이제 70~80대의 고령이었다.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였기 때문인지 대여섯번씩 찾아가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수십년전 일인데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잊어본 적이 없다며 많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여전히 전쟁을 `앓고’ 있었다.

-미국이 사과와 보상을 하리라고 보나.

=미 국방부의 조사 결과에 달려있다. 우리는 취재 결과 그 사건이 전투와 관계없이 일어난 `대규모 살해행위’라고 확신하게 됐다. 미국 정부가 `비겁하지 않길’ 바랄뿐이다. 황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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