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극우파의 대성공

「가디언」10/4 케이트 코놀리

오스트리아 극우 정당인 자유당(FPO)이 지난 3일 있었던 총선에서 2위를 자치해 종종 물의를 일으키곤 하는 조르그 하이더 당수의 총리의 꿈을 13만 년만에 가장 근접하게 만들었다.

지난 3일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집권 사민당은 33.4%의 득표를 얻는 데 그쳤고, 자유당은 27.2%를 획득해 지지율을 높였으며 보수주의 국민당은 26.9%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이 결과는 13년 간 지속되어 온 사민-보수 연정과 이 연정의 정치적 안정성이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양당은 자유당의 연정구성 제안을 거절했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국민당은 선거에서 3위를 차지할 경우 야당이 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보수 계열 정당이 3위를 차지한 것은 194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자유당의 의석은 13석에서 54석으로 늘어났다.

나치의 동조자였던 하이더가 이끄는 자유당은 선거 운동 시기 이민 반대 강령을 선전했다. 자유당은 나치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셉 괴벨이 사용했던 외국인 과잉(uberfremdung)이라는 슬로건 하에 집권 시 오스트리아 이민을 동결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아이 어머니들에게 풍부한 “양육비(children’s cheque)”를 주겠다는 약속 또한 많은 여성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었는데, 반대당들은 이를 대중 선동주의적인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정치 평론가들은 최면에 걸린 듯한 자유당의 급부상은 안정적인 경제와 가장 낮은 실업률을 가진 국가 중 하나이며, 유럽에서 세번 째로 부유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계심을 자극시키는 능력이 걸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이더는 1991년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는데, 카린티아 주지사로 있을 때 히틀러의 고용 정책을 격찬하고 나치 SS친위대 출신들의 연례 행사에 참여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기 때문이다.

하이더가 지난 4월 카린티아 주지사로 재출마하면서 극적으로 정계에 복귀한 이래 어제의 선거는 그의 성공을 알리는 하나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86%의 유권자가 투표해, 오스트리아에서 지난 12년간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토마스 클레스틸 대통령은 내일 정부 구성에 관한 발표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토마스 대통령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빅토르 클리마 수상을 물러나게 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건 쟁점이 아니다. 인간적인 실망감의 측면에서 악의 없고 이해할만한 것일지라도 어려운 시기에 책임을 포기하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52세의 클리마는 국민당을 연정 파트너로써 여전히 일순위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지난 몇 년 동안 오스트리아에서 있었던 선거 중 가장 팽팽한 접전을 보였으며 하이더가 비엔나의 품위 있는 스테판광장에서 약 5천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마지막 선거 유세를 하던 지난 금요일에는 병적인 흥분상태까지 이르렀다.

그가 등장하자 일군의 젊은이들은 “나치는 가라”며 휘파람을 불고 야유를 퍼부었다. 이 청년들은 나치 독일에 의한 오스트리아 합병을 언급하면서 “양육비 지급은 여성들로 하여금 부엌으로 돌아가는 말과 같다”, “하이더에게 표를 던지지 않는 1938개의 이유”라고 쓰여진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비엔나 전역에 부착된 하이더와 자유당의 주요 출마자이자 기업가인 토마스 프린초른의 선거 포스터 사진에는 히틀러의 수염이 마구 그려졌다.

유대인 단체들은 자유당이 정권을 잡게 될 전망에 관해 비엔나시 유대인 공동체가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카톨릭 성당 또한 자유당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지난 토요일 비엔나의 성 스테판 대성당 미사에서 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은 “오스트리아의 해악적 분위기”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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